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권기봉 지음 / 알마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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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권기봉> 

 

나는 읽은 책이 아니라 읽었던 책을 주제로 쓴다. 그 동안 쓴 글을 보면 생각의 흐름과 좌표를 

읽을 수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 권기봉님의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를 다시 들춰보고 싶 

은 이유가. 

 

이 책은 너무나 익숙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 바로 서울 곳곳의 살아있는 역사를 알려 주 

는 책이다. 여기저기 현대식 건물을 자랑하고 있는 '한강의 기적' 서울로서의 역사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아픈 기억도 현존하는 곳으로서의 서울을 들여다보는 건, 있는 그대로의 자기자신을 응시 

하는 용기의 한 측면일 것이다. 

 

이 책은 4가지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일상의 발견, 문화의 재발견, 의미의 발견, 장소의 발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무심코 지나쳤 

던, 익숙하기에 알기를 게을리한 역사적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었을 당시 인상깊었던 부분은 세종로 이순신장군 동상과 현충원 얘기였다. 

세종로, 역사적으로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건설할 때 너비 58자 규모로 뚫은 대로로서, 정부 관서 

인 6조와 한성부 등의 주요 관아가 길 양쪽에 있다하여 '육조앞' 또는 '육조거리'라 부르기도 할만 

큼 의미있는 곳이다. 

이런 의미있는 곳에 서 있는 동상은 각각 그때의 권력자 의지를 대리해왔다하니, 당연한 사실이 세 

삼스러웠다. 

이 곳에 이승만 동상이 서 있었고, 4.19 혁명 때 철거된 후 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졌었다. 그러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시절, 문약(?)한 세종대왕 대신 군사정권의 정당성 보완이라는 목표하에 이 

순신 동상이 세워졌다.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가 맡은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 주도로 전국에 걸쳐 

32종 352개의 '애국선열' 동상이 만들어졌는데, 이 가운데 78퍼센트인 274개가 이순신 동상이었 

다 한다. 

그 후 2009년 10월 10일, 563돌 한글날에 맞춰 세종대왕 동상이 지금처러 자리잡게 되었다. 

앞으로 세종로 동상은 지금처럼 유지될까, 권력자 의지대로 변질될까. 

지난 세월 동안  그래왔다해도, 미래의 일은 우리 손에 달린 일일 테다. 

 

그 다음 현충원이다. 

얼핏 보기에는 '과거의'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한 곳 같지만, 그 이면에는 '미래의' 국가 동원을 위한 

무시무시한 논리가 숨어 있는 곳, 현충원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의 관리 주체가 국방부라는데서 그  

사실은 명확해진다. 

친일파와 애민, 애족자가 같이 안장되어 있는 곳, 심지어 국립대전 현충원에는 김구 암살의 배후로 

지목된 김창룡의 묘가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 장남 김인의 묘와 한데 어울려 있다한다. 

군인 유해 발굴단은 상시 운영하면서도 정작 충북 영동 노근리와 경남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전남 

나주와 함평에서, 제주의 이름 모를 오름들 사이에서 떠도는 '학살당한 영혼'은 보듬지 않는 국가, 

시도 때도 없이 국가와 민족을 강조해대는 우리의 현실이 그래서 더 무섭다. 

 

이 책을 다시 들춰 보니 '독립문의 진실'에서 숨이 멈춰진다. 

얼마전 '서대문형무서 역사관'을 아무 생각없이 다녀왔던 게 생각나고, 3년의 간극이 있다지만 앎 

과 실천의 괴리를 다시 대하니 괴로웠다. 

독립문의 탄생 배경을 알게 되면 전철 이름도 독립문역, 적극적 친일반민족 행위자인 최남선이 쓴 

독립선언문도, 그 옆 독립관에 봉인된 독립운동가의 위패, 탑골공원에서 옮겨온 3.1 독립선언 기념 

문까지 모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마치 현충원에 애민, 애족자와 매족자의 묘가 같이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독립, 애국, 애족에 대한 

정확한 해석도, 확고한 신념도 없다. 

바로 그 곳을 얼마 전 다녀왔는데, 여전히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식민지사관은 객관적 이론의 체계가 아니라 우리 머릿속을 이미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우리 

스스로의 사고의 질곡이라"고 말한 도올 김용옥 선생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미래를 위해 과거를 덮어두는 것이 미덕인양 받아들여지고 있는 우리 사회, 그러나 부 

끄럽고 슬픈 역사도 분명 우리의 역사다. 고통의 역사를 기억하려는 이유는 그러한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과거를 현재로 끄집어내지 않고 모래반석 위해 그대로 둔다면, 현재가 결국 무너질 일이다. 

그들의 잘못된 인식 탓만 하지 말고, 

부단한 앎에도 보이지 않게 지배당하고 있는 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돌아봐야겠다. 

 

읽은 날 2009.  11.  30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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