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인스타 브레인 - 몰입을 빼앗긴 시대, 똑똑한 뇌 사용법
안데르스 한센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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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관되게 주장한다. SNS에 빠지게 되면 집중력이 아주 낮아진다고. 멀티 태스킹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내 경험과 대비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책을 읽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저자의 말대로 나는 내 셀프 브랜딩을 위해 뭔가를 했던 것도 아니고, 그저 다른 사람들이 뭘하나 궁금한 것 뿐이었다. 보고 나서도 결코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들... '우와, 저 사람 저런 멋진 곳에 갔네, 우와 저렇게 멋진 몸매를 가졌는데도 열심히 운동하네. 나는 뭐지? 저 음식 맛있겠다... 근데 비싸겠지? 저 모든 것을 누릴 수 없는 내가 짜증나!!' 이런 기분을 만드는데도 하루에 몇번씩 열어 들여다 보고 있었다. 도대체 뭘 위해서?

책을 거의 전자책으로 읽는데, 메시지 알림으로 방해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알림도 다 껐다. 한가지 일을 할 때는 하나만 하기. 줌으로 공부할 때도 인터넷 서핑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잘 지킬 수 있을것인가 ㅠㅠ)


 

수면, 신체 활동 그리고 사람들과의 유대감은 명백하게 우리의 정신 전강을 지켜주는 중요한 요인이다. - P14

인터넷 페이지 5개 중에 1개꼴로 머무르는 시간이 채 4초가 안 되며, 10분 이상을 보내는 페이지는 4퍼센트에 불과하다. - P102

집중력을 방해하는 요소가 많아질수록 집중력 훈련이 되는 게 아니라 뇌는 더더욱 주의가 산만해진다. - P137

우리가 인스타그램, 문자, 트위터, 메일, 뉴스 속보 및 페이스북 사이를 오갈 때처럼 뇌에 끊임없이 뭔가를 쏟아부으면, 입력된 내용을 기억으로 변환하는 데 방해를 받게 된다. - P145

우리는 집중을 방해하는 다양한 디지털 방해물들을 건너뛰면서 효과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자신을 속이고 있다. 그저 수박 겉핥기일 뿐 정보가 기억으로 흡수될 기회를 주지 않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두는 ‘원동력(engine)‘은 우리가 이러한 상태를 좋아하다는 점이다. 이렇게 해야 도파민이 분비되니 말이다. - P146

눈에는 블루라이트가 강력하게 반응하는 특별한 세포가 있다. 우리 선조들이 살던 시대에는 블루라이트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만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특별한 세포들은 "이제 낮이네. 일어나. 그리고 조심해"라고 말하면서 뇌에 멜라토닌을 그만 만들라고 지시한다. 블루라이트는 우리 선조들이 낮에 활동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이는 지금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 P177

블루 라이트는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공복 호르몬인 그렐린(ghrelin)분비도 촉진한다. 그렐린은 식욕을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신체에 지방을 더욱 비축하게 만든다. 즉, 블루라이트는 신체를 깨우는 것(멜라토닌과 코르티솔)뿐만 아니라 대응할 수 있게 채비시키고 (코르티솔), 에너지 창고를 채우고 지방을 비축하는 (그렐린) 데 탁월하다. 저녁에 태블릿이나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나면, 가만히 천장을 보고 누워 있는게 아니라 먹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설상가상으로 신체는 좀 더 효과적으로 야식의 칼로리를 흡수하며 이를 피하지방의 형태로 뱃살 근처에 저장한다. - P181

페이스북이 성공하게 돈 데는 끊임없이 주변으로 주의를 돌리려고 하는 욕구 외에 또 다른 인간적인 원동력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 욕구다. - P195

측좌핵 (nucleus accumbens)는 쉽게 말하면 보상 센터다. 섹스, 음식, 혹은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 활성화되는 영역이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인 우리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똑같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 P197

강하고 장기적인 스트레스 상황에서 뇌는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어 위험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몸을 사리도록 만든다. 무리에서 지위가 하락했을 때도 뇌는 몸을 사리고 그 자리를 차지한 존재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해석하는 셈이다. 뇌는 감정을 통해 이렇게 우리의 행동을 조종한다. 그 결과 기분이 가라앉고 스스로 자신을 무리에서 떨어뜨리려고 한다. - P207

상당수가 SNS를 사교 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게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거나 개인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 P218

SNS가 일부 10대와 성인들의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고 외로움을 타게 하며, 심지어 자신감을 깎아내릴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는 차고 넘친다. ㄱ리고 특히 여자아이들이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 P221

뇌는 책을 읽기 위해 글에 집중하기보다 휴대전화를 무시하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쏟아야 하고, 그 결과 학습 능력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 P274

불안과 우울감은 기쁨이나 평온한 감정보다 우리의 생존에 더 중요한 감정이다. - P355

우리가 문자, 트윗, 페이스북의 ‘좋아요‘ 같은 작은 정보 조각을 받아들이는 데 점점 익숙해질수록 큰 정보 조각을 받아들이는 능력은 저하된다. 전례 없이 복잡한 세계에서 이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 - 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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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광신자 치유 : 우리 안의 나쁜 유전자, 광신주의를 이기는 상상력의 힘 - 우리 안의 나쁜 유전자, 광신주의를 이기는 상상력의 힘
아모스 오즈 지음, 노만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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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 또 난리가 났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다. 이 나라는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아보고 싶어서, 기 들릴의 굿모닝 예루살렘도 읽었는데, 그때도 느꼈던 거지만, 이스라엘이 원인 제공을 했고, 계속 자신들이 미국의 힘을 등에 업고 약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는 것은, 시오니스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다. 이 책을 쓴 작가, 아모스 오즈가 생각하는 이 모든 난리통의 문제 의식은 "부동산 쟁의 realestate dispute"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팔레스타인에 와서 이 지역을 점령해도 되는 이유는 유럽의 제국주의 때문이라는 거다. 유럽이 유대인을 차별, 박해했고 제노사이드까지 벌였으니, 우리가 힘들었던만큼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것이다. 


1917년, 영국 외무장관이 '팔레스타인에 유대 거주지를 건설하고 지원한다'고 약속한 밸푸어 선언이 나오고, 이후 1947년 유엔이 '팔레스타인 분할'을 결의했으며 이듬해인 1948년에 유대 국가 이스라엘이 탄생했다. (31페이지)


그러니까 영국 외무장관이 뭔데 팔레스타인에 자기 맘대로 유대 거주지를 건설하겠다고 말하냐 이거다... 이것부터가 이해가 안간다. 그래, 유대 거주지를 건설했다고 해도, 자기들이 사이 좋게 살 생각을 해야지, 자기 맘대로, 국제법을 위반하면서 정착지를 건설해놓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괴롭히는 점에 대해서는 제대로 책임질 생각을 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강경파가 문제라는 점은 오즈도 인정한다. 그렇다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민족 교육으로 똘똘 뭉쳐 광신자가 되어 테러를 일으키는 것은 나쁘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에 이렇게 팔자 좋은 변명이 또 있을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왜 광신자가 되는걸까. 그것은 이스라엘의 차별적 정책과 이스라엘의 박해때문에 시작되는 것이다. 자신들이 광신주의를 낳는 토대를 만들어 놓고 광신자가 되는게 나쁘다고 말하고 있다.


해법으로는 1948년에 생긴 팔레스타인 난민들에게 집, 일, 여권을 줘야하지만 이 사람들을 이스라엘 사람으로는 받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미래에 생길 팔레스타인 국가, 즉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지구 혹은 다른 지역에서 난만이 다시 정주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한 1948년 독립전쟁 직후 이스라엘에는 집과 재산을 잃고 아랍 국가들로부터 밀려온 100만 명의 유대인 난민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이 유대인 난민들은 아랍권 국가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서로의 난민을 품으며 끝낼 수 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나라를 세우는 것을 계속 방해한다면 해결은 없다. 난민캠프와 팔레스타인 자치구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계속 늘게 될 것이고 이런 탄압과 모욕에 절망한 사람들은 광신자로 돌변해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게 될것이다. 


광신자 치유가 문학으로 가능할거라는 생각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사람들이여, 자신들의 역사와 양심을 들여다봐라. 그게 문학으로 가능할까? 

 



19세기 말부터 동유럽, 러시아에서 포그롬이 빈발하자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과 미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유대인의 이민, 즉 ‘알리야(aliyah, ‘올라오다‘라는 뜻의 히브리어)‘로, 이는 순수한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발적으로 성지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오는‘ 행위나 ‘올라온‘ 사람들을 가리킨다. ‘알리야의 물결‘로 유대인은 고대 이스라엘 조상의 땅인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유대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운동이 싹텄다. 이것이 이른바 ‘다른 민족의 감금을 야기한 최초의 민족해방운동‘이라고 비판받는 시오니즘으로, 최종적으로는 1948년 5월 15일 이스라엘 건국으로 이어진다. 다음 날 아랍과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그곳에 살던 팔레스타인인은 자신들의 땅을 빼앗기고 난민이 되었다. - P153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독립선언 그 자체부터 모순을 잉태하고 있었다. 원주민인 아랍인을 대놓고 무시라도 하듯 "이 국가는 ‘유대인 국가‘"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를 위한 ‘민주국가‘라고 천명하지 않고 ‘유대인의 나라‘라고 규정했던 이 선언은 아랍인을 소수민족의 입장에 몰아넣었다. - P157

이스라엘인에게는 세 가지 의식이 있다. 첫째는 이 세계에서 이스라엘 이외에 살 수 있는 곳은 없다는 이스라엘 유대인의 강박의식이다. 특히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게는 박해 강박증 심리가 깊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둘째는 멸절에 대한 두려움 탓에 이 땅만은 한사코 지키겠다는 안보 최우선주의다. 셋째는 더 이상의 토지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온건파 이스라엘 유대인이 지닌 윤리관이다. 자신들은 부득이하게 팔레스타인인의 땅을 빼앗았다. 하지만 더 이상 뺏는 것은 죄라고 하는 에브라임의 말을 들은 청년 아모스 오즈는 결국 이 윤리관을 구현하는 작가로 성장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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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딱 하나만 선택하라면, 책 - 책덕후가 책을 사랑하는 법 INFJ 데비 텅 카툰 에세이
데비 텅 지음, 최세희 옮김 / 윌북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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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 작가정도로 fanatic은 아니다. 집에 책을 놓을 공간도 부족하고 이사를 많이 다니는지라 모든 책을 대부분 전자책으로 구입해 읽고 있다. 도서관을 좋아하지만 그곳이 유일하게 좋은 곳도 아니다. 남의 책장을 둘러보는 건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에게도 눈길이 간다. 하지만 '어 저 책은 나도 읽고 싶은 책, 혹은 재밌게 읽었던 책인데'라며 말을 걸어보고 싶은 사람은 만나지 못했고, 막상 만났다 하더라도 몇번을 망설이다가 타이밍을 놓칠것 같다.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로만 이뤄진 이 책에서 가장 맘에 와닿는 장면을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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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소란스러운 세상 속 혼자를 위한 책 - 혼자가 좋은 나를 사랑하는 법 INFJ 데비 텅 카툰 에세이
데비 텅 지음, 최세희 옮김 / 윌북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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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처럼 사람을 굳이 만나고 싶지 않은데도 미움을 당할까 억지로 만나 에너지를 쓰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아닌지라 (어떻게 보면 이 작가와 작가의 남자친구이 중간 지점이 나인것 같다) 엄청 공감이 되지는 않았지만,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책 읽고 글쓰고 뭔가를 하는 행위가 훨씬 더 즐겁게 느껴질 때가 많은 사람이 가진 고충을 조금 알게 되었다.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자신이 어설프고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경험을 한다는데, 그건 정말 고통스러우니까... 타인과 지내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강의실에 처음 도착해도 굳이 뒷자리에 앉지 않는다. 그리고 5분 뒤에 누군가가 전화한다고 메시지가 왔을때 그 전화를 피하지도 않는다. (대단히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싫으면 문자로 보내달라고 말을 하든가...)

사람들과 어울리는게 그다지 편하지 않은 작가임에도, 자신을 이해해주는 반려자를 만나게 된 것은 매우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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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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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이 106개 있다.... 어떻게 간추리나 ㅠㅠ

위로는 깨달음에서 온다. 이 위로가 몸에 습관이 되어 독서의 즐거움에 중독되면 다른 일에는 흥미가 떨어진다 - P8

내 글이 어렵다는 불평과 비판 세례를 받을 때, "쉬운 글은 익숙한 글일 뿐"이라는 스피박의 통찰은 나를 자유롭게 해준다. "우리가 비판받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역사를 채우겠는가."라고 한 나혜석은, 나를 나대로 살게 하는 용기를 준다. - P9

언어는 본질적으로 권력 지향적이다....자유주의적, 기능주의적 사고 체계에서는 입장, 관점, 시각 같은 개념 자체를 부정하고 중립성과 객관성을 지향한다. 이런 탈정치적 주장이 가장 정치적인 법이다. 게다가 정치성을 표방하는 경우보다 정치적 효과도 크다. - P27

인간관계에서 ‘갑‘은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 잃을 것이 없는 사람, 덜 사랑하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권력이 두려워하는 인간은 분명하다. 세상이 넓다는 것,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다. - P33

분노와 평화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뜻이 없다. 누구의 분노, 누구의 평화인가가 의미를 결정한다. 따라서 나는 용서가 저주보다 바람직한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해자의 권력은 자기 회개와 피해자의 용서를 같은 의무로 간주하는데서 부터 시작된다. - P61

우리 사회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암묵적으로든 노골적으로든 용서를 강요하는 상황은 낯선 일이 아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대표적인 예다. ... 분노, 고통, 복수에 비해 용서, 화해, 평화는 우월한 가치로 간주된다. ... 고통은 감정의 물질이다. 달리 해석될지라도, 크기가 작아질지라도,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몸에 있다. 가해자의 몸은 고통 경험이 없으므로 온갖 절대자의 이름으로 자기 마음대로 구원, 용서, 평화라는 관념의 향연을 주관할 수 있다. 초월(超越 dis/embodiment)은 득도가 아니다. 경험 없는 몸은 현실과 무관하므로 구원도 마음의 평화도 쉽다. - P64

분노는 개인의 마음 상태가 아니라 구조적 권력 관계다. 마음으로 다스릴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피해자의 분노는 관리나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불가능에 가까운 타인에 대한 헤아림, 깊이 있는 지성의 영역에 놓여져야 한다. 나는 용서와 평화를 당연시하는 사회에 두려움을 느낀다. 2차 폭력의 주된 작동 방식이기 때문이다. - P65

문학평론가 환현산의 표현대로, "우리의 삶이 아무리 비천해도 그 고통까지 마비시키지는 못한다." 고통이 아픈것이 아니라 마비된 고통이 불러올 고통이 끔찍한 것이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 P72

차별 경험을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을 배려한다. 그래서 경험한 자아와 말하는 자아는 분열된다. 또 분열되어야만 한다. 모든 말하기, 글쓰기가 협상인 이유다. 원래 이 자아 분열 개념은 나치 학살의 생존자들이 자기 경험을 믿어주지 않을 것을 걱정하여 자아를 조정하는 고통에서 발전했다. 지금은 모든 담론 행위에 공통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P83

내가 지지하는 평화는 이런 진술들과 통한다. "폭력, 나는 그것을 지성이라 부른다" (마틴 루서킹), "평화는 (여성성이 아니라) 여성이 주로 해왔던 돌봄 노동이 공적 영역의 가치로 전환될 때 가능하다."(사라 러딕), "열려 있다는 것은 항쟁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며 폭력은 인간의 뛰어난 공존 양식이다."(사카이 나오키), "평화학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기존 학문 틀의 문화적인 폭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요한 갈퉁)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는 자학이 아니다. 인간은 ‘낳아지는‘것이지, 누구도 ‘태어나지‘ 않는다. 문법과 무관하게 탄생은 능동태일 수 없다. 자기 생명을 스스로 생산하는 사람이 있나? 우리는 동의 없이 태어났다. 살기 싫은 사람에게 이만큼 열받는 일도 없다. 의지로 가능한 것은 자살뿐이다. 처음 이 말을 접했을 때 놀랐다. ‘자기가 태어났고‘ 그래서 ‘죄송하다‘니.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에 죄송하다는 메시아적 죄책감. 이 어마어마한 자의식와 이를 따르지 못하는 자식. - P100

백번 양보해서 ‘생각하는 동물‘이면 뭐하나. 문제는 무엇을 생각하느냐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찰나를 사는 먼지다. - P108

어머니 숭배와 ‘창녀‘ 혐오는 모두 남성 사회의 판타지다. 섹슈얼리티를 기준으로 여성을 이분하여 시민권 박탈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남성은 ‘아버지와 남창‘, ‘곰과 여우‘로 구분되지 않는다. - P112

구조와 개별 남성이 변해야 하는데, 남성성으로 조직된 가족, 사회, 국가, 시민사회가 먼저 변할리 없다. - P147

관습은 정당성을 갖는다. 과거에 받아들여졌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권위를 갖는다 - P186

한국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는 적대하거나 논쟁하는 세력이 아니다. 정상적인 국가 건설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되 방법이 다를 뿐이다. 공통점은 성 차별과 주류 지향이고, 차이는 ‘종북‘이라는 기이한 용어에서 보듯 제대로 된 국가을 만드는 일에 통일을 포함하는가 여부와 그 방식일 것이다. - P206

민족이 성찰과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피해의 기억으로만 한정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누가 이득을 볼까. 나는 한국이 일본에게 좀 무관심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가해자는 뻔뻔한데 한쪽의 지나친 ‘피해의식‘은 좌절, 절망, 원한을 순환하는 나르시시즘으로 추락하기 쉽다. - P310

평화는 평화로운 상태여서는 안 된다. 공동체의 문제가 공유되고 약자의 고통이 가시화, 공감, 분담되는 ‘시끄러운‘ 상황이 평화다. 지원병제는 특수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격리시키고 조용한 무관심을 조성한다. 징병제보다 무서운 것은 그것이다. - P321

평화에 대한 욕망은 반反평화적이다. 평화를 둘러싼 경합이 평화다. ‘모든 이(平)가 사이좋은 상태(和)‘는 존재할 수 없다. 이 불가능한 상태를 약자가 인내함으로써 가능한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 평화다. 강자의 양보로 평화가 실현된 경우는 없다. 양보했더라도 그것은 정의이지, 관용이나 배려가 아니다. - P331

평화는 가장 당파적인 개념인데 보편적인 가치처럼 인식된다. 일단,‘평(平)‘자체가 일반화의 폭력을 뜻하는 글자다. 평등도 마찬가지. 평등 실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등의 기준이다. - P328

지구상 인구가 70억 명이라면 70억 개의 당파성이 있지만, 대개 사람들은 객관성으로 간주되는 강자의 당파성과 동일시하며 살아간다. - P339

기성 정치(인)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은 일종의 집단 우울증 현상이다. 암의 증상이 암 자체가 아닌 것처럼, 우울증의 주요 증상은 우울이라기보다는 기운 없음과 인간 혐오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약물과 사랑이라는 ‘영적인 치료(상담 요법)‘를 병행한다. 사람에 대한 신뢰 회복이 몸을 낫게 하는 것이다. - P343

사상가는 그 자신이 사유의 도구이며, 개인의 감정은 연구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대개는 약점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자서전과 과학의 뒤엉킴‘이 정신분석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지식은 결국은 한 개인의 이야기다. 백인 중산층 남성의 경험이 보편적 이론으로 여거진 것은 권력의 작동 때문이다. 그들의 이론이 역사가 아니라, 그들의 이론이 역사가 된 과정이 익셔다. - P349

우리가 무엇에 대해 말하는 것은 대상에 대한 순수한 보고가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 태도, 입장을 드러내는 행위다. (투사!) 모든 발화는 객관적일 수 없다. 지식은 인식자의 렌즈를 통해 우리 앞에 재현(‘再‘現)된 것이다. 공부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인식자가 자기에 대해 아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사회와 공유하는 것이다. - P350

도그마, 관점, 당파성은 사유의 본질적인 속성이지 결함이 아니다. 이를 부정적으로 여기고 종합과 객관화를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은 무지의 결과다. 지성의 반대말은 절충, 균형, 원칙...... 이런 사고들이다. 정론(正論)은 정론(定論)이 아니라 정론(政論)이다. 정론은 당위가 아니라 경합과 갈등으로 획득하는 가치다. - P355

약자의 대응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객관을 향한 욕망을 접고 자기 입장을 더 깊이 있게 전개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당신 입장은 뭐냐?"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들 뜻대로 균형 감각과 중도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물론 불가능하다. 균형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언어의 세계에 중립이란 없기 때문이다. 객관성은 권력자의 주관성이라는 사실을 모르는가? 익명성은 가자 무서운 서명이고 객관성은 가장 강력한 편파성이다. - P357

여성주의는 ‘전쟁과 평화‘가 국가 주권 단위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사회적 약자의 일상과 무관한 구별이라고 비판해 왔다. 폭력 피해 여성,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성 산업 종사 여성, 인신매매를 당한 여성, 난민 여성은 사는 게 전쟁이다. 베냐민의 테제가 바로 이것이다. 고통받는 사람에겐 인생의 시시각각이 비상이고, 민중의 고통으로 품위를 유지하는 지배자의 입장에서는 민중의 각성이 비상이다. ‘베냐민과 우리‘는 진정한 비상 사태, 즉 억눌린 자를 위한 봉기를 일으켜야 하는데, 지배자와 역사관을 공유한 진보 진영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 P360

여성주의나 마르크스주의는 당파적이지만 인간 해방을 위한 ‘계몽‘이라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모든 사유는 경합하는 운동이지 그것을 독점할 자격이 있는 집단은 있을 수 없다. 당연히 남성 페미니스트는 가능하고 또 절실하게 필요하다. - P440

여자는 자기를 잘 아냐고? 인종 차별 사회에서 유색 인종은 자기 처지를 알지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말로 답을 대신하겠다. - P443

무지는 약자를 무시하는 권력에서 나온다. 자신을 ‘남성‘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여성‘과 ‘흑인‘의 목소리를 공부하지 않는다. 주체가 타자를 모르면 자기를 알 수 없다. 간단한 이치다. - P445

몸은 자원이 아니라 행위자다. 그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몸은 교환, 사용, 묘사당하는 객체가 아니라 사고와 생활을 체현하는 사람 자체다. 몸은 사회이며 정신(mindful body)이다. 몸에 대해 쓰는 것은 인물을 쓰는 것이고 인생에 대해 쓰는 것이다. - P467

여성주의 심리학에서는 분노를 힘(empowering)으로 본다. 분노는 타인의 공감,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복수‘로만 ‘해결‘된다. ‘마음의 독‘인 화는 문명의 동력이기도 한다. 분노 조절보다 누구이 분노인가가 더 중요한 의제다. - P471

내 행동만이 나의 진정한 소유물이다. 나는 내 행동의 결과를 피할 길이 없다. 내 행동만이 내가 이 세상에 서 있는 토대다. - P473

이해(理解)는 읽는 이의 이해(利害)관계와 관련이 있다. 그러니 이해는 난이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영역이다. 이해의 영어표현(under/standing)이 좋다. 이해하려는 대상 아래 서 있으려는 겸손한 마음, 이것이 첫 번째 자세다. 이해는 사랑과 지식을 아우른다. 사랑은 수용이다. 상대를 수용할 때 이해는 따라온다. - P509

전국 각지의 맛집을 소개하는 책들이 봇물을 이루지만, 음식을 만들고 처리하고 치우는 과정에서 노동의 구체성을 말한 책은 거의 없다. - P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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