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라이어 ㅣ 뫼비우스 서재
존 하트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변함없이 올해도 가을이 왔습니다. 저는 가을을 무척 타는 편입니다. 나이가 들고 삶에 찌들면 그런 감정들도 조금씩 무디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심해지기만 합니다. 고독을 달래려 오래전 구매해 두었던 <라이어>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난 지금 전 ‘자살’이란 단어를 떠올려 봅니다. 작년 가을 롯데 자이언츠가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던 날 밤, 그래서 3년을 사랑했던 로이스터 감독과의 피할 수 없는 이별을 예감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던 그 밤, 아내가 마치 오랫동안 준비하고 작심한 듯 헤어지자는 말을 했을 때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그 단어를 말입니다.
아내가 TV 드라마를 보면서 눈시울을 붉힐 때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오해하지 말자’라고 늘 놀리면서도, 저 역시 막상 이런 작품을 대할 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읽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작가의 글이 독자들의 보편적 감성을 깊은 곳까지 잘 파고든 것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그저 제 코드가 이 작가와 잘 들어맞은 것이 이유일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저에겐, 바깥에선 존경을 받는 훌륭한 인물이었지만 집에선 폭군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사면초가의 상황으로 내몰린 1인칭 주인공 ‘워크’의 생각이나 움직임이 너무 절절하게 와 닿았습니다. 한 가지 흠이라면 사전에 충분한 복선 없이 전혀 뜻밖의 곳에서 밀어닥친 결말인데, 사실 이 갑작스런(?) 마무리조차 전 억지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작품의 그 어느 완벽한 결말보다 더 믿을만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홈즈’를 좋아하다 <노란방의 비밀>로 본격적으로 입문한 뒤 ‘애거서 크리스티’와 함께 10대를 보냈지만 어쩐지 전 추리소설하면 ‘챈들러’의 작품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만약 추리소설이란 장르에 ‘본격’만이 허용되었다면 여름을 제외한 다른 계절엔 뭔가 다른 읽을거리를 찾아 헤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라이어>를 끝내고 집어든 책은 ‘기리노 나쓰오’여사의 <물의 잠 재의 꿈>, 그리고 다음 라인업은 제목마저 을씨년스러운 <지하에서 부는 서늘한 바람>입니다. 秋리소설이 있어 행복한 가을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