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높고 쓸쓸한 - 안도현 시집 문학동네 시집 99
안도현 / 문학동네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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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生, 무슨 다른 할 말이 지금 제게 더 남아있겠습니까

이제 연탄을 쓰는 집은 그렇지 않은 집보다 훨씬 적지요

연탄불 한 번 갈아본 적 없는, 아니 연탄이 어따 쓰는 건지

책에서나마 그림으로 알은 아이들이 이제는 대다수이지요

지독스런 가난이 지겹도록 우리 식구 곁을 떠나지 않던 시절,

퇴근길에 그날 하루를 버틸 연탄 몇 장 사들고 오시던 아버지와

매캐한 연탄내에 매워진 두 눈을 연신 비벼대시던 어머니와

다 타고남은 연탄재를 차대며 놀던 아이들 이제는 없지요

先生, 무슨 다른 할 말이 지금 제게 더 남아있겠습니까

그 시절, 부끄럽고도 그리운 기억, 저 역시 연탄재 차기 놀이를 즐기던 한 아이였음을

매캐한 연탄내 탓인지 항시 두 눈이 젖어있지 않은 적이 없으시던 어머니의 손수건이었음을

연탄 몇 장, 붕어빵 몇 개 들고 지친 몸 절 향해 환히 웃으시던 아버지의 희망이었음을

지독스런 추위가 지겹도록 우리 여섯 식구를 괴롭히던 시절,

연탄은 제 몸을 불살라 그 뜨거움으로 우리를 덥게 했다는 걸

혹한을 이겨내고 따뜻한 봄볕을 온몸으로 양껏 쬘 수 있게 해줬다는 걸

이제 연탄 보일러에서 기름 보일러로, 기름 보일러에서 도시가스 보일러로

더 이상은 지독스런 추위를, 가난을 지겹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을 안락한 집에서

한겨울에도 반소매를 입고 뜨거운 물로 거품목욕을 하는 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지요

先生, 당신이 준엄하게 꾸짖는 그 물음,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라는 그 물음 앞에서

···

"안도현 詩人은 힘이 세다, 그것은 부드러운 강함, 진작부터 나는 알고 있다

안도현 詩人은 아직 젊다, 그는 지금보다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詩人이다

안도현 詩人은 아직 계속 詩를 쓴다, 따라서 그를 향한 냉소는 아직 이르다"



2002. 10. 3. 카오스.에이.디.



note. cafe <목요 북까페>에 새긴 [책읽기와 삶읽기(10):
『외롭고 높고 쓸쓸한』(안도현 著)] 後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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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황금빛 유혹 다빈치 art 9
신성림 지음 / 다빈치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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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따, 무슨 그림이 요렇게 전신에 황금색 투성이고 거 이쁘긴 또 무쟈게 이쁘네

근데 그림에다 요렇게 황금색을 퍼부은 걸 보니 황금색 무쟈게 좋아하는 놈인 갑네

아님 요런 걸 요렇게 그린 환쟁이, 아니 그림쟁이 놈 장이 어지간히 튼튼한 모양이거나

근데 그래서 디게 궁금해졌다 안 카나 요런 걸 요렇게 그린 그림쟁이가 어떤 인간인지가

클림트란 사람이라 카네, 영어론 G·U·S·T·A·V _ K·L·I·M·T, 구·스·타·브 _ 클·림·트

저―기 유럽에 빈이라 카는 데서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까지 활동한 화가라 카네

'상징·장식·표현'이라는 아르 누보(유겐트 스틸, 우리말론 '신예술') 미학에 철저했으며

상징적이고 화려한 인물화나 초상화, 풍경화에 뛰어났다네 클림트는 이 아르 누보의 거장이며

전세계적으로 -너거가 보는 대로-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화풍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카네

그리고 요 그림의 제목은「kiss」, 클림트가 전성기를 구가한 시기에 내놓은 작품으로

에로티시즘의 표현과 클림트의 무절제한 장식성이 비할 데 없는 양식으로

잘 융화되어 나타나 있는 그림이라 카는데…, 까지 읽으면서 알았는디 아 어렵다 어려버

내는 마 그런 복잡한 거는 잘 몰랐고, 그냥 이쁘다는 거 밖에 몰랐다 아이가

그냥 첨에 딱 보자마자 와, 나도 뽀뽀 함 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아이가

그래도 그림쟁이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나니까 요 그림이 가슴에 더 잘 들어오더라 카이

근데 내는 결론적으로 말하믄 억지로, 기를 쓰고까지 알 필요는 마 없다, 고 생각한다

요 이쁜 그림을 기똥차게도 그린 클림트도 지 입으로 그랬다 안 카나

자기는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일 뿐이라고, 그래서

자기는 말이든 글이든 언어에는 재능이 없다고, 그러니 자신에 대해 뭔가 알고 싶다면

자기 그림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서 그 속에서 클림트가 누구인지,

클림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면 될 것이라고… ―크~아 옳다 옳아 맞는 말 아이가

화가는 그림으로, 카수는 노래로, 글쟁이는 이렇게 글로(!) 승부를 걸어야 되는 기라

그러니까 너거는, 간만에 사진발 자알 받은 저자가 쓴 요 책을 한 번 꼼꼼히 읽어봤으면

고 담 번엔 요 책을 한 장씩 한 장씩 잘근잘근 씹어 먹은 담에 이따가 황금색 똥을 싸쟀기라

그라고 고 황금색 똥 갖고 또 다른「kiss」를 함 그리 봐라 또 다른 클림트가 함 되 봐라 카이―

···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이 진리로 느껴질 때도 있고, 개 발싸개로 느껴질 때도 있고

그래도「kiss」같은 그림을, 클림트 같은 화가를 더 잘 알게 한 오늘 하루의 시간은 내게 참 소중했어요

이런 그림을 알고 살게 해준 발제자에게 감사, 신성림 氏에게 감사, 그리고 클림트에게도"



2002. 9. 26. 카오스.에이.디.



note. cafe <목요 북까페>에 새긴 [책읽기와 삶읽기(9):
『클림트, 황금빛 유혹』(신성림 著)] 後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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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담론
김현섭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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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고 대단한 당신의 이름은 정현철, 아니 이젠 서태지라 부르겠어

80년대 끝자락에 당시 대한민국 대표(!) 락밴드 시나위에서 베이스를 튕기던 아이로 기억했었어

머리가 길고 얼굴이 하얗던, 동안의 아이로 당신을 기억했던 사람들은 당시 나말고도 꽤 있었어

90년대 첫자락에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촌스런(!) 이름으로 TV에서 춤을 추던 당신을 잊지 않겠어

시나위 베이시스트로 당신을 기억하던 사람들은 당신에게 돌을 던졌어 변절자란 이름으로 돌을 던졌어

하지만 알았어 당신이 그전부터 참 명민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당신은 주도면밀히 준비한 전략으로 이룩한 당신의 인기(아님 권력?)를 앞세워 참 많은 것을 뒤바꾸어 놓았어

근데 당신은 남모를 슬픈 아픔으로 아파했어 3인조 댄스그룹에 머물기엔 당신이 생각하는 '빛'은 너무 멀었어

어느 날 당신은 당신에게서 떠날 순 있지만 이겨낼 순 없다는 걸 알아버렸어 비참히 찢겨버린 외로움이었어

당신은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이별을 말했어 가장 정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헤어짐을 전하곤 TV를 떠났어

몇 년이 지났지만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많았어 당신을 기다리기도 했고 당신의 음악을 기다리기도 했었어

그리곤 어느 날 혈혈단신 비둘기인 양 희망인 양 메시아라도 되는 것처럼 당신은 홀연히 돌아왔었어

은퇴선언을 할 때 눈물 흘리던 당신을 기억하던 사람들은 당신에게 돌을 던졌어 배신자란 이름으로 돌을 던졌어

하지만 알았어 당신이 머잖아 이렇게 락 음악으로 다시 돌아올 거라는 걸 나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

오랜만에 돌아온 당신은 편해 보였어 음악은 더 무거워지고 목소리도 더 거칠어졌지만 당신은 참 평안해 보였어

그것은 이제야 비로소 당신이 가고자 했던 '빛'에 당신이 가까이 가 있기 때문이란 생각에 나도 기꺼이 기뻤어

그리고 나도 당신만큼이나 오랫동안 기다린 '희망'이 당신의 귀환과 함께 현실로 이루어지리라 굳게도 믿었어

정말 그랬어 그 '희망'은 나만이 기다렸던 게 아니었어 나 말고도 나보다 더 간절했던 이들이 부지기수였어

근데 어쩐 일인가, 였어 당신은 이제 '희망'을 현실로 이루는 데엔 도통 관심이 없는 거였어

당신은 여전히 열심으로(근데 진짜?) 노랠 하고 있는데 나는 그럴수록 자꾸만 더 목이 말랐어

'희망'을 현실로 할 수 있는 사람, 지금 당신 말곤 없는데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나는 모르는 거였어

당신의 관심 밖으로 한참 비켜난 '희망'을 이제 어디로 가서 누구에게 기대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는 거였어

그러면서 나―안 알았어 '희망'을 잊고 '환상' 속에 있는 사람은 '그대'가 아닌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

···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날카로운 그 송곳니를 세운 늑대가 자그마치 세 마리!

그러나 그 앞에서 너무도 당당하게 조금의 흔들림 없이 앉아있는 당신, 대단도 하여라!

근데 가만 보니 으르릉 대는 늑대들의 목엔 굵은 쇠사슬이 묶여있지 않은가!"



2002. 9. 19. 카오스.에이.디.



note. cafe <목요 북까페>에 새긴 [목요 논단(2): 서태지로 한국 대중음악 바로보기] 後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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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조국 지음 / 책세상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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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답니다
암, 그래야지요 그래야 쓰고 말고요
헌법에도 그렇게 나와 있는 걸요
부잣집 침대 위에서 태어난 아기나
염천교 다리 밑에서 태어난 아기나
똑같이 평등하게 태어나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답니다
암, 그래야지요 그래야 쓰고 말고요
헌법에도 그렇게 나와 있는 걸요
집 없이 평생을 떠도는 도붓장수 박서방이나
대궐 같은 기와집에 사는 왕서방이나
허가 없이 무허가 판잣집을 지어서는 안 되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답니다
암, 그래야지요 그래야 쓰고 말고요
헌법에도 그렇게 나와 있는걸요

물 쓰듯 돈을 쓰고도 남아도는 재산 때문에
고민이 태산 같은 자본가 장아무개나
무노동에 무임금이라
다음날 아침이면 다섯 식구 끼니 때문에
걱정이 태산 같은 노동자 김아무개나
언제라도 아무 데라도 나라 안팎을
여행할 자유가 있으니까요

그뿐이 아니랍니다 자유대한에서는
예 예 연발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에게는
다문 입에 쌀밥이 보장되고
아니오 아니오 목을 세워 고개를 쳐든 사람에게는
벌린 입에 콩밥이 보장된답니다

참 좋은 나라지요 우리나라
자유대한 길이길이 영원히 빛나라지요


- njkim,「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답니다」

···

"국가보안법인지 개빼다군지, 준법서약젠지 개빼다군지, 보안관찰젠지 개빼다군지

나는, 나온 지 십 년도 더 지난 詩集의 쌓인 먼지를 털어 다시 뒤적거리고만 싶은데

이제 막 다시 새로 솟아오르고 있는 너 '정의의 여신상'이여 무슨 말이라도 해보시라"



2002. 9. 12. 카오스.에이.디.



note. cafe <목요 북까페>에 새긴 [책읽기와 삶읽기(8):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조국 著)] 後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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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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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이 이러합니다 이러한 사람이란 생각을 합니다

참 잔인한 사람이란 생각을 미안하지만 하고 있습니다

나는 때로 잔인한 운명 앞에 볼썽사납게 스러집니다

나는 나를 스러지게 한 운명에 발버둥을 치지만 별 소용이 없습니다

그저 잔인한 운명이 이끄는 대로 나는 스러질 뿐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나는 아직 삶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합니다

스러진 내 눈물 너머로 비치는 햇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햇살 너머로 손을 내미는 내 친구의 미소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미소 너머로 새록새록 쏟아 오르는 살아갈 이유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잔인한 당신이 정말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이런 것 아니었습니까

너무나 흔하고 흔해서 정말 필요할 땐 어디에서도 떠오르지 않았던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라는 이런 것 아니었습니까

···

"새로운 사람과의 새로운 만남은 언제나 저를 들뜨게 합니다 거기다

새로운 장소에서의 새로운 책이라니, 들뜨다 못해 심장이 터질지도 모르겠네요^^

새로운 학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각오를 새롭게 불태우시길, 모두들"



2002. 8. 29. 카오스.에이.디.



note. cafe <목요 북까페>에 새긴 [책읽기와 삶읽기(7):『살아간다는 것』(위화 著)] 後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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