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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민낯, 러브 주식회사 - 자본주의로 포장된 로맨스라는 환상
로리 에시그 지음, 강유주 옮김 / 문학사상사 / 2021년 4월
평점 :
미국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을 '소비'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이성애 로맨스에 환장한 한국도 만만치 않다.
사랑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은 없지만, 결국은 사랑이 제일 중요하고 사랑이야말로 사람을 살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도처에 있다. 그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은? 프로포즈와 기념일 챙기기 등 이 모든 것도 소비를 배제하고 말할 수 없다. 유명인의 결혼식은 항상 화제가 되고, 요즘은 결혼식 준비 과정부터 세세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많이 생겨났다. 이 모든게 다 지겨운 이유는,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런 화려한 결혼식은 절대 올리지 못할 것이라 이상한 열등감만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 기반이 탄탄하면서 정신이 똑바로 박힌 (성매매 안하고, 성폭력 안하고 여자를 존중할 줄 아는) 남자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애초에 저버렸기 때문이다.
데이팅 앱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게 만든다. 잠수타고 메시지를 그냥 지워버리면 끝이니까. 서로 감정적 소모를 하기 싫어 한다. 하지만 인간 관계는 (게다가 애정을 거래하는 자리라면 더군다가) 어느 정도의 감정 노동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노동의 대가가 형편없다.
프로포즈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하는 인간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유튜브에서 프로포즈 영상이 업로드 되어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너무 끔찍한 관종들이다. 그 사람이 너에게 중요한 파트너가 된다는 일을 왜 세상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진짜 쓸데없는 짓도 가지가지라고 생각했다.
로맨스가 실은 우리를 파괴하는 동시에 살리기도 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에 관해 더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질문들이다. - P7
우리는 상황이 악화될수록 더욱 로맨스에 의존해 미래의 희망을 느끼려고 한다. 자본주의가 로맨스의 원인이라서가 아니라, 로맨스는 암울한 자본주의로부터 가장 즐겁게, 동시에 가장 미래지향적으로 할 수 있는 도피이기 때문이다. - P13
사실 로맨스는 세상의 구조적인 위협에 대한 개인화된 해결책이다. 로맨스는 민족주의와 마찬가지로 결코 미래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할 뿐이다. 미래가 개인이 아닌 공동의 것이며, 지금 심각한 위험에 처했다는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게 막는다. - P14
로맨스는 우리를 안심시켜 정치가 아닌 사랑에 초점을 맞추도록 만든다. 로맨스는 공적인 영역을 외면하고, 세상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애정 관계와 가족에만 집중하라고 가르친다. - P15
진정한 사랑이 행복하고 안정된 미래로 이어진다는 생각은 산업화 그리고 성과 계급, 인종, 성별에 대한 근대사상과 함께 시작되었다. - P18
로맨스는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나타내는 사상이다. 이데올로기로서 로맨스는 완전한 시민권과 국가가 주는 추가 권리와 특권 뿐 아니라, 해피엔딩의 자격이 특정한 사람 (대개 백인이고 이성애자이며 부유하고 젠더 규범에 부합하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가르친다. - P18
백인성과 이성애, 결혼 여부는 미국 시민권에 언제나 중요한 요소였다. - P24
문화가 우리더러 따르라고 가르치는 사랑의 대본은 무엇인가? 소비자 자본주의는 해피엔딩을 꿈꾸는 우리에게 어떤 상품을 파는가? 사랑은 어떻게 ‘생산‘되고 여러 산업과 이데올로기에 ‘통합‘되어 사랑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가? - P33
친절한 사실주의는 미래를 개인화하지 말라고, 환경 파괴와 종교 근본주의와 부의 집중 문제를 해결하는 자원을 함께 모으는 것이야말로 개인의 해피엔딩을 찾는 방법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화가 아니다. 사랑보다 ‘휴머니티‘를 훨씬 더 중시하는 세계적인 운동이 필요하다. - P34
로맨스 문화와 로맨스 시장은 우리가 사랑을 배우는 방법에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그냥 사랑법도 아니고 여자 아기를 신부로, 남성을 포함한 모든 사랑을 로맨틱한 존재로 바꿔놓는 특정한 사랑법을 배운다. - P44
귀부인은 아이와 마찬가지로 성적 포식자에게서 보호받아야 했다. 귀부인은 욕망이 없고 순수해서 욕망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 P47
로맨스의 중심에는 경제적 환상도 자리한다. 사랑에 빠지면 물질 세계에 관한 걱정이 사라지므로 미래가 안전해질 수 있다는 환상이다. - P68
훅업 문화는 "이제 미국 역사의 일부분이며 젊은 사람들이 성적 만남을 시작하고 로맨틱한 관계를 이루는 가장 새로운 방법이다." 그렇다고 요즘 대학생들이 예전 세대보다 섹시를 더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반세기 동안은 그렇다. 달라진 점은 섹스가 인간적인 감정과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문화가 대학가에 만연하다는 것이다. - P90
로맨스는 다른 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물질세계를 비물질적 상징이라는 연막으로 가린다. 미국의 지정학적 관심사가 "민주주의에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로 위장된 것처럼, 로맨스는 인종과 계급, 젠더, 민족, 성 지배 엘리트 같은 것들을 동화 같은 결혼식과 해피엔딩의 연기에 가려 보이지 않게 한다. - P166
로맨스가 이데올로기로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행동이 거의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습관적이기 때문이다. - P176
허니문과 인게이지먼트문, 얼리문은 연간 7조 6,000억 달러 규모로, 전 세계 산업에서 6위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에 속한다. 세계적으로 ‘관광산업‘이 거두는 수익의 규모가 농업과 거의 비슷하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더욱 감이 잡힐 것이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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