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담론
김현섭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01년 1월
평점 :
품절


대단하고 대단한 당신의 이름은 정현철, 아니 이젠 서태지라 부르겠어

80년대 끝자락에 당시 대한민국 대표(!) 락밴드 시나위에서 베이스를 튕기던 아이로 기억했었어

머리가 길고 얼굴이 하얗던, 동안의 아이로 당신을 기억했던 사람들은 당시 나말고도 꽤 있었어

90년대 첫자락에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촌스런(!) 이름으로 TV에서 춤을 추던 당신을 잊지 않겠어

시나위 베이시스트로 당신을 기억하던 사람들은 당신에게 돌을 던졌어 변절자란 이름으로 돌을 던졌어

하지만 알았어 당신이 그전부터 참 명민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당신은 주도면밀히 준비한 전략으로 이룩한 당신의 인기(아님 권력?)를 앞세워 참 많은 것을 뒤바꾸어 놓았어

근데 당신은 남모를 슬픈 아픔으로 아파했어 3인조 댄스그룹에 머물기엔 당신이 생각하는 '빛'은 너무 멀었어

어느 날 당신은 당신에게서 떠날 순 있지만 이겨낼 순 없다는 걸 알아버렸어 비참히 찢겨버린 외로움이었어

당신은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이별을 말했어 가장 정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헤어짐을 전하곤 TV를 떠났어

몇 년이 지났지만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많았어 당신을 기다리기도 했고 당신의 음악을 기다리기도 했었어

그리곤 어느 날 혈혈단신 비둘기인 양 희망인 양 메시아라도 되는 것처럼 당신은 홀연히 돌아왔었어

은퇴선언을 할 때 눈물 흘리던 당신을 기억하던 사람들은 당신에게 돌을 던졌어 배신자란 이름으로 돌을 던졌어

하지만 알았어 당신이 머잖아 이렇게 락 음악으로 다시 돌아올 거라는 걸 나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

오랜만에 돌아온 당신은 편해 보였어 음악은 더 무거워지고 목소리도 더 거칠어졌지만 당신은 참 평안해 보였어

그것은 이제야 비로소 당신이 가고자 했던 '빛'에 당신이 가까이 가 있기 때문이란 생각에 나도 기꺼이 기뻤어

그리고 나도 당신만큼이나 오랫동안 기다린 '희망'이 당신의 귀환과 함께 현실로 이루어지리라 굳게도 믿었어

정말 그랬어 그 '희망'은 나만이 기다렸던 게 아니었어 나 말고도 나보다 더 간절했던 이들이 부지기수였어

근데 어쩐 일인가, 였어 당신은 이제 '희망'을 현실로 이루는 데엔 도통 관심이 없는 거였어

당신은 여전히 열심으로(근데 진짜?) 노랠 하고 있는데 나는 그럴수록 자꾸만 더 목이 말랐어

'희망'을 현실로 할 수 있는 사람, 지금 당신 말곤 없는데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나는 모르는 거였어

당신의 관심 밖으로 한참 비켜난 '희망'을 이제 어디로 가서 누구에게 기대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는 거였어

그러면서 나―안 알았어 '희망'을 잊고 '환상' 속에 있는 사람은 '그대'가 아닌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

···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날카로운 그 송곳니를 세운 늑대가 자그마치 세 마리!

그러나 그 앞에서 너무도 당당하게 조금의 흔들림 없이 앉아있는 당신, 대단도 하여라!

근데 가만 보니 으르릉 대는 늑대들의 목엔 굵은 쇠사슬이 묶여있지 않은가!"



2002. 9. 19. 카오스.에이.디.



note. cafe <목요 북까페>에 새긴 [목요 논단(2): 서태지로 한국 대중음악 바로보기] 後記



<웹습작실 "단상斷想, image, 어느 날의 나"> 구경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