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작가정신에서 진행하는 서평단 '작정단'! 2기를 마치고 이제 3기를 시작했다. 3기의 첫 책은 작가 김종광의 산문집 《웃어라, 내 얼굴》. 일전에 작정단 2기를 통해서 읽었던 농촌 소설 《놀러 가자고요》의 작가가 펴낸 신간이다. 《웃어라, 내 얼굴》은 지난 20년 간 김종광 작가가 다양한 지면을 통해 게재했던 산문 1500여 편 가운데 추린 글들을 모은 책으로,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가족에게 배우다'는 아내,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 속 작가의 소탈한 모습을 엿볼 수 있고, 2부 '괴력난신과 더불어'에서는 작가가 봤을 때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존재나 현상으로 여겨졌던 일과 깨우침을 볼 수 있다. (참고로, '괴력난신'은 괴이한 일, 이상한 힘, 인륜을 어지럽히는 일, 귀신에 대한 일을 공자님이 묶어 가리켰던 말이다.) 3부 '무슨 날'에서는 어버이 날, 어린이 날, 체육의 날 등 특정 기념일과 국가의 지정일에 김종광이 했던 날카로운 생각들이 글로 펼쳐진다. 그리고 마지막 4부 '읽고 쓰고 생각하고'에서는 김종광 본인의 글에 관한 철학뿐만 아니라, 인상깊게 읽었던 책과 현재 미디어 시대 글쓰기에 대해 말한다.
김종광의 산문을 보면서 '이 사람, 참 글쓰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글자를 배우는 동안 양껏 쓰다 버린 연필을 보면서 '동화 속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같다고 비유하거나, 찜질방을 원시시대 동굴처럼 평화로운 공간이라고 표현하거나, 헝그리정신이 사라진 스포츠를 비판하며 '스포츠는 투자한 만큼 얻어내는, 누가 더 배부른가의 경쟁이다. 우리 스포츠는 올림픽 7등을 할 만큼 배가 부른 것이다.'라고 일갈한다. 3부는 특히 '비판하는 김종광'의 모습을 지켜보며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구간이라 하겠다. 물론 3부 이전이나 이후에도 유치원보다 가르치는 시간도 짧은 대학교가 터무니없이 많은 등록금을 물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며 지적하기도 하고, 아쿠타가와상은 실상 규정도 없는 문학상이고 경력 10년 미만의 작가들이 한 해 발표한 소설 중 적절한 작품을 뽑아 노골적으로 스타작가를 만드는 프로젝트라며 까발리기도 하지만, 3부를 읽는 내내 이렇게 각종 '날'마다 딴지를 거는 사람은 오랜만이구나 싶어 내심 즐거웠다.
아내와 작가 본인 둘 다 와인 마개를 따지 못해서 낑낑거리다가 가루가 잔뜩 든 와인을 마셨다는 이야기나, 대출을 이야기하면서 각각 책 대출과 전세 대출로 동상이몽했다는 이야기 등 소소한 가족 이야기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하고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일하라고 가난한 겨'라고 말했던 쭈꾸미집 할머니와 '너희 대학생들은 삶조차 아르바이트지'라고 힐난했던 친구 등 그가 만난 사람들, 요즘의 드라마를 '중년의 유희'로 바라보는 시각과 《삼국지》가 없었다면 더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왔을 거라는 예언(《삼국지》를 이렇게나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가는 처음 봐서 신선했다!), 책을 향한 집착 등 허허실실 웃는 듯 하다가도 할 말은 다 하는 글 속 깊이 새겨진 애환과 가치관 가운데서도 유독 난 김종광의 '글쓰기' 이야기가 좋았다. 나누어 보자면 두 분류다. '글쓰기'에 대한 김종광의 생각과, '김종광의 글쓰기'에 대한 김종광의 생각.
전자부터 말해볼까. 김종광은 인터넷 글쓰기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인류사 거의 전체 동안 배운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던 글쓰기'를 인터넷이 하루 아침에 무너뜨렸다고. 덕분에 맞춤법이 틀려도, 공부나 독서력이 짧아도, 유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공적인 공간에서 글쓰는 일이 가능해졌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로 스트레스를 푸는 세상이 바로 인류가 꿈꾸었던 무릉도원일지도 모른다고 김종광이 덧붙여 말하기도 한다. 그저 끼적거리는 행위라고 느꼈던 글쓰기가 어쩌면 나의 특권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깊이 고개를 끄덕인 부분이었다. '목요일의 글쓰기'(글쓰기 해시태그) 더욱 열심히 해야지,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다. 허나, 이어서 작가는 너무 자유와 평등에 몰두한 나머지 '인터넷 글쓰기'는 다른 이의 삶 자체를 위협하고 파괴하는 족속을 만들어냈고(악플과 유언비어 등을 가리킨 듯했다.), 알파고가 소설을 쓸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선사했다고 통찰했다.
다음으로는 '김종광의 글쓰기'. 김종광의 글을 읽어본 독자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미처 알지 못했던, 자주 쓰지 않았던 순우리말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산문에서도 '비손하다'(두 손을 비비면서 신에게 병이 낫거나 소원을 이루게 해 달라고 빌다), '애면글면'(몹시 힘에 겨운 일을 이루려고 갖은 애를 쓰는 모양) 같이 낯설지만 유익한 단어를 만난 경험을 했다. (실제로 김종광도 의식적으로 순우리말을 쓰기 위해 국어사전의 순우리말을 하루에 열 개씩 찾아 외우거나, 이문구 선생의 글처럼 순우리말 천지인 텍스트를 공부하는 등 자신이 직접 했던 노력을 글에 소개했다.) 그 낯설지만 유익한 단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라고 한다면, 바로 '비릊다'다. '비릊다'는 '임부가 진통을 일으키며 아이를 낳으려는 기미를 보이다'라는 뜻으로, 김종광 본인이 직접 쓰기 시작한 단어가 아니라 시 쓰는 후배가 김종광에게 첨삭을 부탁하고 보낸 시 중에서 발견한 단어라고 했다. 구태여 넣은 듯 보였던 순우리말이 마치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이렇게 비릊는 세월을 보내는' 자신 같다고 느낀 김종광은 이후 '비릊다'를 후배나 친구에게 남발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좋은 시(소설) 비릊기를!", "두 사람이 아름다운 인연 비릊기를!"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나까지 결국 중독 되어버렸다. '비릊다', 참 오묘한 단어다.
김종광이 즐겨 쓰는 단어뿐만 아니라, 자신의 글쓰기와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일을 허심탄회하게 말하는 문장들이 참 담백하고 아름다웠다. 표제 산문 <웃어라, 내 얼굴>과 또 다른 산문 <돼지띠 소설가의 새해 바람>에 나오는 문장들인데, 이 문장들은 아래 인상 깊었던 다른 문장들과 함께 정리해둔다. 담백하고 솔직하고 '웃기는' 산문이다. 김종광 본인이 쓰고 싶다던 '웃기는' 소설 같이, 위로 받아서 웃고 짠해서 웃고 기가 막혀 웃고 분해서 웃고 절묘해서 웃고 깨쳐서 웃을 수 있는 그런 산문이다. 작정단 3기, 시작이 좋구나!
우리는 보다 나은 집과 옷과 음식을 쟁취하려고 살아간다. 그곳은 의식주를 가장 낮은 수준으로 통일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원시시대 공굴 사람들처럼 평화롭다. 치열하게 싸우던 이들의, 다 벗어던진 휴식 같은 평안이 넘쳐흐르는 듯하다. 모두가 뭔가를 찜질 중이다. - <찜질방>
예술가가 독특했던 것은 대개 정규직이었던 시대에 드물게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모든 사람을 예술가로 만들려는 모양이다. ‘불안 속의 평균 유지하기‘라는 가계 예술의 달인으로. - <불안 속의 평균>
지극히 개인적인 새해 바람을, 아주 솔직하게, 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내가 이미 냈거나 낼 책이 보다 많은 독자와 만나는것(좀 팔렸으면 싶다는 거다), 나의 투철한 직업정신에 의해 탄생한 작품들이 전문적인 평자들의 마음에도 들어 상찬을 받고 나아가 그 상징적인 결과로 문학상이라도 하나 받는 것일 테다. 하지만 이러한 바람은 솔직하지만 비루할 정도로 노골적인 동시에,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똥돼지가 미련하다는 소리 들어가며 죽을 똥 싸며 노력해도 황금돼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때문에 똥돼지 차원으로, 현실적으로 가능한 바람을 얘기하자면, 올해에도 한 달에 200만 원 정도는 벌 수 있는 일거리가(원고청탁이) 꾸준히 들어와주고, 한두 권의 책을 출판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아가 그 책을 보게 될 소수의 독자에게 의미 있는 독서기억으로 남길 바란다. 간단히 말해서 소설가로 직업을 유지할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돼지띠 소설가의 새해 바람>
‘웃기는‘이 좋겠다. 이제까지도 웃기는 소설을 써왔지만, 내 웃음과 독자의 웃음이 상통하지 못한 듯 내 소설에 웃는 독자가 드물었으나, 불구하고 더욱 웃기는 소설을 써야겠다. 절로 웃을 수밖에 없는 소설, 위로받아서 웃고, 짠해서 웃고, 기가 막혀 웃고, 분해서 웃고, 절묘해서 웃고, 깨쳐서 웃는, 가진 자들의 체제와 권력에 대하여 날이 바짝 서 있으면서도 울음보다 강한 웃음기를 머금은 그런 웃기는 소설. 나의 미혹을 애증한다. 내가 웃기는 소설에 대한 미혹을 집어치우는 순간, 그러니까 불혹의 경지에 다다르는 순간, 무슨 활기로 견디겠느냔 말이다. 다짐 삼아 얼밋얼밋 그려진 웃는 내 얼굴보고 주문을 읊어본다. 웃어라. 내 얼굴! 웃어라. 내 소설! - <웃어라, 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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