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김철수 - 사람을 찾습니다
정철 지음, 이소정 그림 / 허밍버드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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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대표 카피라이터 정철이 쓴 에세이. 꼰대를 알려주는 책이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이 책 자체가 꼰대인 느낌이다.


 저자가 남성이라서 그런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건 결국 '남성 꼰대'인데, 꼰대를 까는 듯하다가도 꼰대를 위로하고 방어하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자는 건지 싶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게 타인을 옥죄는 꼰대의 특성을 설명할 때는 학교에 가니 선생이 있었고, 회사에 가니 과장이 있었고 식으로 이야기하다가 집에 가니 마누라가 있었다고 얼렁뚱땅 예시를 들며 꼰대 특성의 경위를 밝힌다. 한국 남자가 결혼을 이야기할 때 '마누라'를 좋게 감싸는 건 도대체 언제 볼 수 있을까. 남자의 힘듦과 오지랖은 이렇게 종종 잘~ 설명된다. 젊은이들과 공감할 수 없는 꼰대 남성은 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어쩌다가 등장하는 말들은 꽤 멋있었다. 개중 몇 개는 그림으로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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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손님이 없어서 빵을 굽습니다
박무늬 지음, 박오후 그림 / 머쓱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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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출판물 《오늘도 손님이 없어서 빵을 굽습니다》. 일전에 서점에서 보고 제목이 독특해서 기억하고 있었다가, 도서관 신간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하곤 앞부분을 읽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안산에 있는 아주 작은 카페', '동네 서점 안에 있는 작은 테이크아웃 카페'로 소개하는 문구를 보곤, 안산의 동네서점 대동서적에서 열 번은 스쳐지나간 적 있는 그 카페(이때만 해도 카페의 이름을 몰랐다.)의 자매 사장님 이야기라는 걸 알았다. 그때부터 몰입도가 상승하면서 네 꼭지 정도를 순식간에 읽어내렸다. 처음에는 제목 때문에 책을 집었고, 한 번쯤 봤을지도 모르는 안산 사람이 저자란 점 때문에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지만, '섹시한 복숭아 파이'와 '수줍은 플레인 스콘' 같은 귀여운 목차가 상큼해서 그리고 '손님이 없어서' 베이킹을 한다는 청년 사장의 이야기가 와닿아서 술술 읽었다.


 《오늘도 손님이 없어서 빵을 굽습니다》는 하루 평균 매출 3만원의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저자가 어떻게 하면 손님이 없는 카페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홀로 진행한 베이킹 프로젝트를 담은 책이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오늘의 스위츠(sweets) 프로젝트'. '손님이 없어서' 손님들을 위해 나를 위해 부지런히 스위츠를 만들고, 또 다시 '손님이 없어서' 팔려나가지 않는 스위츠를 안타깝게 지켜보다가, 팔리지 못하고 남은 스위츠를 결국 자신이 다 먹어버리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 딱 요즘 청년들의 모습을 대변해 보는 듯하다. 근면하지만 개성 있고 세상이 떠안기는 굴욕에 좌절하다가도 열정적인 청년들. 나도 저자와 비슷한 또래의 청년이다 보니 저자가 또 하나의 나처럼 느껴졌고, 덕분에 많이 위로 받았다.


 책에서 글을 쓴 이는 자매 중 동생인 박무늬고, 그림을 그린 이는 언니 박오후다.('박오후'는 필명이라고 한다.) 그림을 그려주는 대가로 동생이 언니에게 밥을 사줬다고. 책 앞날개 저자 소개부터 자매의 너무 다른 특성을 한눈에 알아 본 독자는 곧 온 얼굴에 미소가 번질지도 모른다. 쿨하게 등장했다가 쿨하게 사라지는 그린 이 박오후의 존재감에도 주목해 읽어보면, 더욱 재미있을 책이다. (참고로, 오후님은 이 책에 그림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책을 읽지 않았다고 무늬님이 밝혔다.) 덧붙여 말하자면, 출판사 '머쓱'은 저자 박무늬의 독립출판사이다. 첫 책이 《오늘도 손님이 없어서 빵을 굽습니다》였고, 두 번째 책으로 저자와 저자의 친구가 함께 쓴 에세이 《매일과 내일》이 출간됐다. 앞으로 어떤 공감 가는 이야기를 독자에게 싱그럽게 전달해줄지 기대되는 독립출판사이자 저자다.


 이 책과 관련하여 개인적인 이야기 하나가 더 있다. 대동서적에서 책을 사서 마저 완독한 날, 서점 내 드워프 커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마침 글을 쓰신 저자 박무늬님이 계셨는데, 드워프 커피의 시그니처이자 책에도 등장했던 머랭 쿠키를 사면서 책을 읽었다고 말씀드렸다. 이어서 용기내어 사인을 부탁드린 나를 환하게 반겨주시며 저자께서 책 면지에 귀여운 사인을 선물해주셨다. 오늘은 스위츠가 없다고 아쉬워하시면서 조그만 떡메모지도 함께 주셨다! 그 밝은 미소가 잊혀지지 않는다. 나도 영화 <레이버 데이> 재밌게 봤다고, 책에서 언급했듯 복숭아 파이 만드는 장면 정말 대단하지 않냐고 공감 구걸하고 싶었으나 꾹꾹 팬심을 참아냈다. 대동서적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저자가 써준 사인과 문장을 꼼꼼히 읽으면서 행복하게 귀가했던 기억이 난다.


 저자가 '손님이 없다고' 말한 책 속 문장을 모아 다시 한 번 봤다. 안쓰럽고도 귀여워 웃픈 문장들이었다. 이렇게 모아 보니 더 웃프고 사랑스러워 왠지 모르게 저자처럼 열심히 살고 싶고 저자처럼 힘 있게 하루를 맞이하고 싶다고 다짐하게 된다.

이 행복을 손님들께도 전하고 싶어서 오늘은 얼그레이 쿠키를 만들었습니다. 콕콕콕 박힌 찻잎들이 아주 사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역시 오늘도 손님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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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 다이어리 - 내 몸을 쓰고, 그리고, 탐구하는 시간
이자벨라 버넬 지음, 홍주연 옮김 / 생각의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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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 다이어리》는 감각적인 색감과 패턴이 특징인 일러스트레이터 이자벨라 버넬이 독자를 위해 마련한 읽고, 쓰고, 그리는 공간에 본인의 일러스트를 함께 엮어 만든 책이다. 이자베라 버넬은 서문에 이렇게 썼다. '자신의 가슴이 이상하게 생겼다고 생각하나요? 한 번 그려 보세요! 혹시 오늘 성희롱, 성차별에 대한 기사를 봤나요? 그럴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찬찬히 생각해 보고 써 보세요! 여러분의 감정을 솔직하게 적을 수 있는 페이지와 직접 그림을 그리고 낙서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이 책은 가부장제와 맞서는 싸움의 동료가 되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줄 겁니다.' 이 책의 부제 역시 '내 몸을 쓰고, 그리고, 탐구하는 시간'이다.


 서문 후 이어진 3페이지에 섹슈얼한 포즈를 취한 남성의 일러스트가 있었다. 담대한 일러스트를 보고 내심 당혹스러웠는데, 이 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쓰여 있었다.


영국 대표 타블로이드 지 <더 썬>은 매번 본문 3페이지에 글래머러스한 여성 모델의 사진을 크게 실었다. 이것을 두고 '3페이지의 섹시녀'(page3 babe)라고 불렀다. 이는 곧 다른 잡지들에까지 유행처럼 번졌다. 페미니스트들이 꾸준히 항의한 결과 2015년에야 사라졌다.


이 일러스트는 '3페이지의 섹시녀'를 미러링한 셈이다. 시선을 사로잡는 미러링에 이어 책은 내 몸에 관한 나만의 느낌을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려보는 공간, 내 가슴을 그려보고 이자벨라 버넬의 다양한 가슴 일러스트 중에 나와 비슷한 가슴을 찾아보는 공간, 나의 음모 스타일을 그려보고 새로운 스타일을 디자인해보는 공간, 생리 · 생리 용품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공간, 그동안 나와 잤던 사람 · 내가 자보고 싶던 사람을 이야기해보는 공간, 다양한 피임법을 이야기해보는 공간,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불안을 털어내보는 공간 등 탐구의 공간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 공간 사이사이에 페미니스트들의 명언, 믿을 수 없는 성차별 통계, 다양한 피임법 소개가 곁들어져 재미있고 열정적으로 탐구를 계속해나갈 수가 있다.


 나는 특히 내 가슴 모양을 그리고, 음모의 모양을 디자인하는 공간이 재미있었다. 인생의 목표와 야망을 쓰는 공간에선 열렬한 소망과 의식을 담아 글을 적었고, 내가 자보고 싶던 사람을 이야기할 땐 내 마음에 동요를 일으켰던 영화 속 캐릭터의 이름을 실실 웃으며 적었다. 여성이라면 나처럼 한 번쯤 이 책을 통해 유익한 자아성찰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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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의 생일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책 1
이와사키 치히로 지음, 엄혜숙 옮김, 다케이치 야소오 기획 / 미디어창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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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와사키 치히로의 그림을 처음 알게 된 건 구로야나기 테츠코의 자전적인 소설 《창가의 토토》를 통해서였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발달이 늦지만, 천진난만하고 호기심 가득했던 소녀 토토. 토토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도모에 학원의 고바야시 소사쿠 교장 선생님을 만나 순수한 자신의 모습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이와사키 치히로는 이 맑은 이야기에 삽화를 그렸고 《창가의 토토》에 고이 담긴 사랑과 배려를 그림을 통해 독자에게 이백 퍼센트 전달해주었다. 《창가의 토토》가 나의 초등학교 시절 인생책이 된 이유에는 이와사키 치히로의 일러스트 힘도 컸다고 생각한다.


 《눈 오는 날의 생일》은 창비의 자회사이자 유아동 그림책들을 번역 주로 출간하는 미디어창비에서 이와사키 치히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새롭게 펴낸 그림책 중 하나다. 실제로 이와사키 치히로 본인도 겨울에 태어났으며, 저자가 겪은 유년의 기억과 합쳐져 만들어진 책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한다. 다섯 살 생일을 앞둔 아이 치이가 친구 생일파티에 갔다가 실수로 친구의 촛불을 대신 불어 꺼뜨린다. 그 바람에 치이는 하루종일 자책하지만, 소원했던 대로 자신의 생일에 눈이 내리자 실수를 잊고 다시 즐거워하며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생일 축하를 받는다. 아이의 고민과 소망을 따뜻한 그림으로 표현한 동화다. 참고로, 책 표지의 그림은 엄마에게서 빨간 모자와 장갑을 생일 선물로 받은 치이의 얼굴이다.


 이와사키 치히로의 그림은 그녀가 십 대에 배운 스케치 및 유화 기법과 이십 대에 배운 서예 기법을 접목해, 수채화와 수묵화를 결합한 독특한 화풍이 특징이다. 평생 어린이를 작품 테마로 삼은 그녀는 생전에 반전 및 반핵 운동에도 앞장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이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이와사키 치히로의 시선이 이 책에서도 물씬 느껴진다. 동화가 시작되기 전 책장 한쪽에 조그만 눈사람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눈사람마저 톡 하고 건들이면 따뜻하게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내일 생일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엄마한테 말했지만
정말은 딱 하나 바라는 게 있어요

내일
새하얀 눈을 내려 주세요
내가 태어났던 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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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작가정신에서 진행하는 서평단 '작정단'! 2기를 마치고 이제 3기를 시작했다. 3기의 첫 책은 작가 김종광의 산문집 《웃어라, 내 얼굴》. 일전에 작정단 2기를 통해서 읽었던 농촌 소설 《놀러 가자고요》의 작가가 펴낸 신간이다. 《웃어라, 내 얼굴》은 지난 20년 간 김종광 작가가 다양한 지면을 통해 게재했던 산문 1500여 편 가운데 추린 글들을 모은 책으로,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가족에게 배우다'는 아내,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 속 작가의 소탈한 모습을 엿볼 수 있고, 2부 '괴력난신과 더불어'에서는 작가가 봤을 때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존재나 현상으로 여겨졌던 일과 깨우침을 볼 수 있다. (참고로, '괴력난신'은 괴이한 일, 이상한 힘, 인륜을 어지럽히는 일, 귀신에 대한 일을 공자님이 묶어 가리켰던 말이다.) 3부 '무슨 날'에서는 어버이 날, 어린이 날, 체육의 날 등 특정 기념일과 국가의 지정일에 김종광이 했던 날카로운 생각들이 글로 펼쳐진다. 그리고 마지막 4부 '읽고 쓰고 생각하고'에서는 김종광 본인의 글에 관한 철학뿐만 아니라, 인상깊게 읽었던 책과 현재 미디어 시대 글쓰기에 대해 말한다.


 김종광의 산문을 보면서 '이 사람, 참 글쓰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글자를 배우는 동안 양껏 쓰다 버린 연필을 보면서 '동화 속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같다고 비유하거나, 찜질방을 원시시대 동굴처럼 평화로운 공간이라고 표현하거나, 헝그리정신이 사라진 스포츠를 비판하며 '스포츠는 투자한 만큼 얻어내는, 누가 더 배부른가의 경쟁이다. 우리 스포츠는 올림픽 7등을 할 만큼 배가 부른 것이다.'라고 일갈한다. 3부는 특히 '비판하는 김종광'의 모습을 지켜보며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구간이라 하겠다. 물론 3부 이전이나 이후에도 유치원보다 가르치는 시간도 짧은 대학교가 터무니없이 많은 등록금을 물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며 지적하기도 하고, 아쿠타가와상은 실상 규정도 없는 문학상이고 경력 10년 미만의 작가들이 한 해 발표한 소설 중 적절한 작품을 뽑아 노골적으로 스타작가를 만드는 프로젝트라며 까발리기도 하지만, 3부를 읽는 내내 이렇게 각종 '날'마다 딴지를 거는 사람은 오랜만이구나 싶어 내심 즐거웠다.


 아내와 작가 본인 둘 다 와인 마개를 따지 못해서 낑낑거리다가 가루가 잔뜩 든 와인을 마셨다는 이야기나, 대출을 이야기하면서 각각 책 대출과 전세 대출로 동상이몽했다는 이야기 등 소소한 가족 이야기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하고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일하라고 가난한 겨'라고 말했던 쭈꾸미집 할머니와 '너희 대학생들은 삶조차 아르바이트지'라고 힐난했던 친구 등 그가 만난 사람들, 요즘의 드라마를 '중년의 유희'로 바라보는 시각과 《삼국지》가 없었다면 더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왔을 거라는 예언(《삼국지》를 이렇게나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가는 처음 봐서 신선했다!), 책을 향한 집착 등 허허실실 웃는 듯 하다가도 할 말은 다 하는 글 속 깊이 새겨진 애환과 가치관 가운데서도 유독 난 김종광의 '글쓰기' 이야기가 좋았다. 나누어 보자면 두 분류다. '글쓰기'에 대한 김종광의 생각과, '김종광의 글쓰기'에 대한 김종광의 생각.


 전자부터 말해볼까. 김종광은 인터넷 글쓰기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인류사 거의 전체 동안 배운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던 글쓰기'를 인터넷이 하루 아침에 무너뜨렸다고. 덕분에 맞춤법이 틀려도, 공부나 독서력이 짧아도, 유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공적인 공간에서 글쓰는 일이 가능해졌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로 스트레스를 푸는 세상이 바로 인류가 꿈꾸었던 무릉도원일지도 모른다고 김종광이 덧붙여 말하기도 한다. 그저 끼적거리는 행위라고 느꼈던 글쓰기가 어쩌면 나의 특권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깊이 고개를 끄덕인 부분이었다. '목요일의 글쓰기'(글쓰기 해시태그) 더욱 열심히 해야지,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다. 허나, 이어서 작가는 너무 자유와 평등에 몰두한 나머지 '인터넷 글쓰기'는 다른 이의 삶 자체를 위협하고 파괴하는 족속을 만들어냈고(악플과 유언비어 등을 가리킨 듯했다.), 알파고가 소설을 쓸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선사했다고 통찰했다.​


 다음으로는 '김종광의 글쓰기'. 김종광의 글을 읽어본 독자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미처 알지 못했던, 자주 쓰지 않았던 순우리말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산문에서도 '비손하다'(두 손을 비비면서 신에게 병이 낫거나 소원을 이루게 해 달라고 빌다), '애면글면'(몹시 힘에 겨운 일을 이루려고 갖은 애를 쓰는 모양) 같이 낯설지만 유익한 단어를 만난 경험을 했다. (실제로 김종광도 의식적으로 순우리말을 쓰기 위해 국어사전의 순우리말을 하루에 열 개씩 찾아 외우거나, 이문구 선생의 글처럼 순우리말 천지인 텍스트를 공부하는 등 자신이 직접 했던 노력을 글에 소개했다.) 그 낯설지만 유익한 단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라고 한다면, 바로 '비릊다'다. '비릊다'는 '임부가 진통을 일으키며 아이를 낳으려는 기미를 보이다'라는 뜻으로, 김종광 본인이 직접 쓰기 시작한 단어가 아니라 시 쓰는 후배가 김종광에게 첨삭을 부탁하고 보낸 시 중에서 발견한 단어라고 했다. 구태여 넣은 듯 보였던 순우리말이 마치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이렇게 비릊는 세월을 보내는' 자신 같다고 느낀 김종광은 이후 '비릊다'를 후배나 친구에게 남발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좋은 시(소설) 비릊기를!", "두 사람이 아름다운 인연 비릊기를!"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나까지 결국 중독 되어버렸다. '비릊다', 참 오묘한 단어다. 


 김종광이 즐겨 쓰는 단어뿐만 아니라, 자신의 글쓰기와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일을 허심탄회하게 말하는 문장들이 참 담백하고 아름다웠다. 표제 산문 <웃어라, 내 얼굴>과 또 다른 산문 <돼지띠 소설가의 새해 바람>에 나오는 문장들인데, 이 문장들은 아래 인상 깊었던 다른 문장들과 함께 정리해둔다. 담백하고 솔직하고 '웃기는' 산문이다. 김종광 본인이 쓰고 싶다던 '웃기는' 소설 같이, 위로 받아서 웃고 짠해서 웃고 기가 막혀 웃고 분해서 웃고 절묘해서 웃고 깨쳐서 웃을 수 있는 그런 산문이다. 작정단 3기, 시작이 좋구나!

우리는 보다 나은 집과 옷과 음식을 쟁취하려고 살아간다. 그곳은 의식주를 가장 낮은 수준으로 통일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원시시대 공굴 사람들처럼 평화롭다. 치열하게 싸우던 이들의, 다 벗어던진 휴식 같은 평안이 넘쳐흐르는 듯하다. 모두가 뭔가를 찜질 중이다. - <찜질방>

예술가가 독특했던 것은 대개 정규직이었던 시대에 드물게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모든 사람을 예술가로 만들려는 모양이다. ‘불안 속의 평균 유지하기‘라는 가계 예술의 달인으로. - <불안 속의 평균>

지극히 개인적인 새해 바람을, 아주 솔직하게, 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내가 이미 냈거나 낼 책이 보다 많은 독자와 만나는것(좀 팔렸으면 싶다는 거다), 나의 투철한 직업정신에 의해 탄생한 작품들이 전문적인 평자들의 마음에도 들어 상찬을 받고 나아가 그 상징적인 결과로 문학상이라도 하나 받는 것일 테다. 하지만 이러한 바람은 솔직하지만 비루할 정도로 노골적인 동시에,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똥돼지가 미련하다는 소리 들어가며 죽을 똥 싸며 노력해도 황금돼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때문에 똥돼지 차원으로, 현실적으로 가능한 바람을 얘기하자면, 올해에도 한 달에 200만 원 정도는 벌 수 있는 일거리가(원고청탁이) 꾸준히 들어와주고, 한두 권의 책을 출판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아가 그 책을 보게 될 소수의 독자에게 의미 있는 독서기억으로 남길 바란다. 간단히 말해서 소설가로 직업을 유지할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돼지띠 소설가의 새해 바람>

‘웃기는‘이 좋겠다. 이제까지도 웃기는 소설을 써왔지만, 내 웃음과 독자의 웃음이 상통하지 못한 듯 내 소설에 웃는 독자가 드물었으나, 불구하고 더욱 웃기는 소설을 써야겠다. 절로 웃을 수밖에 없는 소설, 위로받아서 웃고, 짠해서 웃고, 기가 막혀 웃고, 분해서 웃고, 절묘해서 웃고, 깨쳐서 웃는, 가진 자들의 체제와 권력에 대하여 날이 바짝 서 있으면서도 울음보다 강한 웃음기를 머금은 그런 웃기는 소설.
나의 미혹을 애증한다. 내가 웃기는 소설에 대한 미혹을 집어치우는 순간, 그러니까 불혹의 경지에 다다르는 순간, 무슨 활기로 견디겠느냔 말이다. 다짐 삼아 얼밋얼밋 그려진 웃는 내 얼굴보고 주문을 읊어본다. 웃어라. 내 얼굴! 웃어라. 내 소설! - <웃어라, 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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