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기원 프로이트 전집 13
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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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알기로 여기 수록된 글들은 프로이트의 말년작들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모세에 관해 쓴 네 편의 논문은 확실합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이 글을 논하여 한 강연 『프로이트와 비유럽인』을 읽은 적이 있거든요. 사이드는 제가 흠모하는 지식인 중 하나이며 ‘말년의 양식’은 그의 개념입니다. 『종교의 기원』에 수록된 프로이트의 인류학 글들은 치열한 말년의 소산입니다. 인류학과 종교 고고학적 근거가 어설픈 아마추어의 글일지 모르지만 초심자의 자유분방한 탐구는 언제나 읽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 논문집에서도 핵심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입니다. 하나의 이론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하는 학자의 욕구는 공감하지만 어린애다운 구석이 보여 슬쩍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그는 인간 모세가 이집트인이었다고 말하고 성서의 기록을 사실 그대로 읽지 않습니다. 또 근친혼에 대한 금기를 정신분석으로 해석하며 힘의 선망과 법의 성립에 대해 답을 냅니다. 훗날의 후계 라캉과 비교해보면 프로이트의 순진함은 더 돋보입니다. 프로이트를 격하시키고자 한 말은 아닙니다. 이 글들에서도 부성으로 문제를 뚫어내는 일관성은 억지스럽지 않습니다. 저도 순진하기 때문인지 그의 문제풀이가 그럴 듯 해 보이며 어느 순간 빠져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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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외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7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최병근 옮김 / 책세상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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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록된 다섯 편의 단편 모두 처음 몇 문단이 끝내줍니다. 가난을 미화하지 않으며 서정적으로 미적 찬탄과 숙연함을 이끌어내는 솜씨는 플라토노프의 천부적 재능 같습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싶은 1급 단편들입니다. 역자는 플라토노프 번역의 어려움을 강조하지만 수고로이 내 논 이 번역서 역시 1품 같습니다. 개인적으론 <프로>를 제외하곤 첫 느낌을 끝까지 이어갑니다. 글을 써보며 체득한 사실이지만 아무리 단편이라 해도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의 작품엔 공통적으로 기차가 등장하네요. 20세기 초반의 기관차는 러시아적으로 느껴집니다. 찬 대지를 가르며 달리는 증기 기관차의 이미지는 그들의 붉은 혁명 기저에 흐르는 사상의 구체화 같거든요. 끌고 미는 힘이 아니면 달리는 중에 누군가 내린 급 브레이크(발터 벤야민) 모두 혁명 러시아 휴머니즘의 역사적 형상입니다. 플라토노프의 소설은 그 형상을 지탱하는 개인들을 따뜻하게 그려내는 명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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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된 시간 - 영화 예술의 미학과 시학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지음, 김창우 옮김 / 분도출판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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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총 7편. 그 중 저는 단 한 편을 보았습니다. 망명 후의 첫 작품이자 그의 마지막 작품 <희생>을 고등학교 때 봤지요.

 

 시간은 가역적입니다. 시간을 경험하는 주체가 시간의 순열에 끼어들어 물길을 바꿔버리니 시간은 본성상 가역적이라 해도 인간의 말틀에서 틀린 것은 아닐 겁니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적어도 제가 본 그 한편은 그 나이, 첫 경험 때, 책의 제목처럼)는 시간을 봉인하는 경험이었습니다. 타성에 젖어 객기로 본 것이긴 하나 그 후유증은 오래 갔습니다. 대부분의 초심자들은 그렇게 시작하죠.

 

 이 글을 쓰며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와 영화의 관계에 있어 그 때가 급변기였던 것 같네요. 영화와 만난 두 번째 회심! 『봉인된 시간』은 내 영화의 사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창작)론이자 영화 사상론입니다. 이제부터 그의 영화를 한 편씩 챙겨볼 참인데 제가 그 모든 작품을 지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그가 강론한 예술론은 끝까지 신뢰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면에서 저는 타르코프스키의 정신적 당원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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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 창비시선 286
문인수 지음 / 창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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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류를 관통하는 고열로 기억할 시집입니다. 언덕을 오르는 허름한 노인의 앙상한 발걸음. “땅바닥에 대고” “시간을 비틀어 올리는” “치매처럼 깜깜한” 향나무를 그리는 “참 정밀”한 붓질의 시어들. 이 구별된 언어들의 영적 실재가 제 두뇌의 뉴런들 사이를 역류하고 깊이 파고듭니다. 그 전에 이 책은 순수하게 물질입니다. 이 작은 책을 손에 든 날의 제 몸은 아주 뜨거웠는데 올해 들어 처음으로 폭염 주의보가 뜬 날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우선 물질일 뿐이었고 열에 민감한 제 몸은 이 책을 하나의 열 덩어리로 기억합니다. 시는 그 다음입니다.

 

 시집 끝에 실린 평문 역시 매우 좋습니다. 외워두고 싶은 구절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으니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읽기의 긴장을 놓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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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 강의 2
박홍규 지음 / 민음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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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박홍규 교수의 다섯 권 전집 중 한 권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ousia’ 강의에서 시작해 ‘고르기아스 비존재에 관한 질의응답’ 강의로 마무리되는 순서를 갖췄습니다. 강의록에 대한 선호도는 작년부터 높아졌는데 여기 선정한 책 중 벌써 세 권이 강의록인 데서 보듯 이 선호도는 한동안 계속 될 것 같습니다.

 

 좋은 강의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학문을 대하는 강의자의 태도 역시 값진 배움입니다. 일본의 학자 사카구치 안고는 어느 글에서 원자폭탄을 두고 그것은 학문이 발견한 것이 아니라 애들 놀이와 같은 거라고 비판합니다. 학문의 역할은 핵을 통제하고 조절해 전쟁을 벌이는 게 아니라 평화를 모색하고 그것의 한도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고인의 전집을 통해 배울 수 있는 학문 함의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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