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권기봉 지음 / 알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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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권기봉> 

 

나는 읽은 책이 아니라 읽었던 책을 주제로 쓴다. 그 동안 쓴 글을 보면 생각의 흐름과 좌표를 

읽을 수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 권기봉님의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를 다시 들춰보고 싶 

은 이유가. 

 

이 책은 너무나 익숙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 바로 서울 곳곳의 살아있는 역사를 알려 주 

는 책이다. 여기저기 현대식 건물을 자랑하고 있는 '한강의 기적' 서울로서의 역사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아픈 기억도 현존하는 곳으로서의 서울을 들여다보는 건, 있는 그대로의 자기자신을 응시 

하는 용기의 한 측면일 것이다. 

 

이 책은 4가지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일상의 발견, 문화의 재발견, 의미의 발견, 장소의 발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무심코 지나쳤 

던, 익숙하기에 알기를 게을리한 역사적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었을 당시 인상깊었던 부분은 세종로 이순신장군 동상과 현충원 얘기였다. 

세종로, 역사적으로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건설할 때 너비 58자 규모로 뚫은 대로로서, 정부 관서 

인 6조와 한성부 등의 주요 관아가 길 양쪽에 있다하여 '육조앞' 또는 '육조거리'라 부르기도 할만 

큼 의미있는 곳이다. 

이런 의미있는 곳에 서 있는 동상은 각각 그때의 권력자 의지를 대리해왔다하니, 당연한 사실이 세 

삼스러웠다. 

이 곳에 이승만 동상이 서 있었고, 4.19 혁명 때 철거된 후 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졌었다. 그러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시절, 문약(?)한 세종대왕 대신 군사정권의 정당성 보완이라는 목표하에 이 

순신 동상이 세워졌다.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가 맡은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 주도로 전국에 걸쳐 

32종 352개의 '애국선열' 동상이 만들어졌는데, 이 가운데 78퍼센트인 274개가 이순신 동상이었 

다 한다. 

그 후 2009년 10월 10일, 563돌 한글날에 맞춰 세종대왕 동상이 지금처러 자리잡게 되었다. 

앞으로 세종로 동상은 지금처럼 유지될까, 권력자 의지대로 변질될까. 

지난 세월 동안  그래왔다해도, 미래의 일은 우리 손에 달린 일일 테다. 

 

그 다음 현충원이다. 

얼핏 보기에는 '과거의'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한 곳 같지만, 그 이면에는 '미래의' 국가 동원을 위한 

무시무시한 논리가 숨어 있는 곳, 현충원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의 관리 주체가 국방부라는데서 그  

사실은 명확해진다. 

친일파와 애민, 애족자가 같이 안장되어 있는 곳, 심지어 국립대전 현충원에는 김구 암살의 배후로 

지목된 김창룡의 묘가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 장남 김인의 묘와 한데 어울려 있다한다. 

군인 유해 발굴단은 상시 운영하면서도 정작 충북 영동 노근리와 경남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전남 

나주와 함평에서, 제주의 이름 모를 오름들 사이에서 떠도는 '학살당한 영혼'은 보듬지 않는 국가, 

시도 때도 없이 국가와 민족을 강조해대는 우리의 현실이 그래서 더 무섭다. 

 

이 책을 다시 들춰 보니 '독립문의 진실'에서 숨이 멈춰진다. 

얼마전 '서대문형무서 역사관'을 아무 생각없이 다녀왔던 게 생각나고, 3년의 간극이 있다지만 앎 

과 실천의 괴리를 다시 대하니 괴로웠다. 

독립문의 탄생 배경을 알게 되면 전철 이름도 독립문역, 적극적 친일반민족 행위자인 최남선이 쓴 

독립선언문도, 그 옆 독립관에 봉인된 독립운동가의 위패, 탑골공원에서 옮겨온 3.1 독립선언 기념 

문까지 모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마치 현충원에 애민, 애족자와 매족자의 묘가 같이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독립, 애국, 애족에 대한 

정확한 해석도, 확고한 신념도 없다. 

바로 그 곳을 얼마 전 다녀왔는데, 여전히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식민지사관은 객관적 이론의 체계가 아니라 우리 머릿속을 이미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우리 

스스로의 사고의 질곡이라"고 말한 도올 김용옥 선생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미래를 위해 과거를 덮어두는 것이 미덕인양 받아들여지고 있는 우리 사회, 그러나 부 

끄럽고 슬픈 역사도 분명 우리의 역사다. 고통의 역사를 기억하려는 이유는 그러한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과거를 현재로 끄집어내지 않고 모래반석 위해 그대로 둔다면, 현재가 결국 무너질 일이다. 

그들의 잘못된 인식 탓만 하지 말고, 

부단한 앎에도 보이지 않게 지배당하고 있는 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돌아봐야겠다. 

 

읽은 날 2009.  11.  30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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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으로 본 한국역사 - 젊은이들을 위한 새 편집
함석헌 지음 / 한길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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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으로 본 한국역사, 함석헌> 

 

지난 총선 이후 정치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떨어졌다. 아니, 희망을 말하기 힘든 길고 긴 암흑터널 

상태라 해야겠다. 

박근혜의 광폭행보라든지, 안철수 대선출마 여부라든지....사각지대 밖의 일이긴 하나, 이번 박근 

혜의 발언은 내 정신을 흔들어 꺠우는 벼락과 같은 충격이다. 

 

인혁당 사건을 놓고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왔다', '역사적 평가에 맡기자'라 하지를 않나, 

5.16 쿠테타 사건을 놓고 '돌아가신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라고 하지를 않나, 지나가는 개미가, 모기가, 바퀴벌레가 웃을 소리다. 

 

일단 웃음이 나온다. 부연 설명이 필요없는 헛웃음이다. 

그 다음, 솔직함에 놀랐다. 대부분 그런 생각을 해도 차마 입 밖에 소리내지 못하건만, 뚝심인건 

지, 무식해서인지 그의 무대포 정신이 선명하다. 

그 다음, 정말 무식하다. 정치를 하고 싶다면 이런 말을 할래야 할 수 없다. 타인을 설득해 자기 편 

에 서게 하는 게 정치 아닌가. 세상을 올바르게 하는 게 문자 그대로 정치 아닌가. 무식한 발언에 

두 손 두 발 들어버릴 사람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득보다 실이 지나치게 많은 발언을 왜 할까. 

차라리 아버지의 세상을 재현하고 싶어요~ 라 대놓고 말할 것이지. 

 

그의 발언도 발언이지만, 국민을 어떻게 보고 이 따위 발언을 하는건지, 그런 발언을 들어야 하는 

게 우리의 수준인지, 그 따위 (표현된 발언보다 그의 역사의식이 문제다) 발언을 해도 지지율에 큰 

화가 없는 게 정.말. 우리의 수준인지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김어준이 화제의 작 <닥치고, 정치>에서 일찍이 지적했지만, 실제로 당하고 보니 이번 일이야말로  

메가톤급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도 그지만, 그런 꼴을 들어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개탄스러워 어찌할 줄 모르겠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돌아가신 함석헌 선생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 하다. 

 

"한국사람은 심각성이 부족하다. 파고들지 못한다는 말이다. 생각하는 힘이 모자란다는 말이다. 

깊은 사색이 없다. 현상 뒤에 실재를 붙잡으려고, 무상 밑에 영원을 찾으려고, 잡다 사이에 하나인 

뜻을 얻으려고 들이파는, 컴컴한 깊음의 혼돈을 타고 앉아 알을 품는 암탉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운동하는, 생각하는, broodking over 하는 얼이 모자란다. 그래 시 없는 민족이요, 철학 없는 국민 

이요, 종교 없는 민중이다. 이것이 큰 잘못이다." 

 

일찍이 고구려의 위대함이란 주몽이 민중에게 뜻을 보였고, 그 뜻이 민중의 가슴에 타올랐기 때문 

이었건만, 삼국시대를 기점으로 착하고 너그럽고 곧고 굳고 날쌔고 의젓하던 정신이 그만 사막으 

로 흘러드는 냇물 모양으로 어느덧 자취를 감추어버렸다고 함석헌 선생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 

에서 말하고 있다. 

 

까마득한 삼국시대부터 잘못되 이 꼴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없으나, 작금의 돌아가는 모양새 

를 보니 그야말로 실감나는 일이다. 

민중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자기를 잊은 적이 없다던데, 지금은 아닌가 보다. 

특권계급은 언제나 자기네 이익을 위해 민중을 속여 압박자에게 팔고 자기네는 그 값으로 영화를 

누리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 어느 시대나 민족을 파는 것은 권력계급이다. 민중을 팔지 않고 권력 

은 안 생긴다.  

민중은 자기를 팔지 않기 때문에 권력이 없다는데, 일이 이렇게 돌아가는 걸 보면, 민중은 필시 자 

기를 잊었나 보다. 

파고들며 생각하는 힘도 모자라, 내가 나를 잊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역사는 점점 더 알 수 없다. 해방이 갑자기 온 것도 알 수 없거니와, 6.25 전쟁을 당하고 나서는 

점점 더 알 수 없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은 생각하라는 말이다." 

 

이제 신화도 없어지고 민족의 영웅도 없어져 갈수록 태산인 지금의 상황에서, 함석헌 선생의 말씀 

대로 '알 수 없으니 생각'해야만 하는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좌절과 절망에 사로잡혀 생각할 힘도 잃어버리고, 저 멀리 있는 희망이나 목표나 바램은 싸구려 짝 

퉁마냥 내던져 버리고 싶건만, 

별이 반드시 붙잡혀서 길 인도가 되는 게 아니듯, 이상도 반드시 거기 도달해야 좋은 것이 아니라는 

말씀에 냉정을 찾는다. 

따라가도 따라가도 잡을 수 없는 별이기 때문에 영원한 길잡이가 되듯, 이상이란 힘써도 힘써도 그 

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을 걷는...것일....것이다. 

올바른 말씀, 애써 주억거린다. 

들리지 않는 말씀이나, 애써 새겨 듣는다. 

 

역사는 나아가도 나아간 것이요, 물러가도 나아간 것이라는데 도대체 우리는 얼마큼 물러가야 진정 

나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칼을 꺽고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 

 

박근혜를 맹신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왜 그러냐고. 

당신의 역사인식은 무엇이냐고. 

당신의 옳고 그름, 소망은 무엇이냐고. 

눈만 돌려도 수두룩하게 보이는 빈자와 약자가 안 보이냐고. 

당신은 우월하게 태어났으니 상관없냐고. 

 

영원할 거 같냐고. 

 

진정. 

 

 

  읽은 날   2009. 6. 22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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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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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한비야, 그의 이름을 낯설어하는 이는 매우 드물 것이다. 

다니던 국제홍보회사를 그만두고 7년간 세계여행을 한 후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출간하고,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에 이어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의 경험이 담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까지, 쉽사리 흉내내기 힘든 에너지 파워, 한비야 팀장이다. 

그를 알게 되면 저절로 응원자가 되버려서일까, 씩씩하고 당당한 그녀의 에너지를 느끼고 싶어서 

일까.  2009년에 출간된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은 건  누구도 아닌 한비야 팀장의 글이기 때문 

이다. 

 

정말 지구 세 바퀴 반을 걸었을까.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중남아메리카, 알래스카, 인도차 

이나반도, 남부아시아, 몽골, 중국, 티베트.... 그가 걸어서 다닌 거리가 실감나지 않아 믿기 힘들 

지경이다. 

그 후 그는 2001~09년까지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월드비젼에서 긴급구호팀장으로 일하다, 새로 

운 출발선 즈음에 이 책 <그건 사랑이었네>를 썼다. 

 

그가 지구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반을 걷고, 8여년 간의 봉사활동을 하게 한 저력은 무엇일까.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열정?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는 삶? 

머리가 아닌 가슴이 시켜서 하는 일? 

그건 아마도 그의 말대로 '사랑' 때문이 아닐까. 

지구를 돌고 돌아 오십 대에 접어든 그가 '그건 사랑이었네'라 말하고 있지만, 애초 그녀의 시작이 

'사랑', 이었을 것이다. 

그 안에 오롯이 품어져 있던 사랑을 오십 대 접어들어 '발견'한 거라 생각한다. 

(아니, 그는 분명 언제 어느 순간부터 알고 있었을 거다.) 

 

자신과 세월, 환경, 그리고 문화를 거슬러 살아왔든 혹은 순응하며 살아왔든 인생의 혜안처럼 깨우 

쳐지는 진리 중 분명 '사랑'은 있어 왔다. 

한비야 팀장의 경우뿐만 아니라 지구별을 거쳐간, 그리고 지금도 여행하고 있는 많은 이들의 공통 

된 목소리, '사랑' 이다. 

 

나와 주위를 사랑하고, 나아가 지구의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일에 있어 행동의 주인공은 바로 사람 

이고, 그 사람은 바로 '나'이다. 

관념과 생각으로서의 사랑이 아닌 나에 의해 실천되는 행위로서 '사랑',을 말이다. 

 

얼마 전 오묘하게 빠진 이상한 나라를 푸는 열쇠도 '사랑'이리라. 

그 동안 행동과 관습의 변화가 이뤄질 수 있는 출발선을 '인식의 전환'이라 여겨왔다. 

내가 생각해 온 '인식의 전환' 밑바탕에는 사람들이 알면 행동이 바뀔 것이고, 나아가 세상이 바뀔 

수 있으리란 소박한 소망이 색안경처럼 덧씌어져 있었음을 인정한다. 

지식과 관념으로 세상이 바뀌리라는 갸날픈 소망, 그 소망이 현실적이지 않음을 아프게 인정한다. 

또한, 이 모든 것을 그러안을 수 있는 '사랑'이 우리의 대안이 되리라 생각해 본다. 

 

여전히 나는 생각한다. 

생각으로 '사랑'이 다가오지 않음을 아는 것이 고통스럽다. 

나는 당장 무엇으로 '사랑'을 실천할까. 

생각없이 튀어나오는 답은 독서와 글쓰기지만.... 

 

어쩃든 궤도는 수정됐다. 

조금씩 천천히 나의 답을 찾아가리라. 

 

 

 읽은 날   2009. 11. 4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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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독서 - 책을 읽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 여행자의 독서 1
이희인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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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독서, 이희인>  

 

어떤 책은 제목만으로도 독자를 끌어당긴다. 이 책 <여행자의 독서>처럼 말이다. 

이 책은 독서와 여행의 멋들어진 조합으로, 독자로 하여금 꿈을 그리게 한다. 나도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읽었던 책을 떠올렸으면, 혹은 감동받은 책을 그리며 그곳을 여행했으면 하고 말이다. 

 

이 책을 읽었을 당시 인상깊었던 문구는 린위탕이 <생활의 발견>에서 말한 

"10년을 독서에 바치고, 10년을 여행에 바치고, 10년을 그 보존과 정리에 바친다" 와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이고,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다" 였다. 

 

지금의 나는 이렇게 말하련다. 

평생을 독서와 여행에 바치고,  평생을 세상에 좋은 흔적을 남기고  후손에게 좋은 세상을 전해주 

는데 바친다고. 

그리고 <인도방랑>을 읽은 후, 독서와 여행이 완전한 동격이 되기 힘들다는 생각, 삶은 어찌보면 

여행이기에 머리로 떠나는 독서까지 겸비한다면 더할나위 없겠다는 생각...말이다. 

 

저자가 각국에서 떠올린 책을 소개하자면, 러시아 <백야> <죄와 벌>, 네팔 히말라야 <인듀어런스>, 

미얀마 <박사가 사랑한 수식>, 라오스 <월든>, 호주 <파이 이야기>, 모로코 <연금술사>, 요르단 외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연을 쫓는 아이> 등이다. 

나만 눈치챘다. 위에 열거된 책들은 내가 읽었거나, 읽었을거라 추정되는 책임을. 

 

저자의 여행 이야기 중 인상깊었던 것은 인도와 쿠바다. 

인도는 사흘을 못 버티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 만일 버티게 된다면 3년은 더 머물고 싶어 

지는 곳이라며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척 실감났고, 쿠바에 대한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렇게 많은 나라를 가봤으면서 오직 쿠바에 가보질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보다 내 여행 편 

력을 윗길로 쳐주는 친구가 있다. 쿠바를 못 가봤다면 진정한 여행을 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게  그 

의 해괴한 편견 내지는 선입견이다. 그 친구만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여행담 가운데 가장  

흥미롭고 낭만적인 이야기들이 쿠바에 있을 거라 생각한다.  쿠바의 무엇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 

의 마음을 사로잡고 설레게 하는 것일까? 혁명가 체 게바라의 삶과 전설? 쿠바에 머물며 작품을 

썼던 헤밍웨이와 그 작품 <노인과 바다>? 세계 정상급 수준의 야구라든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쿠바 재즈? 혹은 살사 댄스와 라틴 댄스?  사실 이 나라의 매력과 낭만을 표현하는 단어 

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쿠바는 북한 등 몇몇 나라와 함께 외견상 사회주의 체제를 굳건히 지켜가고 있는 듯 보인다. 반 

제국주의 혁명을 이끈 피델 카스트로가 생존해  반세기 가깝게 쿠바를 이끌고 있다.  그런데도  

다른 독재 국가와 달리 완강한 폐쇄성이나 폭력적인 정치 체제에 대한 인상은 드물다. 이웃 나라 

미국의 집요한 봉쇄와 압력에도 굳건히 맞서고 있다는 인상이다.  세계 각지에 의료지원 활동을 

가장 왕성하게 펼치고 있는 나라가 이 나라이고, 소련 붕괴로 식량 지원이 끊기면서 자구책으로 

택한 이 나라의 유기농업은  지구촌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의료와 교육에 있어 높은 수준의 사회 

지원 시스템을 확립했다는 이 나라는 세상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개성을 지닌 나라다." 

 

쿠바, 정말 꼭 가보고 싶은 나라다. 쿠바와 관련된 책이라도 읽어봐야겠다. 

쿠바...외에 옆구리에 책을 끼고 여행하고 싶은 나라를 떠올려본다. '애독자의 여행'이라고 할까? 

 

그 동안 읽었던 책을 훑어보니 가장 가고 싶은 나라는 이탈리아다. 

먼저 피렌체 두오모 광장에서 <냉정과 열정사이>의 아오이를 느끼고 싶다. 아오이 마음으로 떠 

올릴 수 있는 추억이 있다면 더 좋을테고... 

아오이를 가득 느끼고 난 후 이탈리아의 음식문화를 즐기리라. 

고대 로마의 미식가는  하류에서 잡은 물고기와 상류에서 잡은 물고기를 맛으로 구별할 줄 아는 

완벽한 수준의 민감한 재능이 있었고, 나뭇가지 위에서 조는 자고새 다리의 특별한 맛까지 안다 

하니, 그 재능의 현현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 

배가 채워지면 볼로냐에 가서 8,000 개에 달하는 협동조합의 세상을 마음껏 구경하고 싶다. 

 

그 다음 가고 싶은 나라는 첼리스트 카잘스의 조국, 카탈루냐다. 일찍이 중세 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당신(지배자)과 동등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합치면 당신보다 위대합니다' 라는 

헌법을 만든 나라, 11세기 때 이 세상에 전쟁을 없애기 위한 의회를 소집한 높은 수준의 문명을 

느껴보고 싶다. 

 

독일에서는 <압록강은 흐른다>의 이미륵을 만나고 싶고, 아프리카에서는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 

라 불리는 토마 상카라의 정신을 만나고 싶다. 

<행복의 지도>에서 반한 아이슬란드는 어떤가. 죽음의 가능성을 포함하면서도 죽음에 구애받지 

않는 유대감이 있는 나라, 정말 멋지다.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나는 땅, 터키에서 <생사불명 야사르>의 기상천외함은 또 어떤가. 

 

빼놓을 수 없는 나라는 그리스, 인도, 영국이다. 

두 말하면 잔소리인 그리스는 <기호와 공식이 없는 수학카페> 덕에 더 가고 싶어졌고, 읽은 책이 

쌓이면서 느끼게 되는 불교정신의 발현지 인도에서는, 붓다의 보리수 아래만이라도 서 보고 싶다. 

러셀과 다윈이 태어난 영국도 가 보고 싶고. 

장소가 아닌 사람으로는 절대 끝나지 않는 이야기인 <파이 이야기>의 저자 얀 마텔이다. 

만나서 무엇을 물어볼까? 

'이제 곧 당신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는 TV에서나 볼 법한 지리 

멸렬한 질문을 할 수 없는데 말이다. 

 

그 다음 가기가 염려되는 곳, 일본이 있다. (두어차례 관광은 다녀왔지만) 

일본은 <역사의 증인, 재일 조선인>에서 서경식 선생이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 옅어지는 나라라 

말하고 있어서이다. '정의를 추구한다'고 하면 열렬하다든지, 시끄럽게 떠든다든지, 폼 잡는다 든 

지 하여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되는 분위기가 몇 십 년이나 계속되고 있고,  올바른 것을 주장하는 

사람이 주저하고 몸을 움츠려야 하는 분위기라 하니, 가기가 두려운 곳이다. 

 

쓰고 보니 생각보다 많다. <오래된 미래>의 라다크, <채링크로스 84번지>의 뉴욕, <연애소설 읽 

는 노인>의 칠레, <잠수복과 나비>의 프랑스도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국내도 많지 않은가. <토지>의 경남 평사리, 하다못해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의 서울까지! 

 

  

읽은 날  2010. 11. 10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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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조선 지식인 지도
이경구 지음 / 푸른역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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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조선 지식인 지도, 이경구>  

 

평소 정조를 비롯한 그 시대의 지식인을 애정해 왔다. 이 책 <17세기 조선 지식인 지도>를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성석제' 편에서 보자마자 산 건, 정조시대 이외 뛰어난 우리 조상이 분명 있을텐데 

모른다는 사실을 순간에 인지해서였다. 

한 편으로 가지를 뻗어나가는 '앎'이 부담스럽지만, 18세기 이후 쏟아져나온 조선의 높은 문화정 

신의 기저에는 분명 전 시대가 있어 가능한 일이니, 보람은 부담을 압도한다. 

 

17세기 조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쳐 사상계 전체에 큰 변화가 싹트고 있을 즈음, 서인은 

1623년 광해군을 몰아 낸 인조반정으로 북인정권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기 시작한다. 그때 중국은 

주자의 정통이었던 송이 쇠퇴하고 오랑캐인 금이 패권을 쥐어잡던, 혼란기였다. 

이렇게 구질서가 마감되고 신질서가 성립하는 시기에  조선 지식인을 사로잡았던 것은 '사회질서 

재건 의무감'이었다.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적 덕성이 외면적 질서로 나타난 '예', 즉, 사회, 국가, 나아가 세계 

질서에 실현되어야 하는 이상적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그들의 절박함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예송 (조선 현종 때 궁중의례의 적용문제, 특히 복상(服喪) 기간을 둘러싸고 서인과 

남인 사이에 크게 논란이 벌어진 두 차례의 사건), 종법에 바탕을 둔 의리나 예법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압권은 송시열이다. 

 

송시열은 왕을 제외하고 <실록>에 가장 많이 나온 이로써, 83세의 나이, 압도하는 풍모, 인조에서 

숙종까지 4대에 걸친 정치적 이력,  율곡학파를 주류에 올려놓은 학문적 업적을 자랑하는데, 그가 

후대에 높이 평가받는 것은 주자의 정신을 계승, 실천했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명나라도 없어진 상태에서 조선이 유교의 명예를 이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했던 탓에, 송 

시열은 유교적 질서를 세우는 일에 집요하게 매달렸고,  그 집요함은 때론 '구태'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그 다음 교과서에서 배웠던 역사의 단면 몇 가지가 인상적이었다. 

'북벌'하면 조선의 영토 확장이나 민족정신의 발로로 오해되기 쉬운데, 북벌 추진자들은 근대 민족 

주의에서 그리는 영도자가 아니라 유교적 세계관에 충실한 이들이었다. 일반적으로 당대인이 생각 

한 북벌은 복수설치, 즉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 대명의리를 드높이는 행위였다. 

이후 박지원이, 발전한 청 문화의 실체를 인정하고 배워 궁극적으로 청을 극복하자 주장한 것도 기 

저에는 명나라를 위한다는 신념이 깔린 것이라 한다. 

 

그 다음, 지금 우리가 갖는 '실학'에 대한 오류 부분이다. 

우리에게 실학은 '조선 후기의 일련의 개혁 사상'이란 고유 명사이며, 그 정신을 계승해 '현실에서 

공허한 이론에 얽매이지 않고 실심, 실용, 실질을 추구하는 사상'이란 보통명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실학은 진실한 학문이란 의미에서 보통명사였다. 불교에 대해 유학이 실학이 

었으며,  과거 준비하는 출세 학문에 대해 성리학 등을 탐구하는 순수 문학이 실학이었고, 이론만 

캐는 공허한 학문에 대해 일상.현실의 실천을 강조하는 학문이 실학이었다 한다. 

이렇게 다양하게 쓰이던  실학이 고유명사 실학으로 정립한 시기는 일제강점기였다. 우리의 과거 

를 부정하고 '개혁'을 강조하고 싶었던 시대정신의 오류의 정의다. 

 

그 다음 붕당정치에 대한 오해다. 

공자시대, 붕당의 결성은 국왕 앞에서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뭉친다 하여 금기시되다,  중국 송대에 

이르러 붕당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내려지기 시작하여 16세기 조선에도 공존과 견제구도로서 붕당 

정치가 자리잡았다. 

비록 숙종때 이르러 격렬한 대립으로 비화되긴 했으나, 붕당정치의 장점 대신 단점만 기억하는 우리 

들의 인식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 망국의 원인을 붕당정치의 파당성에 돌리며 식민 지배를 합리화한 

이른바 식민시관이라 하니, 놀라웠다. 

  

 

이 책에 나온 많은 지식인 중 가장 인상깊은 이는 장유남구만이었다. 

장유는 압도적인 문명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주체성을 잃지 않은, 존경스러운 분이다. 

 

"중국에 들어간 자들은 눈이 커지고  정신이 아득해져서  망연자실하기를  마치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를 본 듯하는데, 이는 내게 있는 지극한 보배를 알지 못하고 그저 현혹되었을 따름이다. 그것 

들은 애초 사람마다 고유한 것이어서  단지 저들(중국)이 먼저 얻었을 따름이다. 저들에게 취하는 

것은 나에게서도 찾을 수 있으니, 저들은 이런 것 때문에 스스로 과대평가해선 안 되며, 우리 또한 

이런 것 때문에 스스로 과소평가해도 안 된다." 

 

사대주의에 절었다는 조선 지식인에 대한 인상을 확 바꾸어놓는 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장유는 유불선을 넘나들며 (대도는 하나인데 유교.불교.도교는 무엇이고, 주자학과 양명학은 

또 무엇인가. 큰 진리에서 본다면 성현들이 제시해 놓은 길조차도 하찮을지 모른다)  주자학만으로 

줄을 세우는 당대의 풍조를 비판했다하니, 시대를 뛰어넘은 지식인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 남구만이다. 

교과서를 통해 들어봤음직한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가 남구만의 것이라 한다. 

이렇게 서민적 풍모를 풍기나, 역사 속의 그는 붕당들의 공존이 불가능해진 숙종대에 영의정을 세 

차례나 지냈던 정계의 조타수였고 대제학을 지냈던 문장가였으며, 역사지리학의 선구자였고 제도 

개선과 적극적인 북방 경영을 역설한 당대의 실무가이다. 

 

숙종 즉위년에 청에서 군사를 요청하자,  '우리나라는 병자호란 때 맺은 약조 때문에 군대를 마련 

하지 못했다' 고 허를 찌르는 대응책을 낸 것이며, 하급관료인 이서들의 횡령을 알아챘을 때, 그는 

잘못을 눈감아주는 대신, 그동안 축낸 분을 보상하게 함으로써 다시는 횡령이 발생하지 않게 했다 

는 등 이야기는  다양한 가치의 공존과 조화를 시대의 화두로 떠올리는 지금, 꼭 필요한 지혜라 할 

수 있다. 

 

산림의 시대를 연 김장생과 김집 부자,  70세가 넘은 노재상 김집에 대립각을 세우며 대동법을 시 

행하고자 했던 김육, 주자가 경외스럽던 시절에 주자조차도 통과 대상에 불과하다던 윤휴, 조선의  

새로운 길을 세우고자 했던 유형원,  철학과 시문을 넘나들며 이념의 지표를 세운  김창협, 김창흡 

형제...그들의 문화가 있었기에 18세기 빛나는 문화가 가능했으리라. 

 

우리는 되풀이되고 있는 역사 속 지식인에 대한 앎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다양한 가치의 공존과 조화에 대한 지혜이다. 

아울러, '찬란했던 과거, 흥미로운 소재를 소개하거나 빠져나갈 구멍 없는 해석을 제시하는 식의 

서술은 계몽과 각성의 효과는 있겠지만, 결론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투명하게 지켜보며 비판적 

안목을 기를 기회를 실종시켜 버릴 수 있다'는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친절 

함을 갖췄다. 

 

그리고 역시 드는 생각은, 사람이 자신이 속한 시대의 생각을 뛰어넘는 일이야말로 정말정말 어려 

운 일이란 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의 지식인을 사로잡는 절박함, 과연 그들에게 절박함이 있을까. 

난 차라리 지식인보다 집단지성의 힘을 믿고 싶다. 

 

 읽은 날  2012. 6. 11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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