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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문화란 무엇인가
테리 이글턴 지음, 이강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3월
평점 :
진짜 문화란 뭘까? 비빔밥 먹는거? 여아를 살해해서 남녀 출생 비율이 차이가 나는거? 한복을 입는거? 첫경험은 사창가에 가서 돈주고 해야하는거? 이런 문화가 다 짬뽕되어서 한국 문화가 한류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그래서 문화가 뭔지 좀 더 잘 알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내용은 쉽지 않은데 번역이 잘 되었는지 잘 읽힌다. 문화의 기원, 문화라는 정확한 뜻, 문화 대 문명, 대중 문화, 문화와 정치, 문화와 종교, 문화와 예술, 문화와 언어... 무엇하나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을 시작으로 문화에 대한 연구를 더 잘 해볼 수 있을것 같다.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다고 눈꼴시려워하며 한국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는 일본 연예계의 뻘짓을 보면서 더욱 문화란 뭔지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우리 일본 문화가 이렇게 훌륭한데 왜 알아주지 않는가. 무엇인 문제인가. 우리가 한국보다 못한게 무엇인가" 이런 논의만 해대는데, 애초에 문화의 우열을 가릴 수 있는건지, 그리고 누구에게 인정을 받아야 문화가 훌륭한건지, 훌륭하면 됐지 왜 서양의 인정을 그렇게 갈구해야만 하는지 다양한 갈래의 질문을 할 수 있고, 이 질문에 대해 속시원한 답을 찾아보고 싶다.
대개 문화는 ‘무엇을 하는가‘보다 ‘어떻게 하는가‘와 더 관련이 있다.
집합적 정체성의 형식은 대부분 타인을 배제하면서 이루어지며, 때로는 필연적으로 그렇게 해야만 한다.
산업자본주의 사회는 미술관, 대학, 출판사와 같은 제도를 창조할 부를 만들어내는데, 이 제도들은 그 사회가 스스로의 탐욕과 속물성을 비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창조론은 세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창조에 아무런 목표가 없다는 사실에 관한 것이다.
만일 고통으로 인해 파르테논 신전이 세워지고 자신과 같은 천재가 만들어진다면 그런 고통은 전적으로 수용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니체는 이렇게 외쳤다. "모든 ‘좋은 것‘의 뿌리에는 얼마나 많은 피와 잔인함이 박혀 있는가!"
단지 자신의 심리를 영리하게 대함으로써 신경증을 치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농장주로서 당신은 소작농들의 필요에 섬세하게 대처하면서 스스로 양심적인 농장주로 여길 수 있으나, 이것은 대개 당신의 특권적 지위를 합리화하는 방식이다.
문화가 항상 권력의 매개체는 아니다. 그것은 또한 권력에 대한 저항의 방식일 수 있다. 뒤이어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가 문화를 적용해 정치 영역에서 실제로 권력에 저항하는 방식을 살펴보겠지만, 이 명제는 예술적이고 지성적인 문화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예컨대 문학 정전이 정치적 무지몽매함의 보루라는 주장은 말할 나위 없이 우스꽝스럽다. 사실은 수많은 고급 문학 혹은 소수자 문학이 대부분의 대중문학보다 훨씬 더 정치적으로 전복적이다.
그가 보기에 권력은 허구와 가장으로 작용하는데 곧 예식으로 자신을 숨기면서 엄격함을 부드럽게 만든다. 권력은 의무를 우리의 마음 위에 기입함으로써 우리의 헌신을 얻어낸다.
권력의 기초는 망각이다. 원초적 범죄를 숭배받는 적법성으로 전환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시간이다.
모든 권력은 어느 정도는 협잡꾼처럼 기만한다. 통치자들은 자신의 권위가 자의적이고 근거 없음을 알고 있으나, 그들의 신민들은 다르게 생각하도록 만들려 한다. 이 과정에서 문화나 미학 - 존중되는 관습, 귀족층의 화려한 매력, 왕권의 성스러운 분위기, 의회의 위용-은 핵심일 정도로 중요하다.
대중이 필요로 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행복감과 위안으로, 오직 상징과 의례를 효과적으로 잘 사용하는 사회만이 이를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번영하기 위해서 국가는 자신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변모시켜야 하는 것이다.
헤르더는 "남자나 국가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보다 그들의 진정한 인격을 보여주는 사실은 없다"고 말하면서 여성의 해방을 용감하게 외친다.
영국은 아일랜드인의 수사학적 능란함에서 이익을 얻어내는 나라였다. 단어에는 돈이 들지 않고, 위트와 판타지와 언어적 풍부함은 아일랜드 작가들이 자신들의 황량한 식민지적 존재성을 딛고 행사할 수 있었던 유리한 칼날이었다.
토착 언어가 거의 파괴되었던 식민지에서 온 이들은 모국어를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에 비해 더욱 날카로운 언어적 감수성을 가지기 쉽다. 그들이 써내려가던 언어가 정확히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은 언어 안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이들보다 더 촘촘한 자의식 - 모더니즘의 실험적 글쓰기에 적합할 수 있었던 자의식-을 가지고 그 언어에 접근하는 경향을 보였다.
빈곤과 고통으로 인해 무감각해져 있는 한, 대중은 문화에 대해 적절한 반응을 보일 수가 없고, 그런 대중의 서투른 평가에 타협하려 할 때 예술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D.H.로런스는 "인간의 모든 에너지를 그저 구매를 위한 경쟁에 쓰도록 강요하는 비천한 힘"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현재에 대한 대안 가능성을 그려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상상력이고, 이 상상력은 미학적 힘일 뿐 아니라 정치적 힘이 될 수 있는 역량이다.
이성은 피도 눈물도 없는 합리성의 도구적 양식으로 축소되어 자신의 이득을 계산하는 일 이상은 하지 못하게 되었다.
불만족은 우리의 본성이며, 이 불만족을 다루는 과학의 이름이 정신분석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종족적, 종교적,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의미에서의 문화 때문에 학살을 자행하거나 순교를 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언어, 믿음, 친족관계, 상징, 유산, 조국은 오늘날 갈등을 치명적으로 만드는 잠재적 원천이다.
정치는 적대를 만들어내는 그런 주제들에 대해 즉각적인 해결책을 주지 않지만, 문화는 우리에게 정신적인 해결책을 제공해줄 것이다. 따라서 문화는 종교가 하는 것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데, 바로 이것이 문화가 그처럼 자주 종교적 믿음의 세속적 판본이 되려고 했던 하나의 이유다.
그러니까 다른 문화와 조우할 때, 우리는 타인들을 한 가족으로 인식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새로운 눈으로 응시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자신 안에 있는 어떤 뿌리 깊은 타자성과 대면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레비스트로스가 <구조인류학>에서 말하듯, 우리는 "타인 중의 타인으로"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문화는 더 이상 근대적 공장제 생산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매우 수익이 높은 공장제 생산의 한 영역이 되었다.
대중문화는 전면에 부상했으나, 대부분은 대중이 생산해내는 게 아니라 대중이 소비하는 문화였다.
우선, 대중문화는 그 영향력을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로 확장했다. 그다음 대중문화는 사회적 존재의 나머지 영역들과 통합하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문화와 사회 간의 구별은 점점 불확실해져갔다. 정치는 갈수록 이미지, 아이콘, 스타일, 스펙터클의 문제가 되었다. 교역과 생산은 포장, 디자인, 브랜드, 광고, 홍보에 더욱더 의존했다. 개인들 사이의 관계는 기술적 텍스트와 이미지에 의해 중재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인문적 비판의 핵심부로서 수세기에 걸친 전통을 가진 대학은 현재 야만적일 만큼 속물적인 관리 이데올로기의 지배 아래 놓인 사이비 자본주의 기업으로 전환되면서 사라지는 중이다. 한때 비판적 성찰이 무대였던 학술기관들은 마권 판매소와 패스트푸드점과 더불어 시장 기관으로 점점 축소되고 있다.
초국가적 자본주의는 세계시민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수많은 세계시민 주체들 사이에 편협성과 불안정을 야기하여 그들을 자신의 영향 아래 두는 경향이 있다. 이 불안정으로 인해 세계인들은 세계주의 카페가 아니라 인종주의와 국수주의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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