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치명적 농담 -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별기別記
한형조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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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붓다의 치명적 농담>과의 인연은 한 문장에서 시작됐습니다.

 

"내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리라는 기필을 거두십시오. 세상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 오만과 야만을 버려야 합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세상에서 어쩌면 저만 뒤쳐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맹렬히 달리고 있지 않아서 이 문장에 끌렸을까요.

 

이 책의 저자 한형조는 불교에 대해 아무것도 새로울 것이 없다는 의미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인 [금강경]을 골라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새로울 게 없다지만, 불교 꽤나 머리가 아픈 분야네요.

 

인도 북동부 갠지스 강가 반경 200킬로미터 정도에서 출발한 불교는 기원을 전후해서 대승불교로 발전했고, 반야 유식 화엄 천태 정토 선 등의 갈래를 낳았다 합니다. 이런 불교를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팔라어, 산스크리트, 불교한문, 티베트어를 익혀야 하고, 거기에 근대 일본의 방대하고 치밀한 훈고적 성과와 구미의 불교연구까지 습득해야 한다니, 정말 아득하고 막막해지지 않을 수 없군요.

 

그러나, 불교의 이치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라 낡은 것이라 합니다. 바로 사람이 생물학적 삶을 유지하기 위해 아주 적은 양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처럼, 세삼스런 각성이 바로 해방이라 합니다.

각자가 느끼는 세상은 객관적 실제와 상관없이 자신의 중력에 따라 휘어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 '깨끗한 삶'이란 자아에 물든 더러운 삶으로부터 벗어나라는 뜻으로, 실제 그런 삶이 존재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객관적 세계에는 더럽고 깨끗한 차별이 없다네요.

이렇게 주관적 가치의식이 깨어지고 깨어져나가도,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박노자가 <당신들의 대한민국2>에서 일부 불교계가 사찰 근처의 결식아동이나 최빈층, 무의탁 노인들의 고통에 대해 모른척 하는 것에 대해 비난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것 같습니다. 불교의 교리자체가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내부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라 그런거 같아요.

 

그러나, 한형조는 '내 탓이오'라는 참회로부터 각성이 이뤄진다 말하고 있어요.

그 이유는 하나는 전체에 연루되어 있고, 전체는 하나 속에 침투하고 있기 때문이라네요. 자신의 행동이 수많은 인연 가운데 결정적 하나로 기여했다는 것을 안다면(緣起法) 자연스레 내 탓임을 알 수 있게 된다네요.

비록 자신의 주관적 세계를 바로 잡아도 객관적 세계와 상관없는 일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으로 삶의 구체적 정황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네요.

그 실천이란, 시련을 거치면서 오히려 더 깊고 형형한 안목을 지니며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공동 운명으로 돌아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불성이란 다름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그 수많은 적들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와 존엄을 '회복'하며, 동시에 '성장'하는 그 불가사의한 힘을 단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라 합니다.

 

아, 그런데 웬 말입니까!

어느 정도 알 거 같은데, 저자는 초자연적 실재라는 것도 없고, 초월적 깨달음이란 것도 모두 헛소리라네요.

벗어나야 할 사바도 없고, 들어서야 할 법계도 없답니다.

진리란 피곤하면 눕고 졸리면 자는 것일 뿐, 이 밖에 무슨 특별한 것은 없다네요. 오늘 지은 업이 마음의 창고에 아무런 찌꺼기나 흔적을 남기지 않고 또 내일 다가올 일을 걱정하지도 않는 사람, 그 사람이 다름 아닌 부처라 합니다.

우리가 깨달음(돈오)를 오해하는 것은, '돈오'를 깨달음이 한번에 한순간에 일어나는 것이라 잘못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돈오란 깨달음이란 원래 오고감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로서 즉, 돈오란 "깨달음은 이미 여기 와 있다!"는 것이라네요.

 

유명한 문구가 생각나는군요.

카르페 디엠 / Carpe diem /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가 말이에요.

 

돈오가 깨달음이 이미 와 있다는 뜻이라 해도 깨달음에 대한 지적 통찰은, 그것을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살아나가는 일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합니다.

돈오는 이제 시작이고, 전제일 뿐 우리 중 누구 하나가 빠져도 이 세계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 큰 믿음과 자부심을 가지고 이 짧은 한 생 책임지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사는 것, 그것이 불교, 붓다의 위대한 가르침이라 하네요.

장자가 말한 대로, 길은 누구에게나 같은 길이 아니라, '각자 걸으면서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니, 각자 스스로의 길을 아이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현재에 충실하며 쉼없이 가는 것, 바로 불교의 가르침 입니다.

 

앞만 보고 달리는 세상에서, 저까지 그래야하는 건 아닐 것 같아요.

저만의 속도로 제 길을 만들며 한걸음씩 꾸준히 걸으면, 될 거 같습니다.

역시 저자의 말대로, 깨달음은 이미 와 있으며 삶의 구체적 정황에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게, 불교의 가르침.... 가슴 속에 새깁니다.

오늘 지은 업이 마음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다가올 일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건....참..... 어렵지만 말입니다.

 

 

 

읽은 날  2012. 5. 13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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