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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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진보, 하지만 역시 당신도 마초?

거의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얘기만 나오는 타임라인이기는 하지만, 한 때 내 트위터 타임라인은 <나꼼수>에 대한 비아냥과 분노로 가득찼던 적이 있었다. 정의로운, 진보적 가치를 이야기하면서 비키니 시위를 폄하했다는 이야기, 과열된 <나꼼수> 팬덤들에 대한 비아냥, 골방토크의 한계 운운하는 말들이 나올 때마다 난 이리저리 흔들렸었다. 뭐 지금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중이다. 사실 정봉주는 재밌긴 하지만 입이 방정이라 크게 덤태기 쓰기 쉬울 것 같고(진중권에게 시기하는거냐고 한 인터뷰는 어이가 없었다.) 김용민의 욕설도 마냥 듣기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물론 개인적으로 만나면 예의바르고 조용한 분일 것 같기는하다ㅠㅠ) 이도저도 아닌 중립으로 객관성을 지키려 할 때마다 남자친구의 '쿨한척하는 회색분자' 이야기가 왕왕 머릿속에서 울리곤 했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역시 좋네 

게다가 초판 한정 사인본으로 냅다 지르고는, 읽지 않았다. 좋은 책일수록 아껴두었다 읽으려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고. 사놓고 보니 책장에 꼽아놓은것만으로 만족이 됐던것도 같다. 그러다 결국 산 지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 초판본을 지르던 열기도 식고 위의 심정, 즉 어디 얼마나 마초적인가 보자. 하는 눈으로 읽고 나니 오히려 더 좋았다는 결론. 글을 참 잘 쓴다 이사람.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내용이 가볍지는 않았지만 금방 읽었다.

 

|공부도 되는 내용들

지금까지 NL이나 PD에 대해 아무리 들어도 헷갈렸었는데 정리가 됐다. 혼란스러웠던 두 집단 사이의 대북문제 관련 입장 차이나 그걸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등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단순히 MB 까는 내용만 있었으면 정말 실망했을것 같은데, 그런 부분은 앞쪽으로 압축해서 간단하게 끝내고 진보정당과 보수정당, 앞으로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 등을 제시하는 부분이 멋있었다.

 

또 삼성문제. 찜찜해하면서 불매운동을 바라봤던 나에게는 좋은 해답이 되었고, 기업가가 잘나서 남긴 이익으로 비자금 만드는게 뭐가 나쁜건지? 에 대한 대답도 읽을 수 있었다. 삼성으로 대표되는 족벌체제가 우리 생활에 끼치는 악영향도 좀 더 노골적으로 들여다 봤고.

 

통일 문제에 대한 시점도 마음에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통일에 대한 영상물을 보며 왜 통일을 해야 할까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굶주리는 북한 사람들이 불쌍하고 북한의 공산주의체제는 나쁜 것이니까"라는 대답을 학교에서 원했던것 같아 그렇게 썼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서 이 정도 수준의 프레임이라면 통일은 힘들 것이다. 사람은 자신에게도 이익이 있어야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려 드니까.
분단상태애서 지불되는 무기 구입비용, 미국으로 흘러들어가는 자금, 민간에 이양되는 군 가산점제도, 남녀간의 싸움, 반도국으로 느끼는 한계 등등, 실제로 우리가 분단국가에 살면서 알게모르게 치러지는 손해에 대해 정확하게 자각해야겠다고 느꼈다.

 

|기억에 남는 문장

사람들이 대통령을 선택할 때 논리를 동원하는 건, 그 사람에게 꽂힌 마음을 정당화할 도구로 쓰는 거지, 논리의 귀결로 누군가를 선택하는 게 아니다.  
 P.73 

 

 권력의 진짜 힘은 누군가를 치는 데 있는게 아니라, 충분히 칠 만한 정보를 가지고도 치지 않는 데 있다. 
 P.125 

 

 비자금이란 게 자기 돈을 자기가 가져간 게 아냐. 남의 돈을 훔친 거라고. 이건 절도야. 
 P.154 

 

 우리 모두의 마음 한구석에 노예근성이 있다고. 원래 우리 인간의 삶이란 게 불확실하잖아. 사람들은 이 불확실성을 제거해주는 자기보다 큰 존재에게 기대고 싶어 해.  
 P.163 

 

 불매운동은 개개인을 딜레마에 빠지게 만들어. 삼성이 나쁘다는 주장을 접하긴 했지만 그래도 난 1위 기업에 입사하고 싶어. 내가 그 거대한 부조리를 직접어떻게 할 수는 없고 당장 나한테 더 중요한 건 거대 기업에 입사하는 거니까. 삼성이 나쁘다는 주장에 적극 동의하는 사람들조차 품질이 더 우수해서 쓰고 있는 삼성 제품이 분명히 있거든. 그럼 그런 사람들은 죄의식을 느끼거나 자기 합리화에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게 된다고. 삼성과 이건희를 동일시하는 전략의 성공이 사람들에게 그런 딜레마를 안긴 거지. 삼성 제품 불매운동이 효과적이지 않은 요인 중 하나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삼성 물건을 좀 불매한다고 해서 이건희에게는 전혀 타격이 안 가요. 
 P.167 

 

 자신의 권력의지는 어떠하고 정치적 욕망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그리고 그 욕망과 조직의 목표를 어떻게 합치시킬 것인가 
 P.190 

 

 종교가 유지되는 근본적인 힘이 결국 죄의식이거든. 누구도 그 율법을 다 지키고 살 순 없다고.(중략)
죄인이 되지 말라고 요구하지만 아무도 도달할 수 없기에 모두가 죄인이 되고, 모두가 죄인이기에 종교가 유지되는 거라고.(중략) 그렇게 모두를 절대적인 진보 가치를 외면한 죄인으로 만들어버리지. 그래서 불편한 거야. 그 죄의식 마케팅이. 
 P.192 

 

 윤리의 문제는 결국 얼마나 선명한가의 문제로 이어지지. 그건 정치가 아니라 종교의 영역이라고.

지_우리는 올바르기 위해 사는 건 아닌데.

김_정당이란 기본적으로 내 욕망을 어떻게 수용하고 대리하고 구현할 것인지가 굉장히 중요한 조직인데, 우리 진보는 내 욕망을 어떻게 통제하고 절제할 것인가에 대한 요구만 있다고.  
 P.193 

 

 그건 순전히 대남용 제스처일 뿐이지. 우린 북한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습니다. 하는. 일반인들이야, 시사평론가야, 개별 정치인이야 얼마든지 3대 세습에 대해 비판적 논평을 할 수 있지만, 그리고 그게 옳지만, 정당 차원에서는 그게 옳기만 해서 대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거지. 
 P.196 

 

 외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상대국이 절대 취할 수 없는 스탠스를 협상의 첫 번째 조건으로, 그것도 공개적으로 내세운다는 건 그 협상을 아예 하지 않겠다는 거거든. 
 P.200 

 

 또 그런 섬 의식은, 우리가 갇혀 있고 세계가 바깥에 있다는 폐쇄 공포와 우린 세계의 구석에 있다는 변방 의식을 낳기도 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선 그러므로 끊임없이 밖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위기감으로 연결되기도 했고.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인 거지. 공짜가 없다는 게 모든 일엔 반드시 대가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대가를 지불하면 그로 인한 이득도 반드시 있다는 소리거든 
 P.206 

 

 박근혜는 아버지가 상징하는 것의 계승자야.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삶, 안정적이며 지속되는 성장, 사사롭지 않은 국가. 진보진영은 그런 상징이 사기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사기라고 말한다고 해서 이미 상징이 된 걸 해체할 수는 없다. 
 P.265 

 

 우리가 겪는 무수한 일상과 삶의 갈등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자기 바닥을 확인하는 과정, 그건 자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인간인지 받아들이고 하나의 독립적 인격체가 되어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절차지. 그리고 그런 과정을 겪고 나서야 자신만의 균형 감각을 획득하는 거다.
겪어도 모를 순 있다. 하지만 겪지 않은 건 아는 게 아니라 아는 척이다. 
 P.268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점철되어 있다.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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