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용도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마크 마리 지음 / 1984Books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아니 에르노의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아니 에르노가 섹스 후 어질러진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그에 관해 설명과 회상을 덧붙여 남긴 기록이다. 연인이었던 마크 마리와 함께 글을 써서, 사진 하나에 각각 두 개의 에세이가 붙은 구성으로 진행된다. 40여 장의 사진 가운데 14장을 골랐고, 글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서로에게 글을 보여주지 않고 자유롭게 썼다고 한다.


자신의 섹스'와 '그 풍경을 담은 사진'을 기록해 출간했다는 점에서 참 '아니 에르노다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글은 가감 없고 솔직하고 존재론적이다. 난 언제나 그녀의 내밀하고 열정적인 욕망이 궁금해 책을 열었지만, 새삼스럽게도 그녀가 회의하는 '세밀한 일상'과 '쓰는 삶'에 마음이 동하곤 했다. 이 책 또한 요란한 섹스 일기인 척 겉모습을 꾸미고 있지만, 속내는 아니 에르노의 투병 일기이자 생을 향한 투쟁 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이 쓰인 시기가 아니 에르노가 유방암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던 시기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항암 치료 때문에 체모가 모두 빠졌던 아니 에르노는 머리를 밀고 가발을 쓴다. 겨드랑이 쪽에는 맥주병 뚜껑같이 볼록한 플라스틱 관이 삽입되어 있었는데, 화학 요법을 할 때마다 악성 세포를 죽이는 물질을 집어넣는 카테테르였다. 이렇듯 온몸이 투쟁의 현장으로 바뀌어버린 아니 에르노는('몇 개월 동안 내 몸은 폭력적인 작업이 이뤄진 극장이었다.") 정형화된 섹스 어필이 불가한 몸으로 섹스를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욕망과 삶은 병에 쉽사리 투항하지 않는다는 걸, 시간은 흘러가지만 순간은 영원하다는 걸 이야기한다.


섹스를 할 때마다 그녀의 가발이 벗겨지던 이야기나, 아니 에르노와 마크 마리가 각자 어머니의 죽음 전후로 같은 아미고 호텔에 머물렀던 우연의 이야기, 투병 사실을 알리면 본인이 부재할 미래를 점쳐보는 사람들의 눈이 싫어 투병을 숨겼던 동정의 이야기, 베니스 성당 종탑에서 브래지어를 던졌던 낭만의 이야기, 육체가 보이지 않는 사진에서 함께 지낸 '여름'을 떠올리고 그가 신던 '부츠'를 기억하고 즐겨 듣던 '노래' 리스트를 되뇌는 흔적의 이야기… 연인은 동일한 사진을 두고 다른 감상과 회상을 늘어놓지만, 그 글들이 머금은 온도는 비슷해 보인다. 차츰 열정이 식어가는 온도,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렸다는 식의 옛것을 대할 때의 차분하고 건조한 온도가 책 후반부로 향할수록 또렷하게 느껴진다.


오래전부터 사진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소망이 더욱 강렬해졌다. 아니 에르노가 말했듯 모든 사진은 형이상학적이니까. 사진으로도 행복과 사랑은 붙잡을 수 없다. 하지만, 생이 지나가는 발자국만큼은 붙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나도 이토록 진지하게 죽음의 그림자를 외면하고 유한한 욕망에 매몰될 수 있을까.

내가 만났던 모든 남자들은 매번 다른 깨달음을 위한 수단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남자 없이 지내기 것은 단지 성적인 필요성보다는 지식을 향한 욕망에 있다. 무엇을 알기 위해서인가. 그것은 말할 수 없다. 나는 아직, 어떤 깨달음을 위해 M을 만난 것인지 알지 못한다.

어떤 사진도 지속성을 나타내진 않는다. 사진은 대상을 순간에 가두어 버린다. 과거 속에서 노래는 확장되어 나가 고, 사진은 멈춘다. 노래는 시간의 행복한 감정이며, 사진은 시간의 비극이다. 나는 종종 우리가 한평생을 노래와 사진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속에 우리의 육체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나눈 사랑도 없다. 그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그 장면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다. 사진의 고통. 그것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원하는 데서 비롯된다. 사진의 ‘필사적인‘ 의미. 우리는 구멍을 통해 시간의, 무(無)의 불변의 빛을 엿본다. 모든 사진은 형이상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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