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 지혜의 시대
변영주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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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에서 출간된 <지혜의 시대> 시리즈 중 하나. 변영주 감독의 강연을 바탕으로 한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를 읽었다. 일전에 서평단 활동을 통해 같은 시리즈의 《뉴스로 세상을 움직이다》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 <지혜의 시대>에서 다룬 강연이 마음에 들어 시리즈를 독파해야겠단 결심을 했다. 변영주 감독의 책이 서평단 활동 이후 첫 <지혜의 시대> 책이다.


 책에 담긴 변영주 감독의 강연은 시원시원한 말투와 감독으로서의 뚜렷한 주관이 돋보였다. 책머리에서 그녀는 이 강연의 중심이 '나 스스로 나침반이라고 생각하는 창작의 원칙과 태도', '나를 설명하기 위한 지도를 그리는 법'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강연 초반에는 다큐멘터리와 독립영화의 정의로 시작하여 한국 시장의 특수성, 검열 · 등급제로 인한 가치 제한 그리고 현재 독립영화 시장으로 나아가기까지의 한국의 영화사를 일목요연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영화사와 영화가치에 대해 두루 배울 수 있고 고민하게 하며, 강연 후 둘러보고싶은 영화 작품도 많이 챙겨갈 수 있는 부분이다.


 강연은 '영화만큼 그 영화가 만들어진 시대와 사회를 명백하게 발현하는 대중예술이 없다'는 담론에서 시작된다. 짧게 정리해보자면, 1990년대까지 한국의 영화 관련법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만들어진 '검열' 중심법을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영화 사전심의제도는 1996년 김영삼정부 시기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상영등급부여제로 바뀌었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1997년 처음 등장했고, 굳이 정부의 인정을 받을 필요 없이 영화의 수입이 가능해졌다. (임권택 감독이 1970년대에 수많은 반공영화를 만든 이유가 <벤허> 같은 해외 유명 영화를 수입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이 놀라웠다.) 따라서 상영등급부여제 이전의 독립영화는 '영화제작업자로 등록되지 않은 상태로 영화를 만들어 미리 검열받지 않고, 등록되지 않은 공간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었다면, 현재는 '심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비상업적 목적의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김대중정부 때부터 독립영화에 대한 사전제작지원 정책과 독립영화 전용관이 만들어졌고, 심의가 유연해져서 독립영화 흐름이 한 번 더 바뀌었다고 감독은 덧붙인다. 


 이어서 일반 극영화 장르는 '어떤 배우가 어떤 걸 하는 얘기구나'라고 받아들이게 되는 반면, 다큐멘터리는 '어떤 시선을 가져가야 하는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인간극장>이나 <동물의 왕국>처럼 '설명적인 다큐멘터리', 1960년대 들어서서 다큐멘터리 상당수를 차지하게 된 개입없는 다큐멘터리 '다이렉트 시네마', 감독이 개입하는 '시네마 베리테'. 이렇게 다큐멘터리의 종류를 구분하고 대표 작품을 예시로 든다. 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허나, 다큐멘터리가 지닌 문법을 들으면서 다큐멘터리 장르를 다시금 보게 됐다. 우선은, <스페인 대지>와 <공동정범>을 먼저 보자는 결심을 하며 기록해두었다.


 '취향'에 대해, '세상 모든 약한 것과 연대하는 여성성'에 대해,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은 강연의 후반부다. 감독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으로 나를 밀어넣었던' 문학 작품으로 박완서의 《휘청거리는 오후》나 공지영의 《인간에 대한 예의》, 황석영의 《장길산》 등을 언급하면서 에피소드를 풀어놓기도 한다. 강연의 후반부에서 '내가 취향을 잘 길러가고 있구나' 라는 위안과 '더 열심히 길러야겠다' 라는 열정을 동시에 얻었다. 무수히 좋았던 말 중에, 여성성의 정의 그리고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은 자기만의 호수에 '기존 작품'이란 물고기를 최대한 많이 집어넣고 배불리 내 위장에 소화시켜서 나만의 문장으로 건져올려야 한다'는 문장이 참 인상 깊었다. 


 변영주 감독의 작품 중에 내가 본 작품은 《화차》가 유일했다. 추천 작품을 그냥 알려주기에는 억울하다며 여러분도 스스로 명작을 찾아낼 의무와 권리가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감독을 보면서, 그녀가 만든 영화는 어떤 작품이었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감독이 9년 간 위안부 할머니들과 지내며 만든 다큐멘터리 <낮은 곳으로>와 감독의 첫 상업 영화 <밀애>, 강풀 웹툰 《조명가게》를 바탕으로 만들고 있다는 차기작까지. 또한, 변영주 감독은 현재 영화를 다루는 JTBC 예능 <방구석1열>에 고정으로 출연하고 있기도 하다. 이 방송을 통해 감독의 얼굴과 목소리를 처음으로 주의깊게 보게 되었는데, 내가 즐겨보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Soo'와 인상과 목소리가 너무 닮아 놀랐다. 개인적 바램으로는 감독과 유튜브 크리에이터 두 분의 투샷을 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창작자가 되고 싶다면 우선 폭식부터 해야 해요. 죽어라고 먹는 거지요. 호수에 낚싯대를 들이대서 오늘 잡힌 물고기를 전부 먹어치우는 거예요. 계속 먹어치우다보면 그 물고기들이 위장 안에서 하나의 문장을 만드는데 그게 바로 내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저는 지금 저 자신이 20~30대 때의 저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주변 사람들이 증명해줄 수 있어요. 변영주란 사람이 인간적으로 가장 괜찮은 시점은 오늘이고, 오늘보다는 내일 더 괜찮을 거예요. 그 이유는 문학 때문이에요. 어제 읽은 책의 어떤 부분 때문에 오늘의 내가 조금 더 조심하며 살기로 결심하고, 오늘 읽은 책 때문에 내일 좀더 좋은 사람이 될 거거든요.
제가 만드는 영화가 세상을 더 좋아지게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 영화를 본 사람들이 세상을 좀더 좋게 만들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건 아주 다른 거거든요. 제 영화는 그런 일을 할 힘이 없지만, 제가 제 호수 안에 있던 어떤 물고기를 잡아먹고 만들어낸 한 문장 하나가 여러분들께 세상과 싸우겠다고 결심할 마음의 휴식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러면 저 스스로는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분들이 자신만의 호수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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