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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망나니, 억센 털의 러시아 고양이, 말썽꾸러기.. 등등 갖가지 별명을 보유하고 있는 제제는 다섯살답지
않게 무척이나 감성적이면서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다. 하지만 6개월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아버지와
삶의 여유없이 일만 하는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에게 그 감성이 있을리 만무하고 언제나 제제의 행동을
꾸짖기부터 한다.

그런 제제는 어느 날 새로 이사간 집에서 자기 키만한 라임오렌지 나무를 발견하고 그 나무에 "밍기뉴"라
이름을 지어주고는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친다. 사실 제제는 장난이 조금 심할 뿐 마음을 쓰는
것을 보면 굉장히 예쁜 아이다. 동생 루이스를 챙기고 정성껏 돌보고 (다섯살짜리가 어찌나 책임감이
강한지..) 자신보다 가난한 아이를 위해 양보할 줄도 안다. 그런가하면 가난하다고 해서 베푸는 무조건적인
호의를 거절도 할 줄 아는 자존심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제제의 예쁜 구석을 볼 줄 아는 건 밍기뉴와 제제
앞에 새롭게 나타난 포르투갈인 마누엘 발라다리스씨 뿐이다. 제제의 좋은 면을 봐주고 상처 입고 슬프게도
나이에 비해 너무 커버린 제제의 마음을 진심을 담아 꼭 안아줄 줄 아는 둘도 없는 친구 '뽀르뚜가'말이다.


중학교때 방학이 시작되면 나눠주는 권장도서 프린트물에 꼭 끼어있었던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지만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불과 5년전이다. 그 때 읽으면서 '음.. 권장도서가 다 이유가 있구나.. 이걸 이제야 읽다니..'
하고 생각했었는데 몇 년만에 다시 이 책을 읽자마자.. ' 이 멋진 작품을 잊고 있었다니...'하는 생각부터 밀려왔다.


그런 책이 있다. 마음이 피곤하고 지칠 때 읽으면 힘이 되어주는 책.. 굳이 무슨 자기 계발서나 심리서와 같이
대놓고 힘을 북돋아주지는 않는다하더라도 읽고 나면 그간 잠들어있던 감정 하나 하나가 물기를 받아
되살아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사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어떤 책을 읽고 나면 너무 좋아서 되려 아무 말도 할 수 없거나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이 그랬다. <어린 왕자>와 쌍벽을 이룰만큼 좋은 이 작품을 왜 그렇게 좋아하느냐고 묻는 건
아마 책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빼놓지 않고 전부 얘기해 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의 질문일 것 같다.

 

- "뽀르뚜가!"

 

- "응"

 

- "전 절대로 당신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아시죠?"

 

- "왜?"

 

- "왜냐하면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니까요.

   당신 곁에 앉아 '내 가슴 속에 행복으로 물든 즐거움의 햇빛이 있다'는 것을 누리고 있는 날

   흉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에요."

 

저 구절을 읽을 때면 왠지 저 글자들 사이사이로 따뜻한 햇빛이 비쳐나올 것만 같다. 나는 뽀르뚜가도 아닌데 저
말을 듣고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찼을 뽀르뚜가처럼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니 저런 빛나는
구절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는 이 작품이 좋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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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써틴
볼프강 홀바인.하이케 홀바인 지음, 이병서 옮김 / 예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안나 마리아라는 어엿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써틴이라 불리는 소녀는 그럴만도 할 것이
13일 13시 13분, 그리고 정확하게 13초에 태어났다. 그녀의 엄마는 병원 13호실에 있었으며,
태어난 지 13일 뒤에 그녀를 집으로 태워다준 택시 역시 같은 번호를 달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13의 소녀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던 써틴은 엄마가 죽고 난 후 유일한
혈육인 할아버지로부터 독일로 오라는 편지를 받게 된다.

평범한 여행인 줄 알았던 독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써틴은 끔찍한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하기 힘든 일들은 차례로 겪게 되고 힘들게 도착한 할아버지 집에서 조차 그리 편치 않다.
음습하고 어딘가 무시무시한 집에서 지내게 된 써틴은 비밀의 문을 발견하게 되고 그곳으로
들어가자 오랫동안 그 집에 갇혀있던 아이들을 만나게 되고 그 때부터 집과 써틴의 집안에
얽혀있는 저주와 비밀들을 풀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미리 먼저 얘기하자면 이 책의 총 페이지수는 704쪽에 달한다. 책을 읽기도 전에 질릴 만한
두께지만 막상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술술 잘 넘어가서 어느새 반권을 다 읽게 되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다음에 펼칠 장에 한 손에 쥔 채로 책을 읽게 될 정도였다.

이 소설은 워낙 어릴 적에 읽었던 동화라 과연 내가 읽긴 읽은 건지 아니면 그저 전해 듣고
들어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지 헷갈리는 작품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 거기에 13이라는 보기만 해도 저주가 걸려있고 재수없을 것같은 숫자를 등장시켜
어떤 때는 으스스한 느낌으로 어떤 때는 미스테리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또 하나 이 소설의 특이한 점은 써틴이 할아버지 집에서 비밀의 문을 발견하고 숨겨져 있던
복도로 들어서면서부터 바깥에 있는 써틴과 미로같은 복도의 세계에 들어선 써틴의 이야기로
나누어지며 각각의 이야기가 교차로 엮어지며 이어진다는 점이다.

파격적이게도 몇 페이지에 걸쳐서는 책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각각의 써틴의 이야기가
쓰여져 있어 한 파트를 읽고 다시 몇 장을 거슬러 와서 다른 파트를 읽어야하는 수고스러움이
종종 있긴 했지만 그정도 가지고는 집중력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만큼 이야기 구성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한가지 드는 의문은 과연 그렇게까지 이야기가 길었을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점인데
써틴을 쫓는 13연맹의 존재와 복도에 갇혀있던 아이들의 비밀이 너무 늦게 밝혀져 오히려
이야기의 긴장감이 떨어질 때쯤 등장하는 바람에 그들의 비밀이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판타지 소설이라 굳이 그런 걸 따진다는 게 좀 그럴 진 몰라도
늘어놓은 이야기에 비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그다지 분명하지 않아 그저 책을 읽는
동안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재미와 두꺼운 책을 읽었다는 성취감 정도를 느끼는데 만족해야하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그것만 아니면 별 네 개도 줬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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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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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사귀는 일은 여행의 큰 즐거움이었다.
늘 새로운친구들과의 새로운만남.  하지만 그렇게 만난 친구들과 며칠씩 함께 지낼 필요는
없었다. 항상 똑같은 사람들하고만 있으면 -  산티아고가 신학교에 있을 때 그랬던 것처럼
- 그들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해버린다. 그렇게 되고 나면, 그들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려
든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이 바라는 대로 바뀌지 않으면 불만스러워한다.  

사람들에겐 인생에 대한 나름의 분명한 기준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양치기 산티아고는 아이의 손에 끌려 이집트 피라미드에 이르는 꿈을 며칠 반복해서 꾼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노인이 자신에게 양의 1/10을 준다면 피라미드에 묻혀 있는 보물을 찾아가는 길을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한다. 이에 산티아고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노인에게 양을 주고는 신비의 보석
'우림과 툼밈'을 받고 노인이 말한대로 자아의 신화를 찾기 위해 혹은 피라미드를 향해 여행 길에 오른다.

거의 1년 반만에 다시 읽었다. 책장에 꽂혀 '어서 날 다시 읽어봐'..하고 자꾸만 날 부르고 있는 것 같고,
읽기는 했지만 영 찜찜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던 <연금술사>를 이렇게 빨리 다시 읽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쨌든 다시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 책장 넘기기가 고역이었던 걸 생각한다면 두번째 읽을 때 책 넘김은
훨씬 수월하고 무엇보다 좀 더 유익했다. 유희가 아니라 유익..

처음 읽었을 때 얼마나 재미가 없었고 얼마나 얻어가는 게 없었는지 다시 떠올리니 조금 우스워지기도 하고
내가 참 생각이 얕았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 때는 납을 금으로 만들 방법만을 얻기 위해 연금술사를
찾아나섰던 영국인이나 혹은 보물을 찾기 위해 여행길에 올랐던 산티아고와 내가 닮아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다시 책을 펼쳐드니 연금술사가 말하고자 하는 건 납이나 구리를 황금으로 바꾸는 그런
단순한 방법과 결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자아의 신화라는 어쩌면 평생이 가도 깨우치지 못할 그 무엇인가를 책 한 권을 독파함으로써
알고자 했던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생각이었는지도 어렴풋이 느껴진다. 살아가면서 나한테는 왜 눈이 번쩍
뜨이는 행운이 한 번 안찾아오는 걸까.. 또는 당장 본론으로 들어가 결론을 보고 싶은데 왜 이렇게 과정만
줄창 이어지는 거야...하고 불평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연금술사는 그 또한 우리가 자신을
온전히 완성시키기 위해 생겨나는 빛과 소금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가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저 글귀는 처음 읽었을 때는 온 우주는 나를 도와준다는 말에 눈길이 갔다면 이제는 그것보다 '무언가 간절히
원할 때' 부분이 더 눈에 도드라져 보인다. 무언가를 하면서 끝이 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끝내버린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무언가를 하기는 하지만 과연 그것을 간절히 원했는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당연히 대답은 아니오..

음.. 이제는 조금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전에 말했듯이 지루한 설교처럼만 들렸던 말들이 알알이 내 마음 속에
박혀오고 그것을 자양분 삼아 조금 더 성장할 내 마음때문에 조금 설레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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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3 - 상 -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 밀레니엄 (아르테) 3
스티그 라르손 지음, 박현용 옮김 / 아르테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스포일러 포함!!!

 


 

드디어 마지막이다. 아무리 재밌는 드라마도 2회를 잘 넘기지 못하고 아예 장편의 책이라면 손에 쥐지도
않는 나에게 밀레니엄은 그야말로 인내의 결과물이다. 올해 2월에 출간 예정이었던 3편이 6월 말에나
출간되었지만.. 중간중간 얼토당토않은 오타들과 중간에 글자가 아예 지워진 부분까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레니엄을 절대 버릴 수가 없는 작품이었다.

2부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학대하고 어린 자신을 정신병동에 가두게 만든 장본인인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아버지이자 러시아 첩보원이었던 살라첸코를 찾아가 사투를 벌이고 심각한 부상을 입으면서 끝이 나자
나는 다음편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혹은 당연히) 그녀는 죽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내달려왔던 2편과는 달리 3부 바람치는 궁전의 여왕은 제목답지 않게 격정적이지도
숨가쁘지도 않았다. 오히려 "섹션"이라는 사포 조직 내에서 살라첸코의 뒤를 봐주던 비밀 조직의 정체가
그 실체를 드러내면서 그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와 국가와 맞먹는 그들의 권력이 남용되는 현장을
고발하느라 상권의 전반부는 집중하기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물론 나중에 가서 뭔가 터트리기 위한 숨고르기 작업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지만 조금만
가지치기를 해서 이야기 전개를 매끄럽고 빠르게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오타같은 편집상의 실수나 초반의 지리멸렬한 이야기 전개가 조금 있다고 해서 밀레니엄
전체를 평가절하한다는 건 적절하지 않다. 그간 1,2편을 통해 남성 중심 사회에서 희생되어 왔던 여성의
인권에 대해 고발하고 대변해왔다면 3편에서는 국가가 나서 한 개인, 그것도 아무런 힘도 없는 여성의
삶을 좌지우지 않고 그 여성을 위협하는 그야말로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고 되풀이 되어선 않될 일들을
좀 더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냉전의 시대는 이미 한참 전에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한 이
시점에서도 누군가는 냉전 시대에 물려받은 고루한 발상들을 간직하고 있고 그것이 국가를 위한 것이라는
착각으로 말미암아 개인의 삶이나 생각따윈 아예 존재한 적이 없었던 냥 행동하고 있다.

소설 <밀레니엄>은 이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고,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이 바쁜
세상에 살면서 이미 지나간 역사까지 들춰가며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마치 머리 위로
전기가 들어오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소설은 어차피 허구의 이야기니 그냥 재미만 있으면 되지하고 생각하던 독자들이 밀레니엄을 읽게 된다면
소설 역시 신문 보도만큼이나 충분히 사회 고발을 담을 수 있고 죽어있던 사람들의 의식을 깨어나게 해 줄
아주 좋은 수단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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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의 판도라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4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지음, 정창 옮김 / 들녘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914년 영국 런던, 이른바 노예 작가라고 불리는 대필 작가였던 스무 살의 토마스 톰슨에게 어느 날 변호사
에드워드 노튼이 찾아온다. 톰슨은 노튼으로부터  현재 살인죄로 복역중인 마커스 가비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교도소로 향한다.

난쟁이의 외모로 겉보이에도 순진해 보이는 마커스는 불행한 어린 시절 보내고 한 귀족의 대저택에 머물게
되고 우연히 저택의 자제들인 윌리엄과 리차드 크레이버 형제의 눈에 들어 콩고 여행에 합류하게 된다.
물질 만능주의자들에게 지독한 인종차별 주의자인 크레이버 형제 밑에서 노예나 다름없는 대우를 받으며
콩고에 들어가게 된 마커스 가비는 그곳에서 자신이 살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상황에 마주하게 된다.
다이아몬드와 황금에 눈이 멀어 흑인 노예들을 개처럼 부려 먹고 모두가 지쳐있던 시기와 텍톤 족이라는
정체 불명의 부족들이 지하 세계로부터 지상으로 올라와 자신들을 습격한 이야기, 텍톤 족인 암감이라는
특이한 용모의 여인과 마커스 사이의 애정, 그리고 이어진 텍톤 족과의 전투까지 그야말로 마커스 가비가
들려주는 콩고의 이야기는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러나 믿을 수 밖에 없는 이야기
였고 마커스의 이야기를 듣던 토마스 톰슨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콩고의 매력에 그리고 암감을 향한
애정을 느끼게 된다.

 

도저히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콩고의 판도라> 역시 작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향연의 끝에 대체 무엇이 있을지 선뜻 예측하기가 힘든 소설이다. 물론 결론도 결론이지만
그 환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전개 방식 또한 한가지 스타일로 규정짓기에 너무나 광범위하다. 굳이
설명하자면 1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 상황과 콩고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묘한 대조를 이루며 현실적
이면서도 동시에 환상적인 모순을 자아내고 있고 텍톤 족이라는 신비의 부족과 그들이 사는 환상 혹은
상상의 도시를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남미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던 딱 그 분위기, 마술적 리얼리즘의
분위기마저 풍겨온다.

(특히 콩고라는 밀림이 배경이라는 점에서 더 그 분위기가 배가된 듯하기도 하고) 이쯤에서 그쳤다면
이 소설을 규정짓기 힘들단 말을 하지 않았을 테지만 이 소설은 대필 작가 자신의 이야기, 작가가 되어
야지 할 수 있는 이야기들과 대필 작가로서 가장 위험한 사적인 감정에 빠지는 작가의 딜레마에, 마치
앞서 읽었던 모든 내 시간들이 농락당했다는 느낌이 들정도의 예기치 못한 반전까지 숨어있어 그야말로
소설로써 모든 면을 만족시키는 작품이라할 수 있다.

 

작가이자 기자인 토마스 톰슨이라는 주인공을 앞세워 그를 소설 속의 가공의 인물이 아닌 마치 독자
자신인 것처럼 이야기를 들려주고 고민하게 만듦으로써 책을 접하는 독자들이 마치 마커스의 안내로
콩고밀림에 떨어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끔 만들고 그렇게 끝을 알 수 없는 여정 속으로 효과적으로
밀어넣고 허우적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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