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천국, 하버드
멜라니 선스트롬 지음, 김영완 옮김 / 이크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하버드 교사 출신 기자가 하버드 기숙사 내 룸메이트 사이에 일어난 살인, 자살 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하버드 내에서 살인사건이 났다는 것만 해도 충격적인데 저자는 보다 더 깊게 하버드의 효율주의, 자유와 책임이라는 명목 하에 방치되고 있는 학생들의 정신건강 문제, 교수 중심주의의 그늘 등을 다루고 있다.


1. 가해자

가해자인 에티오피아 소녀 시네두는 가난한 나라 에티오피아의 꿈과 희망이었다.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감정을 드러내는데 익숙지 않으며 공부밖에는 관심이 없는 소녀. 그녀가 같은 방 룸메이트를 마흔 번 이상 칼로 찌른 다음 자기도 자살을 했다는 소식은 그녀를 아는 에티오피아의 가족들, 선생님들에게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으로 한 소녀의 삶은 지금까지 비춰져 왔던 것과는 영 다르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가족들은 그녀가 행복했다고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가족은 “자신에 대해 터놓고 얘기할 수 없는 공간” 이었다. 제일 안정감을 느껴야 할 어머니마저 그녀에게는 혐오스러운 존재에 불과했다. 그녀는 공부에 뛰어난 두각을 드러냈지만 그녀를 담당했던 한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시네두는 뛰어난 학생이었지만 학문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어요.”

국내 유일의 국제고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시네두는 외국인 친구들과도 에티오피아 친구들과도 마음을 터놓고 어울리지 못했다. 에티오피아는 이념으로 인한 내전 이후로 타인보다 가족을 강하게 의지한다. 이러한 국내 환경 속에서 특히 “여성”은 얌전하고 자기 의견을 내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대학교 입학 전까지 가족 외의 타인과 (심지어 가족과도) 깊은 상호교류를 나눠보지 못한 수재 소녀는 하버드에 입학 후 당황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모든 치부까지도 털어놓고 이야기를 하는 교류방식에 소녀는 익숙해지지 않았고 진정한 친구를 만들고 싶어도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한 소녀의 자아분열적인 일기와 인터넷을 통해 무작위로 발송한 이메일에서 나는 깊은 외로움과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내가 사춘기 때 느꼈던 불안감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날 발견하지 못하길 바라면서 끊임없이 누가 날 발견해 주길 바라는.” 감정.

이러한 우울증과 자아분열적인 정신질환은 개인의 노력으로는 탈출하기가 쉽지 않고 그녀 자신도 외부에 도움을 청한 적이 있으나 하버드에게는 모르는 일일 뿐이다.



2. 피해자

피해자인 베트남 소녀는 보트를 타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난민 한 보트피플로 항상 가족들을 걱정하며 주위사람들을 보살피는 사려 깊은 성격으로 유명했다. 가해자와 비슷하게 “가난한 나라”에서 출발해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으나 그녀는 항상 자신의 슬픔보다 남의 슬픔을 생각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시네두와 그녀에게 다른 점은 그녀가 특유의 긍정적이고 강한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 외에도 그녀가 어릴 적에 미국으로 건너와 유년기를 미국 교육기관에서 보냈다는 배경이다. 본문에서는 그녀의 다정함, 적극성, 사려 깊음 등 개인적 자질이 크게 부각되지만 이런 부분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3. 하버드

하버드는 매년 학생이 없는 학과도 없애지 않고 꾸준히 연구비와 교수의 월급을 제공하고 있다. “학문의 전당의 불꽃을 꺼트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주장이다. 한국의 거의 입시학원이 되어버린 듯한 대학과 비교해 보면 정말 부러운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하버드도 효율주의를 채택하게 되면서 어느 정도 바뀌게 되는데 그 부분이 학생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교내 보건시스템이다. 판정이 어렵고 오랜 시간의 진료가 필요한 정신과 치료를 대폭 축소하고 학생들의 정신과 치료로 인한 기숙사 이용, 수강에 있어 거의 내쫓다시피 한다. 미국 시내에 하버드 소유로 된 건물이 충분히 있는데도 학생이 기숙사에서 나와야 하는 상황에서 병원에 치료를 하러 다닐 동안 건물을 제공 받을 것을 요구했더니 “학교 재정상의 손해”를 들어 거부하는 식이다. 재정상의 손해라니 어쩔 수 없지. 대학도 먹고 살아야하니까. 라고 내심 어느 부분은 이해가 되기도 하는 내 자신의 감각 자체가 이상하다. 효율주의, 자본주의는 어느 상황에서나 절대선이라고 인정되는 절대가치인걸까?

또한 저자의 취재과정에서 드러나는 하버드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태도 또한 문제다. 사태의 잘못과 예방 보다는 이미지 관리에 급급한 모습은 커다란 조직에게는 피할 수 없는 걸까.

또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20대 초반에 의지할 수 있는 기숙사 사감 및 멘토들도 각자 자기 일과 연구에 바쁜 의과대학원 학부생 및 무관심한 교수뿐이라는 것도 심하게 방만한 대처다.

물론 책 자체가 오래 된 만큼 하버드 시스템 자체가 개선되었으리라 생각하지만 현재 미국 상황에서는 더 나빠졌을 수도 있을 것 같다.


4. 기자

기자도 사람이라 이 책의 저자도 가해자, 피해자의 주변 사람들과 접촉할 때 거리낌을 느끼고 직업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구절은 “사람들이 오히려 처음 본 사람에게 더 진실해 지는 건 자기 이야기를 감추고 싶으면서도 누군가 들어줬으면 하는 감정 때문” 이라는 말이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며 혼자 대나무 밭에 얘기하고 후련해 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결국 기자는 그러한 사람들의 대나무 밭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또 저자의 진실을 추구하는 끈기와 집념도 인상 깊었다.

그리고 하버드 대학 출신이자 하버드에서 강의까지 했던 전 교수였던 만큼 저자의 용기와 진실성이 돋보였다. 어떻게 보면 자기 대학의 이미지가 실추 될 수 있는 사건을 가장 가까이서 파헤치고자 뛰어든 것이니까. 팔은 안으로 굽는다며 자기 사람들의 잘못은 덮고 감추려는 모습과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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