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마리아라는 어엿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써틴이라 불리는 소녀는 그럴만도 할 것이 13일 13시 13분, 그리고 정확하게 13초에 태어났다. 그녀의 엄마는 병원 13호실에 있었으며, 태어난 지 13일 뒤에 그녀를 집으로 태워다준 택시 역시 같은 번호를 달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13의 소녀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던 써틴은 엄마가 죽고 난 후 유일한 혈육인 할아버지로부터 독일로 오라는 편지를 받게 된다. 평범한 여행인 줄 알았던 독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써틴은 끔찍한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하기 힘든 일들은 차례로 겪게 되고 힘들게 도착한 할아버지 집에서 조차 그리 편치 않다. 음습하고 어딘가 무시무시한 집에서 지내게 된 써틴은 비밀의 문을 발견하게 되고 그곳으로 들어가자 오랫동안 그 집에 갇혀있던 아이들을 만나게 되고 그 때부터 집과 써틴의 집안에 얽혀있는 저주와 비밀들을 풀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미리 먼저 얘기하자면 이 책의 총 페이지수는 704쪽에 달한다. 책을 읽기도 전에 질릴 만한 두께지만 막상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술술 잘 넘어가서 어느새 반권을 다 읽게 되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다음에 펼칠 장에 한 손에 쥔 채로 책을 읽게 될 정도였다. 이 소설은 워낙 어릴 적에 읽었던 동화라 과연 내가 읽긴 읽은 건지 아니면 그저 전해 듣고 들어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지 헷갈리는 작품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 거기에 13이라는 보기만 해도 저주가 걸려있고 재수없을 것같은 숫자를 등장시켜 어떤 때는 으스스한 느낌으로 어떤 때는 미스테리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또 하나 이 소설의 특이한 점은 써틴이 할아버지 집에서 비밀의 문을 발견하고 숨겨져 있던 복도로 들어서면서부터 바깥에 있는 써틴과 미로같은 복도의 세계에 들어선 써틴의 이야기로 나누어지며 각각의 이야기가 교차로 엮어지며 이어진다는 점이다. 파격적이게도 몇 페이지에 걸쳐서는 책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각각의 써틴의 이야기가 쓰여져 있어 한 파트를 읽고 다시 몇 장을 거슬러 와서 다른 파트를 읽어야하는 수고스러움이 종종 있긴 했지만 그정도 가지고는 집중력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만큼 이야기 구성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한가지 드는 의문은 과연 그렇게까지 이야기가 길었을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점인데 써틴을 쫓는 13연맹의 존재와 복도에 갇혀있던 아이들의 비밀이 너무 늦게 밝혀져 오히려 이야기의 긴장감이 떨어질 때쯤 등장하는 바람에 그들의 비밀이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판타지 소설이라 굳이 그런 걸 따진다는 게 좀 그럴 진 몰라도 늘어놓은 이야기에 비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그다지 분명하지 않아 그저 책을 읽는 동안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재미와 두꺼운 책을 읽었다는 성취감 정도를 느끼는데 만족해야하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그것만 아니면 별 네 개도 줬을텐데 말이다.
괴이하고 어지럽고 무섭고도 이상한 소설. 그리 길지도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이야기가 꼬이고 뒤틀려 있어 어느 순간엔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했던 <오즈의 닥터>. 오즈의 닥터 "팽"은 처음부터 기묘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검은 색 홈드레스에 어울리지 않게 두꺼운 목과 각진 어깨, 보라색 입술, 드레스 틈을 비집고 보이는 길고 빳빳하게 자리잡은 다리 털까지 부조화의 상징과도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 닥터 팽은 저래 보여도 정신과 의사다. 얼마 전 "억울한 일"을 당한 김종수는 법원의 명령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되는데 그 덕분에 의사같지도 않은 닥터 팽과의 면담을 이어 나가야만 한다. 환각을 겪고 있는 김종수는 자신의 얼룩져 있는 어린 시절과 환각의 원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를 풀어갈수록 어긋나는 기억들이 드러나고 너무 까맣게 잊고 있던, 그러나 섬뜩하리만치 끔찍한 일들이 조금씩 밝혀진다. 책을 읽으면서 마치 소용돌이나 험난한 미로 속에 휩쓸렸다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기분 나쁜 어지러움을 느끼는 게 아니라 머리가 어지럽도록 재밌었다. 현실과 환각이 교차하고 어느 순간에 현실과 환각이 교묘하게 맞물리고 단서 하나 하나를 찾아낼 때마다 숨은 그림이라도 찾은 것처럼 신이 나서 책에 나오는 한 글자 한 글자에 집중하며 읽게 되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오즈의 닥터> 안에 있는 설정들 자체는 아주 어린 시절만의 추억이 된 것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거나 6~ 70년대를 배경으로 했던 다른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여태껏 봐왔던 복고풍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아프고 또 구질구질하다 싶을 정도로 익숙한 설정들이 많지만 닥터 팽이라는 초유의 인물의 등장과 곳곳에 즐비한 트릭들로 구질구질해질 수도 있는 설정들을 산뜻하고 기묘하게 바꿔놓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가 아주 많이 읽고 싶었던 책이 정말 정신없이 재밌게 읽혀질 때인데 <오즈의 닥터>가 참 오랜만에 그 기분을 만끽하게 해줬다.
깨끗한 공기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을 만큼 평범한 마을에서 한 초등학생 여자 아이가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살해 당한 에미리의 친구들은 4명이나 되면서도 범인의 얼굴이나 인상착의를 전혀 기억해내지못하고 에미리의 사건을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에미리가 죽고 3년이 지난 어느 날 에미리의 어머니는 그 4명의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충격적인 말을 남기고 그 마을을 떠나버린다.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범인을 찾아내. 아니면 내가 납득할 수 있도록 속죄를 하라고. 그러지 않으면 난 너희들에게 복수할 거야." 이후 저주와도 같은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서로 어떤 인연도 이어가지 않은 채 살아가게 되고 성인이 된 아이들은 각자의 상처와 사연과 그들이 가진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어떻게 보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미스틱 리버"를 연상 시킨다. 누구라도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고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느끼는 안도감. 하지만 "속죄"는 또 한 명. 피해자의 어머니를 등장시키고 단순한 목격자에 그칠 수도 있던 이들을 단숨에 가해자 혹은 방관자로 만들어 버리며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아버린다. 전작 "고백"을 읽으면서 마음에 확 들었기때문에 "속죄"를 접하는 마음이 당연히 뛰었다. 무엇보다 실타래처럼 얽힌 인물들의 이야기를 마치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서술해 나가는 그 차분함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속죄" 역시 끔찍한 범죄와 어울리지 않는 차분한 서술이 등장하지만 "고백"보다는 그 연결고리가 약간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 어린 아이들에게 저토록 차가운 저주의 말을 내뱉는다는 것이 온당한 일인지.. 아니면 딸을 잃은 비참한 심정을 십분 이해했다치고라도 좀 더 일찍 자신의 말을 정정하고 네 명의 아이들의 삶에 매여놓은 올가미를 좀 더 일찍 풀어줄 순 없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네 명의 아이들에게 차례차례 일어나는 비극이, 명제 자체가 공감이 가지 않았으므로 그 비극 또한 약간은 억지스럽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아쉽다.
일본 전역을 돌며 사고든 자살이든 이유에 상관없이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이 있다. 애도하는 사람 시즈토는 사망자가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 보다 누구에게 사랑받았고 누구를 사랑했고 누가 그에게 감사를 표했는지를 묻고 그들의 죽음을 가슴 깊이 새겨 기억한다. <애도하는 사람>은 시즈토를 알고 있거나 관련된 세 인물, 취재를 나갔다가 우연히 그가 애도하는 장면을 목격한 주간지 기자 마키노, 시즈토의 어머니 준코, 그리고 남편을 죽인 후 죗값을 치르고 갓 출소한 유키요. 이들을 통해 시즈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처음 프롤로그를 읽고 과연 무슨 얘기를 들려줄 지 궁금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특하게도 이야기는 애도하는 사람인 시즈토가 아닌 그를 목격하거나 우연히 그과 동행하거나, 그리고 그의 어머니를 통해서 시즈토에 대해 들려준다. 그렇게 각 장마다 시즈토의 이야기와 시즈토의 애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들 또한 각각의 변화를 겪게 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묵직하면서도 감동적이다. 사실 죽음이라는 것을 두고 각각의 값을 매기거나 경중을 따지려드는 현대 사회와는 상반되게 잊혀지기 쉽고 또 아무 상관도 없는 죽음들을 일부러 들춰 기억하고 너무나 긍정적인 측면만 보려고 드는 시즈토가 낯설기도 하고 어찌보면 가식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왜 사랑하는 가족들을 걱정시키고 애써 가족의 죽음을 잊어보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들쑤셔 다시 아프게 만드는지.. 그건 정말 자신의 애도를 위한 이기적인 발상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책을 다 읽은 후라고 해서 그 의구심 혹은 의심이 풀린 것도 아니고 만약 내가 애도하는 사람을 목격하거나 그 사람과 동행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생각들이 마키노나 유키요처럼 변화되거나 애도하는 사람으로 인해 내가 새 사람으로 거듭나리라는 확신이 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의심들을 자아낼 것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죽음 하나도 가볍고 소홀하게 다루지 않겠다는 작가의 뚝심만은 칭찬하고 싶다.
짜임새있게 재밌는 책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오~~~ 하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게 되는데 <살인자들의 섬>이 딱 그렇다. 셔터 섬 안에 존재하는 정신병원이라는 고립되고 음울한 공간에서 일어난 의문의 그러나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는 한 여인의 실종 사건에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파견된 연방 보안관 테디와 척. 한마디로 스릴러 소설로써 갖췄어야 할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 연방 보안관 테디는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유령처럼 존재하는 셔터 섬에서 일어난 레이첼 솔란도의 실종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되어 오지만 오는 첫날부터 심한 배멀미를 하고 그동안 테디를 괴롭히던 편두통은 점점 심해져 온다. 뿐만 아니라 섬에 들어온 첫날부터 그들에게 불친절하고 수사를 방해하려는 듯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병원 관계자들까지 셔터 섬이라는 괴이한 섬만큼이나 불편함 속에서 수사를 진행해야만 한다. 실종된 레이첼 솔란도의 방을 조사하던 중 그녀가 남긴 의문의 암호들을 발견하고 추적해 가지만 편두통으로 인한 발작을 일으킨 테디는 이 후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오히려 악몽에 시달리며 점점 더 혼란스러워만 지게 된다. 단 4일이다. 4일 동안에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또 그 많은 일들을 이렇게 유기적으로 엮어낼 수 있다는 점에 감탄 또 감탄이었다. 폭풍우가 몰아치기 직전에 그 우울하면서도 섬뜩하리만치 고요한 공기, 줄지어 이어지는 정신병자들의 이야기에 덩달아 히스테리를 일으키게 만드는 이야기 구성, 작은 것 하나도 결국엔 단서가 되고 그 미묘한 흐름을 놓치지 않아야 나중에 적절히 연결시킬 수 있게 만든 치밀함과 영민함에 이 영화를 영화화한다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영화를 얼마나 만들고 싶었을까.. 디카프리오가 이 영화를 찍으면서 얼마나 많은 발전을 하고 얼마나 많은 것을 얻어갔을까 하고 영화를 보기 전부터 기대감이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살인자들의 섬>을 읽는 동안 또 다 읽은 후에 얼른 데니스 루헤인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모조리 읽어봐야지하는 다짐을 했다. 이 작품만큼만 한다면 이 작가의 작품을 100권을 읽는다고 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