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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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한 15 여년전쯤 공석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넷이 지금같지 않던 시절, 내가 아는 얼굴이 맞는지

집에 가서 책을 열어보고 '와우~ 맞구나',  주섬주섬 책을 챙기고, 싸인을 받을까 말까, 책을 내

밀까 말까....몇 번 봤지만, 결국 책을 내밀지 못했다.

내게 매우 드문 저자와의 추억, 그는 '성석제'이다.

 

문학 평론집 668쪽, 알랭 드 보통, 진중권....이후에 이 책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을 만났다.

과거의 희미한 추억과 버거운 책 읽기 후에 만나서인지 이 책의 글은 입안에 착착 감겼다. 감칠맛

으로 계속 손이 가는 주전부리였다.  우리 글이 이렇게 편안했는지, 푸근했는지 술술 읽히는 가독

성에 마음도 편해졌다.

 

독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 것은 글도 글이지만, 단연 눈에 띄는 '황만근' 덕분이었다.  단편으

로 구성된 이야기 중 주위 어디에나 있을 법한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여 계를 하는 '쾌할냇가의

명랑한 곗날'도 기억에 남지만, 뭐니 뭐니해도 '만그이'(황만근)이 제일이다.

 

만근이를 소개한다.

"황만근은 또한 책에 나오는 예(禮)는 몰라도  염습과 산역같이  남이 꺼리는 일에는 누구보다 앞

장을 섰고 동네 사람들도 서슴없이 그에게 그런 일을 맡겼다. 똥구덩이를 파고 우리를 짓고 벽돌

찍는 일 또한 황만근이 동네 사람 누구보다 많이 했다. 마을길 풀깎기, 도랑 청소, 공동우물 청소

...용왕제에 쓸 돼지를 산 채로 묶어서 내다가 싫다고 요동질하는 돼지에게 때때옷을 입히는, 세

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일에는 그가 최고의 전문가였다.  동네의 일, 남의 일, 궂은 일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그런 일에 대한 댓가는 없거나(동네 일인 경우),  반값이거나(다른 사람의 농사일을

하는 경우), 제값이면(경운기와 함께 하는 경우) 공치사가 따랐다."

 

동네 일, 궂은 일 모두 도맡아 해도 그에게 돌아오는 건, 공치사.

 

"만근아,  너는 우리 동네 아이고 어데 인정없는 대처 읍내 같은 데 갔으마 진작에 굶어죽어도 죽

었다. 암만 바보라도 고마와할 줄 알아야 사람이다. 아나 어른이나 너한테는 다 고마운 사람인께

상 찡그리지 말고 인사 잘하고 다니라. 아이?"

 

그래도 만근이는 싱글벙글, 춤을 추듯 흥겹게 굽신 굽신 인사를 한다.

우리의 만근이는 천하에 공평무사한지라 다툼이 생기면 모두들,

"만그이한테 물어보자."

물어보나마나한 일이 생기면 모두들,

"만그이도 알 끼다."

그야말로 우리의 만근이다.

 

이런 만근이가 사라졌다. 사라진지 하루만에 동네 모든 사람이 그의 부재를 알게 됐다. 다른 동네

사람이 집을 비워도 모두가 알게 되는 게 아니지만, 우리의 만근이는 달랐다.

언제나 곁에 있어도 소중함과 고마움을 모르다 없어져야 알게 되는 존재감, 그는 그런 존재였다.

 

 

 

이 글의 마지막, 만근이와 한때 같은 동네사람이었던 누군가가 그를 회상하며 글을 남겼다.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아니하고 감탄하지 않는 삶이었지만 선생은 깊고 그윽한 경지를 이루었다.

보라, 남의 비웃음을 받으며 살면서도 비루하지 아니하고 홀로 할 바를 이루어 초지를 일관하니.."

 

아, 만근이는 어쩌면 '깨달은 자' 였을지도 모르겠다.

아, 만근이는 어쩌면 그 깨달음을 한 번도 자랑스레 여긴 적 없는 '도인'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기억 어디쯤, 흔히 있을 수도 있는 만근이.

어쩌면 우리는 많은 도인을 모른채 지나쳐 왔을지도 모르겠다.

 

읽은 날 2011. 5. 6   by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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