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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 - 이탈리아 문화와 풍속으로 떠나는 인문학 이야기
엘레나 코스튜코비치 지음, 김희정 옮김, 박찬일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요?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답은, 비옥한 토지와 온화한 날씨입니다. 문명이 시작한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옆자리 이탈리아 역시 먹거리가 풍부했을 거고, 그러한 혜택 속에 문명이 꽃피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이런 표현이 있나 봅니다.
"이탈리아는 도시이면서 동시에 시골이다."
"이탈리아는 각 도시마다 나름의 얼굴이 있다."
이 책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는 이탈리아 북부, 중부, 남부 그리고 도서지역의 대표적 음식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음식 하는 것도 먹는 것에도 취미가 없는 저로서는, 책으로나마 호사를 누리려 647쪽이나 하는 이 책을 탐했습니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과 근사한 레스토랑 사진을 잔뜩 기대했으나, 문화와 풍속으로 떠나는 인문학 이야기란 부제에 충실하더군요.
음식은 문화의 대표 얼굴입니다.
이탈리아 중부의 작은 항구도시 리보르노는 일찍이 과학이 발전한 곳으로서, 이 곳 부두에서 갈릴레오가 하늘을 관찰했고, 예술.의술 등 다양한 분야의 발전과 함께 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곳이었다 합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는 각종 생선의 자투리와 찌꺼기를 넣어 만든 '카치우코'란 생선 수프가 있는데, 작가는 이 음식을 두고 무엇과도 비길 수 없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으며, 이해하기 힘든 음식이라 표현합니다.
리보르노를 지나간 터키인들에게 배운 요리인데, 버리는 생선의 각종 부위로 만들어 그렇게 표현했나봐요. 매운 고추가 들어가는 이 요리는, 아마도 우리의 매운탕이나 지리와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렇게 문화는 다양한 수용 속에서 빛나는 것인가 봅니다.
사르데냐 지역에서 축제에 먹는 카라시우란 요리란 게 있대요. 우선 송아지 한 마리를 잡은 뒤 송아지 배에 염소 새끼를, 염소 새끼의 배에 돼지 새끼를, 돼지 새끼 배에는 산토끼, 산토끼 배에는 자고새를, 자고새의 배에는 더 작은 새를 넣는답니다.
참 특이하죠? 근데, 이 요리는 어떤 맛이 날까요?
여러 고기의 맛이 어우러진 훌륭한 맛일런지, 상상가지 않네요.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은 그들의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었어요.
대개 이탈리아 사람들은 자신을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시칠리아 사람, 로마 사람, 나폴리 사람 등 출신 도시나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탈리아 요리는 겉으로만 이탈리아를 외치는 각양 각색의 사람들을 한데 모이게 하고 나아가 그들의 의식 깊숙이 숨어있는 집단 무의식을 하나로 뭉쳐 돈독한 정신을 쌓아올릴 수 있게 한답니다.
이탈리아인들을 단합시키는 음식에 대한 공통된 코드를 볼까요?
"마지막에 저는 '마실 것은 뭐가 좋을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 미국인 대답에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 미국인이 '초콜릿 음료!'라고 외쳤거든요.
토르텔리니, 참포네와 함께 초콜릿을 마시다니! 어쩜 그렇게도 다른 세계 음식을 택할 수 있을까요! 장교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즉시 고쳐 말했습니다.
'추를라 씨, 초콜릿 음료가 적당하지 않다면 코카콜라도 괜찮습니다.'
맙소사! 이 모독에 대해 제가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결국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하시죠'
조국이 해방되었다는 기쁨이 없었다면 저는 그 순간을 참아내지 못했을 겁니다."
- 마르키, <우리가 식탁에 있을 때>
"헤밍웨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이탈리아에서 이국적인 이름의 음료들을 자주 마시곤 했다. '스트레가'와 '삼부카'. 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리큐어를 뜻한다. 나는 그것들을 식당 주인에게 주문했다. 그러자 주인은 얼굴이 까맣게 되어서는 두 손으로 목을 움켜잡았다. 그래서 크게 소리 지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외쳤다.
'화이트 와인, 말도 안돼!'
사전 없이도 나는 그 말을 깨달았지만, 즉시 실수를 정정하지 못했다. 바닥에 앞치마를 집어던진 주인은 식당 밖으로 황급히 나가버렸다. 나는 그가 물 속으로 뛰어들지 않기를 빌 뿐이었다."
- 제니스, <달콤한 삶>
"1999년 6월, 유럽연합 국가들의 생활 법규를 제정하는 브뤼셀 행정기구의 입법부에서는 피자를 굽는 장작불 오븐의 온도를 250도로 제한하는 법안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자 이탈리아 전역에서 폭동에 가까운 반발이 있었고, 입법부는 결국 제출한 법안을 철회해야 했다."
이탈리아인들의 이러한 태도를 러시아의 혁명가 알렉산드르 게르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탈리아인들은 자기 자신을 존중하며, 동시에 다른 개인의 감정도 존중한다. 프랑스인처럼 그런 척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란 타고난 것이다."
민주주의를 타고 나다니, 무척 부럽습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먹을 것과 태양, 물, 토지 등 생존하는데 직접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풍부했던 까닭에 이들은 다른 민족에 비해 민족적 자신감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다네요.
이탈리아 중산층들은 언제라도 화형대에 오를 준비가 되어 있을만큼 확고한 신념으로 뭉쳐 있는데, 특이한 것은 이 신념이 정치 영역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신앙과도 같은 음식 영역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라 합니다.
근데, 정말 지금도 그러할까요? 저자가 인용한 사례를 보면 저로서는 쉽게 납득가지 않지만 말입니다.
- 음식 두 가지 또는 재료 두 가지가 부적절하게 연결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
- 이른 아침이 아니라면 카푸치노를 주문 받지 않는다.
- 식후에 마시는 차는 이해하지 못한다. (식후에는 오직 커피나 돌체뿐이다)
- 식사가 끝나기 전에는 알코올 함량이 높은 술(보드카, 그라파, 진, 코냑)을 기꺼이 가져다주지 않는다.
- 푹 삶은 파스타를 식탁에 올리면 외국인이 기뻐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 오후 12시 30분 이전이나 2시 이후에 점심 식사를 주문하지 못한다.
- 주문한 음식들과 어울리지 않는 포도주를 마시고 싶으면 엄청난 고집을 부려야 한다.
이러한 엄격함이 아직도 곧이곧대로 지켜지는지, 궁금하네요.
이 책에서 소개된 수 많은 요리 중 저는 토스카나 요리가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곳 요리는 무례할 정도로 간단하지만 주재료의 품질과 요리 방식만큼은 아주 깐깐하다네요. 종종 요리에 소금을 넣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대신 이곳의 살라메, 페코리노, 프로슈토는 놀라운 맛을 선사한다 합니다.
이탈리아. 협동조합과 함께 그 곳의 훌륭한 음식을 맛보고 싶어집니다.
비록 고대 로마의 미식가처럼 하류에서 잡은 물고기와 상류에서 잡은 물고기를 맛으로 구별할 줄 안다거나, 나뭇가지 위에 졸며 서 있는 자고새 다리의 특별한 맛을 알지 못하지만, 먹을 줄은 아니까 말이에요.
근데 정말, 이탈리아인들은 지금도 음식에 대해 그.렇.게. 깐깐할까요?
여러분은 이탈리아의 어떤 음식에 끌리나요.
구더기가 뛰어오르는 치즈 카수마르추? 대구류 생선인 메를루초로 만든 음식? (중세 도시법에 따르면 메를루초를 담가 둔 물이 어찌나 고약한지, 하루 한번만 버릴 수 있게 했다네요) 고기조각 7개, 부수요리 7가지, 야채류 7가지, 소스 7개로 이루어진 볼리토? 미국 땅콩버터에 대적해 만든 1964년 이탈리아의 기적 누텔라? 귀환의 요리인 리구리아 요리? 진수성찬의 요리 에밀리아? 여행자의 요리인 로마냐? 고위 성직자가 먹은 요일별 요리? 1Kg를 채취하기 위해 20만개 꽃송이와 500시간 작업해야 하는 사프란의 리조토?

무례할 정도로 간단한 토스카나 요리
읽은 날 2012. 2. 21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