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아닌, 정확히는 '과거의 자신'이었던 '그녀'의 질투를 섬세하고 치열하게 묘사하는 아니 에르노. 본인이 겪은 그의 페니스까지 묘사하는 아니 에르노의 글을 읽고 있자면, 너무나 솔직해서 당황스럽다 못해 점차 그녀에게 동화되어 광기로 휩싸이게 되는데 이번 글 역시 그랬다. 아니 에르노가 글에서 언급했듯 이 책 속에 등장하는 '그녀'의 집착은 곧 나의 집착이 되었고 나의 질투가 되었다.


 아니 에르노가 W와 이별하고 그와 서서히 거리를 둔 이후, 그녀는 작가로서 강연 자리를 가지게 된다. 그 강연에서 아니 에르노에게 공격적으로 질문을 퍼부은 여자가 한 명 있었다. 아니 에르노는 어쩜 그 여자가 여태 질투해온 ‘W의 여자’였을지도 모른다고 홀로 짐작한다. 집착의 여행이 가정에서 비롯되었듯이 집착이 결말 또한 가정일 뿐이었다. 그간 자신이 느꼈던 뜨거운 감각들 다음에 싱거운 결말을 덧붙여 글로 간직하는 아니 에르노의 모습이 어찌나 '쿨'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진정 쓰면서 사는 삶이란 이런 것이겠지.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한 에르노의 묘사는 어떻게 보면 ‘여자의 찌질함’을 극대화하여 표현하는 듯해서, 그녀의 글 속에서 종종 나의 즐거움, 정염, 우울을 섞어놓은 총집합체(體)를 느끼곤 한다. 괴물같고, 거지같은 총집합체 말이다. 처음 아니 에르노의 글을 읽었을 때는(어머니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한 여자》였다.) 그녀의 감정을 따라가기 벅찼고 그녀가 왜 이런 글을 쓰는지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그녀의 책을 세네 권 읽어가다 보니 깨달았다. 그녀의 글에서 감정과 이해를 무작정 흡입하려는 태도는 전혀 소용없다는 걸. 이제 나는 그녀의 글이 맛있다. 그녀가 쏟아내는 순간순간의 문장들이 내게 감칠맛나게 먹힌다.


 혹시 이 책으로 아니 에르노를 처음 접한 분이라면, 이어서 읽을 책으로 《단순한 열정》을 추천한다. 《단순한 열정》은 《집착》처럼 그녀의 내면과 문장을 들여다보기에 적합한 자전적 소설이라고 본다. 참고로, 그녀의 책 중 《탐닉》이라는 책은 아니 에르노가 《단순한 열정》에서 언급하는 A를 만날 당시 그를 대상으로 쓴 일기를 엮은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은 뒤 뒤늦게 《탐닉》을 읽어봤는데 아주 별로였다. 《탐닉》은 진지하게 읽기보단, 《단순한 열정》을 읽은 다음 참고자료 정도로 살피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실을 말하자면, 난 정말이지 아무 느낌도 없다. 나는 나를 본거지로 삼았던 그 질투가 꾸며내는 온갖 상상과 행동들을 묘사하려고만 애쓰며, 개인적이며 내밀한 것을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는 실체로 변모시키려고만 애쓰고 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 형체 없는 익명의 사람들이 아마도 그것들을 제 것으로 삼을 것이다.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더이상 나의 욕망, 나의 질투가 아니라 그저 욕망, 질투에 속하는 것이고,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곳에서 작업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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