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시를 줍다 - 양성우 시화집
양성우 시, 강연균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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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바람 한 점 없이 무더운 이 여름날 아침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3번 출구,

가파른 계단 옆 벽에 붙은 부고장 한 장.

“마포 도화동 리어카 열쇠쟁이가 굶어 죽었다.

부좃돈 가져와라.“

오늘까라 길 건너 높은 빌딩 앞마당의

불볕 아래 피어 있는 분홍꽃 배롱나무꽃이

왜 이렇게 고운가?

 

2007의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읽고 싶은 시들이었다. 양성우의 시와 고정희의 시를 골랐다. 선택의 이유는 지리산 자락이라고나 할까?

 

누구에게나 절정은 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절정이 있다.

그것은 마치 높은 산봉우리와 같아서

사람이 오랫동안 머물 수는 없지만.

아무리 긴 시간도 영원에 비하면 순간일 뿐.

어느 봄날 아침 햇살에 화들짝 피었다가

금세 지는 꽃이 더욱 아름답다.

거기에 당당히 서 있는 동안에는 대개

눈앞의 벼랑 끝이 보이지 않아도,

왕성한 초록의 나뭇잎들처럼

절정 위에서는 언제인가 쓸쓸히 가랑잎으로

땅에 누울 것을 미리 염려할 일이다.

삶이 궁핍하고 가난할수록 맘을 열어 놓을 필요가 있다. 눈을 들어 먼데 산을 바라보면 속이 들여다 보이지 않으나 세월은 지나고 인생은 늙어가는 모습이 그 안에 다 들어있다. 시인은 그런 모습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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