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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평점 :

이 책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보자마자 느꼈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요.
제 독서성향 상 지금까지 '중국' 관련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던 것은, 중국인 스스로가 말하는 당대 중국인의 삶을 듣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외부에서 보는 시선이 정확할지 몰라도, 중국이란 거대한 바구니에서 이리 저리 휩쓸리는 중국인의 목소리가 더 진실할 수 있을 겁니다.
<허삼관 매혈기>로 유명한 위화가 10개의 단어로 자신 삶 속의 중국과 중국 속에서의 자신의 삶, 그리고 당대 중국인의 삶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위화의 바램대로 초연한 서술과 절실한 삶이, 오메로스와 맹자의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태도가 책 속에 녹아져 있습니다.
이 책의 중국어판은 2011년 1월 타이완에서 출판되었으나, 중국 대륙에서는 불가능하답니다. 이유는 6월 4일 식 글쓰기이기 때문입니다.
6월 4일 식 글쓰기란, 민감 어휘로 분류되어 삭제당하는,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이야기란 뜻입니다. 만약 1989년 6월 4일 텐안문 사건을 얘기하고 싶을 땐 5월 35일 이라고 표현해야 한다는군요. 이 책은 위화가 1989년 6월 4일 식으로 쓴 이야기입니다.
언제가 될 지 모르는 그들의 6월 4일 식 자유(텐안문 사건을 텐안문 사건이라 부를 수 있는)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비록 5월 35일 식 자유가 사람들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심어준다 해도 말이에요.
위화는 문화대혁명, 가두 행진과 비판 투쟁대회, 조반파 사이의 무장투쟁, 끊임없이 어이지는 거리의 집단 패싸움, 대자보가 가득 붙어 있는 길거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사람들, 탄알이 뒤통수로 들어갈 때는 구멍이 작았으나 앞으로 다시 튀어나온 뒤에는 앞이마와 얼굴 전체가 완전히 짓뭉개져 있었던 총살 현장, 속에서 자랐습니다.
불과 20~30년 동안 일어난 이 일들은 중국인이라면 대부분 겪었을만한 사건이지요. 이러한 거대한 소용돌이인 사회적 흐름에 작가의 고유한 개인적 경험까지 어우러져, 이 책은 한결 더 생생하고 또렷이 다가옵니다.
위화가 뽑은 중국을 대표하는 단어 10개는 인민, 영수,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 홀유 입니다.
이 중에서 영수, 산채, 홀유가 눈에 들어옵니다.
영수 領袖는 마오쩌둥 (모택동)을 뜻합니다. 한때 마오쩌둥의 시사와 어록은 중국인 일상생활에서 절대적이었다 합니다 잠을 잘 때도 '절대로 계급투쟁을 잊어선 안 된다' 라는 구절이 새겨진 베개를 베고 잤고, 침대보에도 '거대한 풍랑 속에서도 용감하게 앞으로 전진하자'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다네요. 이렇게 영수는 마오쩌둥의 사유재산이라고 할만큼 위대했으나, 오늘날 이만큼 평가절하된 단어가 없다는군요.
중국에는 '산채 山寨'란 단어가 있어요. 이 단어는 원래 울타리 등 방어시설을 갖춘 산장을 의미했는데 점차 가난한 지역 또는 가난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 또 정부가 관여하지 못한다는 뜻까지 내포하면서 진화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모방'이란 새로운 함의가 가세하여, 산채 휴대전화, 산채MP3, 산채 게임기, 산채 스타, 산채 광고, 산채 유행가, 산채 선저우 7호 우주선, 산채 냐오차오 올림픽 주경기장...등으로 진화하고 있답니다.
한때 위대한 영도자였고 통수이자 조타수였던 마오쩌둥도 세상을 떠난 지 43년 만에 오바마와 마찬가지로 중국 산채 광고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은, 중국을 표현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거 같습니다.
산채와 유사한 홀유 忽悠란 단어가 있어요. 사기라는 단어에 비해 비교적 부드럽고 장난스러운 함의를 지니는데, 가령 어떤 일이 허풍과 선동, 종용, 허튼 소리나 뜬소문, 사기, 해학과 조롱, 근거 없는 날조와 투기에 해당하더라도 그게 홀유라 하면 중국사람들은 가볍게 넘기다 합니다. 훌유로 넘겨진 일은 그 자체로 합리성을 갖기까지 한다네요.
가령,
'CCTV 1번, 자오번산이 폭발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경찰은 동북 지방을 봉쇄했습니다. 이 사고로 19명이 사망했고 11명이 실종되었으며 한 사람이 홀유당했습니다!'
이런 홀유 기사가 나와도 사람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네요. 거짓말이 뻔뻔하게 확대.재생산 되는 것에 대해 불감증을 갖고 있어요.
이렇게 홀유와 산채라는 단어가 빠른 속도로 전국을 풍미하는 것은 중국 사회가 윤리와 도덕이 부족하고 가치관이 혼란하기 때문입니다. 진지하지 못한 사회, 뒤엉킨 가치관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이러한 것은 중국 사회가 전면적 발전을 하지 못하고 단편적인 발전을 했기 때문에 필연적인 결과라고, 위화는 보고 있습니다.
한쪽은 교조주의가 점령하고 한쪽에서는 무정부주의가 활개를 치며, 한쪽에서는 규범을 잘 지켰지만 한쪽에서는 방탕과 무질서가 판을 치는, 가치관이 혼란한 사회 바로 중국입니다.
20~30년 격동의 세월 속 여전히 5월 35일 식 자유만 허락된 중국, 세계가 주목하는 텐안문 사건이라 할지라도 정작 중국 젊은이들은 모르는 그들의 역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빈부격차의 사례, 터무니없이 적은 이윤의 불쌍한 가격, 환경 파괴, 만연한 부패 현상... 과연, 중국은 어떻게 될까요.
위화의 바램대로 해답은 인민에게 달려있을 겁니다.
인민이 단결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몸의 에너지는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되는, 그 인민에게요.
여기 저기 만연한 사회의 종기에 인민이 단결해 메스를 대고, 고름이 곯고 터져야 새 살이 돋을 것입니다.
역자인 김태성에 의하면 중국 사회의 갖가지 문제에 대해 극소수 중국 지식인만이 용기있게 질의를 던지고 있다 합니다. 많은 지식인 집단은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문 채 예술로서의 문학에만 침참해 있다는군요.
그런 가운데, 잘 나가는 작가, 세계적 작가로 인정받는 위화의 이 책, 정말 값진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위화, 량원다오, 쉬즈위완
대부분 침묵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지식인의 책임을 잊지않고 있는.
읽은 날 2013. 2. 7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