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13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체되고 찢긴 채 체념하는 시어들이 서로 연상 작용을 이루며 인상적인 이미지를 남기는 시집. 유곽, 창녀 같이 낡은 여성관에서 기인된 단어와 비유들은 너무나도 아쉽지만 오래도록 기억될 시집임은 분명하다. 체념뿐만이 아니라 시 전반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슬픔이 짙다.


 <돌아오지 않는 江>, <편 지>, <여름산>, <모래내·1978년>, <세월의 집 앞에서>,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연애에 대하여>, <세월에 대하여>가 좋았다.

숨막힌 채로 길 떠난다
길 가다 외로우면
딴생각 하는 길을 껴안는다
_<연애에 대하여> 중에서.

안녕
오늘 안으로
당신을 만나야 해요
편지 전해줄 방법이 없소

잘 있지 말아요
그리운······
_<편 지>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 지혜의 시대
변영주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창비에서 출간된 <지혜의 시대> 시리즈 중 하나. 변영주 감독의 강연을 바탕으로 한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를 읽었다. 일전에 서평단 활동을 통해 같은 시리즈의 《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 <지혜의 시대>에서 다룬 강연이 마음에 들어 시리즈를 독파해야겠단 결심을 했다. 변영주 감독의 책이 서평단 활동 이후 첫 <지혜의 시대> 책이다.


 책에 담긴 변영주 감독의 강연은 시원시원한 말투와 감독으로서의 뚜렷한 주관이 돋보였다. 책머리에서 그녀는 이 강연의 중심이 '나 스스로 나침반이라고 생각하는 창작의 원칙과 태도', '나를 설명하기 위한 지도를 그리는 법'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강연 초반에는 다큐멘터리와 독립영화의 정의로 시작하여 한국 시장의 특수성, 검열 · 등급제로 인한 가치 제한 그리고 현재 독립영화 시장으로 나아가기까지의 한국의 영화사를 일목요연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영화사와 영화가치에 대해 두루 배울 수 있고 고민하게 하며, 강연 후 둘러보고싶은 영화 작품도 많이 챙겨갈 수 있는 부분이다.


 강연은 '영화만큼 그 영화가 만들어진 시대와 사회를 명백하게 발현하는 대중예술이 없다'는 담론에서 시작된다. 짧게 정리해보자면, 1990년대까지 한국의 영화 관련법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만들어진 '검열' 중심법을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영화 사전심의제도는 1996년 김영삼정부 시기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상영등급부여제로 바뀌었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1997년 처음 등장했고, 굳이 정부의 인정을 받을 필요 없이 영화의 수입이 가능해졌다. (임권택 감독이 1970년대에 수많은 반공영화를 만든 이유가 <벤허> 같은 해외 유명 영화를 수입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이 놀라웠다.) 따라서 상영등급부여제 이전의 독립영화는 '영화제작업자로 등록되지 않은 상태로 영화를 만들어 미리 검열받지 않고, 등록되지 않은 공간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었다면, 현재는 '심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비상업적 목적의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김대중정부 때부터 독립영화에 대한 사전제작지원 정책과 독립영화 전용관이 만들어졌고, 심의가 유연해져서 독립영화 흐름이 한 번 더 바뀌었다고 감독은 덧붙인다. 


 이어서 일반 극영화 장르는 '어떤 배우가 어떤 걸 하는 얘기구나'라고 받아들이게 되는 반면, 다큐멘터리는 '어떤 시선을 가져가야 하는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인간극장>이나 <동물의 왕국>처럼 '설명적인 다큐멘터리', 1960년대 들어서서 다큐멘터리 상당수를 차지하게 된 개입없는 다큐멘터리 '다이렉트 시네마', 감독이 개입하는 '시네마 베리테'. 이렇게 다큐멘터리의 종류를 구분하고 대표 작품을 예시로 든다. 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허나, 다큐멘터리가 지닌 문법을 들으면서 다큐멘터리 장르를 다시금 보게 됐다. 우선은, <스페인 대지>와 <공동정범>을 먼저 보자는 결심을 하며 기록해두었다.


 '취향'에 대해, '세상 모든 약한 것과 연대하는 여성성'에 대해,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은 강연의 후반부다. 감독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으로 나를 밀어넣었던' 문학 작품으로 박완서의 《휘청거리는 오후》나 공지영의 《인간에 대한 예의》, 황석영의 《장길산》 등을 언급하면서 에피소드를 풀어놓기도 한다. 강연의 후반부에서 '내가 취향을 잘 길러가고 있구나' 라는 위안과 '더 열심히 길러야겠다' 라는 열정을 동시에 얻었다. 무수히 좋았던 말 중에, 여성성의 정의 그리고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은 자기만의 호수에 '기존 작품'이란 물고기를 최대한 많이 집어넣고 배불리 내 위장에 소화시켜서 나만의 문장으로 건져올려야 한다'는 문장이 참 인상 깊었다. 


 변영주 감독의 작품 중에 내가 본 작품은 《화차》가 유일했다. 추천 작품을 그냥 알려주기에는 억울하다며 여러분도 스스로 명작을 찾아낼 의무와 권리가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감독을 보면서, 그녀가 만든 영화는 어떤 작품이었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감독이 9년 간 위안부 할머니들과 지내며 만든 다큐멘터리 <낮은 곳으로>와 감독의 첫 상업 영화 <밀애>, 강풀 웹툰 《조명가게》를 바탕으로 만들고 있다는 차기작까지. 또한, 변영주 감독은 현재 영화를 다루는 JTBC 예능 <방구석1열>에 고정으로 출연하고 있기도 하다. 이 방송을 통해 감독의 얼굴과 목소리를 처음으로 주의깊게 보게 되었는데, 내가 즐겨보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Soo'와 인상과 목소리가 너무 닮아 놀랐다. 개인적 바램으로는 감독과 유튜브 크리에이터 두 분의 투샷을 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창작자가 되고 싶다면 우선 폭식부터 해야 해요. 죽어라고 먹는 거지요. 호수에 낚싯대를 들이대서 오늘 잡힌 물고기를 전부 먹어치우는 거예요. 계속 먹어치우다보면 그 물고기들이 위장 안에서 하나의 문장을 만드는데 그게 바로 내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저는 지금 저 자신이 20~30대 때의 저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주변 사람들이 증명해줄 수 있어요. 변영주란 사람이 인간적으로 가장 괜찮은 시점은 오늘이고, 오늘보다는 내일 더 괜찮을 거예요. 그 이유는 문학 때문이에요. 어제 읽은 책의 어떤 부분 때문에 오늘의 내가 조금 더 조심하며 살기로 결심하고, 오늘 읽은 책 때문에 내일 좀더 좋은 사람이 될 거거든요.
제가 만드는 영화가 세상을 더 좋아지게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 영화를 본 사람들이 세상을 좀더 좋게 만들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건 아주 다른 거거든요. 제 영화는 그런 일을 할 힘이 없지만, 제가 제 호수 안에 있던 어떤 물고기를 잡아먹고 만들어낸 한 문장 하나가 여러분들께 세상과 싸우겠다고 결심할 마음의 휴식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러면 저 스스로는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분들이 자신만의 호수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흔이 되어버렸는걸
모리시타 에미코 지음, 김지혜 옮김 / 재미주의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작가 모리시타 에미코가 마흔에 도쿄로 상경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주축으로 하여 갖가지의 일상을 담은 만화다. 흰머리, 옷 스타일, 동창회,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속 공감 가는 고민들에는 비교적 타인의 시선에 자유로워진 마음가짐이 녹아 있다. 서른이 되었을 때보다는 마흔을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작가의 모습을 보며 나의 마흔도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 나이가 되면
뭘 하기도 전에
걱정부터 들어서
큰일이야…
하지만 분명
같은 불안감이라도
새로운 것에서
느끼는 게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 개정판
원태연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원태연 시인이 1992년 발간한 첫 시집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를 보았다. 여태껏 원태연 시인의 시집을 완독한 적은 없었지만 인터넷 상에서 이미 많은 구절을 본 적이 있어 익숙했다. 시집의 제목도 마찬가지다. 책을 다 보고 나니 이 시집의 한 수는 역시 잘 지은 제목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은 시집에 수록된 시 <알아!>에서 따온 것이다.


 시집은 당시 1020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지금까지 150만부 이상이 판매되어 밀리언 셀러가 됐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읽어보니 시류에 발맞춰 유머 섞인 시집을 냈던 자칭 '시팔이' 하상욱의 책과 비슷하단 생각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왓챠에서도 이 시집의 베스트 코멘트가 '20세기의 하상욱'이다.) 그는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편견으로 바라보면 안 되겠지만) 그의 시는 깊이가 없어 보였고 반복되는 단어가 많았다. 쉽게 쓴 듯 보였고 처음 사랑에 앓은 젊은이의 치기가 범람했다. (실제로 첫 시집의 시들은 그의 나이 21살에 쓰여진 시들이다.) 원태연 시인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여태 '오글거린다'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다고 한다. 솔직히 나도 책을 읽는 내내 '오글거렸다.' 하지만 내가 단점으로 짚은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이 책이 시장에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150만부 기념으로 이 시집도 특별판이 나왔다.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with 일러스트> 판은 일러스트레이터 강호면과 함께 웹툰 형식으로 첫 시집을 재구성했다. 50편이 선별됐고 이야기 구조로 삽입된 일러스트가 부가된 것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시집은 내 마음에 썩 들진 않았지만, 특별판이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럼 안녕>

어떤 글은 원망도 했을 거고
어떤 글은 잊었다고도 했을 거야
마음을 비우고 돌이켜보면
우리 둘 누가 먼저 이별을 말한 것도 아닌데
내가 너무 약해져 있을 때
틈이 생겼나봐
그 틈이 오늘의 우릴 만들었고
널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겠어
그 정도까지 내 사랑이 깊었는지도 모르겠고
다만 참 좋은 애였다고는 남겨두고 싶어
널 처음 만난 날
그날의 나로 돌아왔나봐
다시 무딘 놈으로 말이야
그런데도
잃어버리면 큰일나는 걸 잃어버린 느낌이야
우리 다음 사랑이 찾아오면
지금 같은 실수는 하지 말자
우리 얘기는 이쯤에서 예쁜 추억으로 접어두고
찾아올 사랑에게 충실할 수 있는
마음을 준비하자
행복하게 사는 거 잊지 말고
그래 난 이만 갈게
그럼 안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디어 생산법 - 60분 만에 읽었지만 평생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책, 정재승 서문
제임스 웹 영 지음, 이지연 옮김, 정재승 서문 / 윌북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획, 마케팅에 대해 늘 고심하는 내게 가장 기대되는 책 중 하나다. 정재승 교수의 추천책이라서 더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