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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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이야기가 물결칩니다.

기미년 만세 행렬 속에 태어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4.19, 5.16 등을 관통한 이야기, 고난에 찬 한국 현대사가 개인의 삶을 모두 똑같게 만들어버린 이야기가 물결칩니다.

 

이야기의 끝을 따라가다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납니다.

6월 항쟁의 1987년부터 분신정국의 1991년까지, 일상적으로 죽음과 몰락을 제 몸 안에서 앓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이야기가 물결칩니다.

 

두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네요.

서울 시내 한복판에 수류탄 투척이라는 오해를 받은, 한때 교육위원회가 인정한 최우수 인재의 삶이 끝장나는 이야기가 작은 지류로 물결칩니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명 속으로 끝없이 도피한 한 남자 이야기는 모든 이야기 사이 사이에 빼꼼히 얼굴을 내밀어요. 마치 어린시절 가느다란 종이로 씨줄.날줄을 엮은 격자무늬처럼,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합니다. 마치 그 남자가 가명 속으로 도피한 것처럼 이야기가 끊어질 듯 이어집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쓴 김연수 작가는 '시작도 끝도 없이 한없이 이어지는' 일종의 라운지 소설을 의도했답니다. 마치 오래 전 할머니에게서 듣던 이야기처럼,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처럼요. 가령, 옛날 이야기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한국전쟁 때의 경험담으로 옮겨가거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신화 이야기로 연결되기도 하는 것처럼요.

이 세상을 가득 메운 수많은 이야기(Story), 이야기만큼 수많은 나(Self)가 존재한다는 애절한 신호(Signal)가 물결치듯 재미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하늘을 떠다니는 많고 많은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연결되고 싶어하는 우리의 열망일지도 모르겠어요.

 

작가 김연수가 그려낸 흥미로운 인물인 한 남자는, 광주의 랭보라 불렸던 이길용의 삶을 살기도 했고, 프락치 이시우가 되어 대학가를 침투하기도 했습니다.

행적과 지향점이 다른 두 인생을 살아낸 그는 광주의 랭보였을까요? 프락치였을까요?

랭보와 프락치를 가장한 또 다른 본연의 삶이 있는 걸까요.

이길용이거나 이시우였었던 그가 외칩니다.

"그렇게 하면 그게 내가 살아온 삶이 되는 걸까요?"

 

실제 살아온 삶과 자신이 기억하는 삶.... 알 수 없는 경계선에서 작가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우리는, 인생을 두.번. 산다구요.

처음에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 다음에는 논리적으로요.

이렇게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두번째 회고담이라고 하네요.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라는 것이죠.

 

사실 기억이라는 게, 뉴런 등 신경세포의 활동이잖아요. 수많은 기억은 어쩔수 없이 자극의 크기에 따라 조각되구요. 그런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기억하는 게 실제일까 할 때가 많아요. 게다가 생물학적 나이가 많아질수록 더 심해지구요. 이런 개인적 경험으로도 김연수 작가 말에 절로 끄덕이게 됩니다.

 

얼마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책 이야기를 볼 때도 그랬어요.

마키아벨리 생전과 사후의 평가, 그리고 최근의 평가가 달라지기도 하는 것을 보면 실제의 삶이야 어떻든간에, 논리적인 회고담이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라는 거지요.

 

내가 아는 나, 내가 모르는 나, 남이 아는 나, 남과 나도 모르는 나....

이렇게 생각해보면, 실제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이며, 자신이 죽은 뒤 자신에 대해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란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자신이 죽은 뒤에 인정할 수 없는 잘못된 회고담으로 자신이 기억된다면, 그 자신의 기분은 어떨까요.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만약 아니라면 분통이 터질 거 같아요.

만약 제가 죽는다면 어떻게 기억되고 싶을지...

가장 이상적인 것은 제가 생각하는 그대로 기억되는 것인데요, 글쎄.... 결과가 어찌될지 모르는 일이에요.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실제 살아낸 것과 다를 수 있는 논리적 회고담일지라도, 한없이 중요하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고 하는 이들은 과거를 재구성하게 마련인데, 이런 재구성은 억측이 될 수도 있지만 우리를 구원해주는 장치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야기의 힘이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씩 우리 자신의 바깥에 존재한다는 것까지도요.

 

오다가다 자주 봐왔던 김연수 작가의 첫 작품으로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과 만났습니다. 파도가 물결치듯 때론 높게, 때로는 낮게, 때로는 고요하게 때론 강렬한 이 작품, 이후의 행적이 무척 궁금해지니 감사한 만남이었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는 <원더보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과의 만남이 기다려지네요.

 

많든 적든 제 독서생활의 30%를 차지하는 소설에서, 김연수와 김애란 작가는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이름이 됐습니다. 

그들의 발전을 빕니다.

독자는, 행복합니다.

 

 

 

읽은 날 2012.10.19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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