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너츠 완전판 2 : 1953~1954 피너츠 완전판 2
찰스 M. 슐츠 지음, 신소희 옮김 / 북스토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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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한다! 깨끗함을 거부하는(?) 픽펜, 구불거리는 머리칼과 큰 목소리를 가진 샬롯 브라운이 그 주인공들. 특히 눈사람마저 더럽게 만들고야 마는 흙투성이 픽펜은 꼬질꼬질한 얼굴을 껴안아주고 싶을만큼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그 유명한 라이너스의 담요와 슈뢰더를 향한 루시의 짝사랑도 만화 속에서 모습을 보인다. 루시는 이번 권에서도 일당백이다. 라이너스와 찰리 브라운을 징글 맞게 놀리고, 별과 비에 이어 해를 세려다 실패하며, 찰리 브라운에게 체커 연승을 따낸다. 또한 엄마에게서 3년 연속 떠버리 호칭도 하사받는다! XD 루시가 없었다면 피너츠 시리즈의 진행이 어려웠을 거고, 유머는 아쉬웠을 거야. 


 이제 슬슬 사람처럼 불평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하는 스누피의 혼잣말들이 2권의 웃음 포인트다. 제일 웃겼던 장면을 꼽자면, 픽펜의 영향을 받아 온몸이 더러워진 아이들에게 못살겠다 질책하던 패티가 종국에 픽펜처럼 더러워진 꼴로 전화를 받는 장면!

- 모두가 날 보고 웃는 것 같아서 괴로워.
- 항상 그래?
- 응…. 거의 항상. 아무도 날 보고 웃지 않을 때는, 내가 사람들을 웃기려고 할 때뿐이야.

- 내가 온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어!
- 왜, 있잖아….
- 나 말고 말이야.
-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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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배처럼 텅 비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485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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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시간이 멍하게 밍밍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말하는 시들로 가득하다. 마치 하얀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창밖 구름과 뜨고 지는 해와 달을 보면서 시간의 흐름을 헤아리는 시들 같다. 시인이 첫 시에 앞서 '한 판 넋두리를 쏟아놓은 기분이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의 여운이 시 하나하나에서 느껴진다.


 작가의 도가 사상을 향한 사랑과 존경이 뚝뚝 묻어나는 시들 또한 가득하다. 노자와 장자를 소환하는 시들은 무와 허를 사유하고, 도가 사상을 통해 세상을 관조한다. 이 시집을 읽기 전에는 《노자 도덕경》을 읽기 전이었기에,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노자 도덕경》, 《장자》와 함께 시집을 다시 읽어보는 경험도 좋을 듯 싶다.


 시인 최승자는 이성복, 황지우와 함께 시의 해체를 도모한 삼인방으로 잘 알려져 있는 시인이다. 이 책이 내게는 최승자 첫 시집이었지만, 그녀의 시집 《이 時代의 사랑》을 인생 시집으로 꼽는 이들을 많이 봐왔기에 그녀의 존재를 익히 알고 있었다. 이 책 속 김소연 시인 평론에서도 《이 時代의 사랑》이 '여성이 주체로서 탄생하는 고통스러운 장관을 처음 목격'할 수 있는 시집이며, 24살의 최승자가 술 아니면 수면제를 먹고서야 잠들 수 있던 시절에 쓴 시가 담겨 있는 시집(특히 3부)이라고 언급한다. 《빈 배처럼 텅 비어》가 내 크나큰 기대보다는 못했다는 감상을 느껴 헛헛한 마음이었기에, 《이 時代의 사랑》에 다시 기대를 걸어보고자 한다. 다음 최승자 시집은 단연코 《이 時代의 사랑》으로 하겠다.


 《빈 배처럼 텅 비어》에서 특히 좋았던 시들은 <빈 배처럼 텅 비어>, <나 여기 있으면>, <한 세기를 넘어>, <나의 생존 증명서는>, <나의 임시 거처>, <아침이 밝아오니>, <모국어>다. '하릴없이 살아 있'어 고작 21세기 '쉬파리'밖에 못 되는 내가 자꾸만 '농담'처럼 지껄이는 '슬픔의 제사상'. 최승자가 '모국어'로 써내려간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를 요약한다면 바로 이런 문장이 아닐까.

나의 생존 증명서는 詩였고
詩 이전에 절대 고독이었다
고독이 없었더라면 나는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세계 전체가 한 병동이다

꽃들이 하릴없이 살아 있다
사람들이 하릴없이 살아 있다

_<나의 생존 증명서는>

나 없이도 계속될
억겁의 시간을 생각해보면
나는 한 마리의 쉬파리이다

이리 날다 저리 날다
이리 불리다 저리 불리다
나의 임시 거처인
21세기로 되돌아옵니다

_<나의 임시 거처>

아침이 밝아오니
살아야 할 또 하루가 시큰거린다
"나는 살아 있다"라는 농담
수억 년 해묵은 농담

_<아침이 밝아오니>

누구에게나 모국어는 슬픔의 제사상

_<모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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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너츠 완전판 1 : 1950~1952 피너츠 완전판 1
찰스 M. 슐츠 지음, 신소희 옮김 / 북스토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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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은 2018 캐릭터로 만화 《피너츠》 캐릭터들을 선정, 라이센스 계약을 맺어 다양한 피너츠 굿즈들을 선보이고 있는데 올해 초 그 굿즈들을 구경하다가 '스누피'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스누피를 검색해보니 마침 북스토리 출판사에서 피너츠 만화를 연도별로 묶어 완전판 시리즈로 출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에 나는 캐릭터 이름 '스누피'와 만화 이름 '피너츠'도 헷갈려 하던 독자였기에, 10권 완권 독파를 목적으로 피너츠 완전판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 알아볼 당시에는 10권이었고, 현재 18년 11월 기준 13권까지 출간된 상태다.)


 책을 읽기 이전, 뭣 모르고 <스누피 : 더 피너츠 무비>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피너츠'라는 제목이 원작 만화의 제목인 줄도 모르고, 익숙한 캐릭터 스누피 하나만 바라보고 봤던 3D 애니메이션 영화다. (참고로 이 영화에서 메간 트레이너가 부른 OST가 참 좋다. 추천한다.) 그때는 스누피와 어린 아이들이 나오는 '따뜻한 만화'라고 막연한 인상을 받았는데, 완전판 《피너츠》 1권을 읽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섬세하고 우울하고 예리하고 우스꽝스러운 만화라는 생각이 든다! 50년대 미국에서 탄생한 《피너츠》는 반세기가 지난 타국, 2018년 대한민국에도 유효한 힘을 지녔다. 이는 열등감 콤플렉스에 비관주의자이며 우리들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찰리 브라운, 찰리 브라운의 강아지 친구 스누피, 찰리 브라운을 놀리기 좋아하는 거친 여자아이 패티, 불평증 루시, 진흙파이 만들기를 좋아하는 바이올렛, 베토벤을 좋아하는 음악천재 슈뢰더, 루시의 동생 라이너스 등 생생한 캐릭터의 힘이다. 유머와 철학이 담긴 이야기의 힘이다. 《피너츠》가 어떻게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만화로 손꼽히며 성장했는지, 어떻게 슐츠에게 거대한 부를 안겨주게 됐는지 만화를 읽으면 읽을수록 납득하게 된다. 


 찰리 브라운에게 자신의 소심한 고등학생 시절을 투영했다던 슐츠는, 실제로 여행 포비아였고 캐릭터 라이센스로 억만장자가 된 노년에도 찰리 브라운처럼 변함없는 비관주의자였다고 한다. 죽기 직전 몸이 악화될 때까지 일요 연재분에 매일 한 컷씩 그림을 그렸고, 마지막 생이 다할 때까지 코믹 스트립에 몰두했다는 《피너츠》의 작가 찰스 M. 슐츠. 슐츠의 그 변함없는 우직함이 만화 속 캐릭터와 이야기에서 그대로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내가 피너츠 만화를 정복하려면, 어쩜 그의 삶 전반을 들여다봐야 할지도 모른다.


 1권의 감상 포인트는 지금과 확연히 다른 캐릭터들의 생김새와 진짜 '개'의 외형에 가까운 스누피의 모습이다. (우드스탁은 아직 등장하지도 않는다!) 1권 속 스누피는 아직 사람처럼 생각하고 두 발로 딛을 줄 모르기에, 1권을 읽은 독자들이 '네 발 강아지' 스누피를 보면 살짝 실망할 수도 있다. 스누피가 생각하고 걷고 우드스탁과 노는 모습을 볼 때까지 서둘러 완전판 시리즈를 독파해야겠다. 다 떠나서, 참 재밌어! 금방 독파할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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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 심심해 초등 저학년을 위한 그림동화 17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고향옥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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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어린이자료실에 《페르디난드》를 빌리러 갔다가 보게 된 요시타케 신스케 어린이책. (참고로, 《페르디난드》는 끝까지 찾지 못했다. 대출중인 도서가 아니라서 '도서비치'라고 표시되어 있었는데! 읽은 책은 제자리에 둡시다, 어린이 여러분...) 언뜻 보면 '별 것 아닌 이야기'로 공감과 즐거움을 불러일으키는 요시타케 신스케 특유의 창의적인 발상과 귀여운 그림체가 돋보이는 동화다.


 평소보다 더욱 '심심함'을 느낀 아이가 '심심하다'는 주제로 가지각색 상상을 하는 내용이 주다. 유니콘을 상상하며 빚은 찰흙반죽이 하마로 오해 받자 뚱한 표정을 짓는 아이의 얼굴과, 심심한 사람들만 300명 모인 심심한 장소의 심심한 분위기는 읽다가 낄낄 웃게 만든 대목. 요시타케 신스케 이 미친 자! 똘끼 넘치고 귀여움 터지는 그의 동화를 보고 있으면 나도 어린이가 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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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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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아닌, 정확히는 '과거의 자신'이었던 '그녀'의 질투를 섬세하고 치열하게 묘사하는 아니 에르노. 본인이 겪은 그의 페니스까지 묘사하는 아니 에르노의 글을 읽고 있자면, 너무나 솔직해서 당황스럽다 못해 점차 그녀에게 동화되어 광기로 휩싸이게 되는데 이번 글 역시 그랬다. 아니 에르노가 글에서 언급했듯 이 책 속에 등장하는 '그녀'의 집착은 곧 나의 집착이 되었고 나의 질투가 되었다.


 아니 에르노가 W와 이별하고 그와 서서히 거리를 둔 이후, 그녀는 작가로서 강연 자리를 가지게 된다. 그 강연에서 아니 에르노에게 공격적으로 질문을 퍼부은 여자가 한 명 있었다. 아니 에르노는 어쩜 그 여자가 여태 질투해온 ‘W의 여자’였을지도 모른다고 홀로 짐작한다. 집착의 여행이 가정에서 비롯되었듯이 집착이 결말 또한 가정일 뿐이었다. 그간 자신이 느꼈던 뜨거운 감각들 다음에 싱거운 결말을 덧붙여 글로 간직하는 아니 에르노의 모습이 어찌나 '쿨'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진정 쓰면서 사는 삶이란 이런 것이겠지.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한 에르노의 묘사는 어떻게 보면 ‘여자의 찌질함’을 극대화하여 표현하는 듯해서, 그녀의 글 속에서 종종 나의 즐거움, 정염, 우울을 섞어놓은 총집합체(體)를 느끼곤 한다. 괴물같고, 거지같은 총집합체 말이다. 처음 아니 에르노의 글을 읽었을 때는(어머니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한 여자》였다.) 그녀의 감정을 따라가기 벅찼고 그녀가 왜 이런 글을 쓰는지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그녀의 책을 세네 권 읽어가다 보니 깨달았다. 그녀의 글에서 감정과 이해를 무작정 흡입하려는 태도는 전혀 소용없다는 걸. 이제 나는 그녀의 글이 맛있다. 그녀가 쏟아내는 순간순간의 문장들이 내게 감칠맛나게 먹힌다.


 혹시 이 책으로 아니 에르노를 처음 접한 분이라면, 이어서 읽을 책으로 《단순한 열정》을 추천한다. 《단순한 열정》은 《집착》처럼 그녀의 내면과 문장을 들여다보기에 적합한 자전적 소설이라고 본다. 참고로, 그녀의 책 중 《탐닉》이라는 책은 아니 에르노가 《단순한 열정》에서 언급하는 A를 만날 당시 그를 대상으로 쓴 일기를 엮은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은 뒤 뒤늦게 《탐닉》을 읽어봤는데 아주 별로였다. 《탐닉》은 진지하게 읽기보단, 《단순한 열정》을 읽은 다음 참고자료 정도로 살피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실을 말하자면, 난 정말이지 아무 느낌도 없다. 나는 나를 본거지로 삼았던 그 질투가 꾸며내는 온갖 상상과 행동들을 묘사하려고만 애쓰며, 개인적이며 내밀한 것을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는 실체로 변모시키려고만 애쓰고 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 형체 없는 익명의 사람들이 아마도 그것들을 제 것으로 삼을 것이다.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더이상 나의 욕망, 나의 질투가 아니라 그저 욕망, 질투에 속하는 것이고,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곳에서 작업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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