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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감각에 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혐오에 있습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하여 키우는 '부당한 증오'는

비단 여름 잠자리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없이 사는 사람들의 생활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이를 두고 성급한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의 도덕성의 문제로 받아들여

그 인성(人性)을 탓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내일 온다 온다 하던 비 한줄금 내리고 나면

노염(老炎)도 더는 버티지 못할 줄 알고 있으며,

머지않아 조석의 추량(秋敭)은 우리들끼리 서로 키워왔던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거두어가고,

그 상처의 자리에서 이웃들의 '따뜻한 가슴'을 깨닫게 해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수(秋水)처럼 정갈하고 냉철한 인식을 일깨워줄 것임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

"어느 해, 신학기, 새로 받은, 다이어리, 한 귀퉁이, 점점이, 찍힌, 한마디

그 해가 어느 해였는진 나 지금은 기억할 순 없어도

당신의 그 한마디가 새로운 한 시대를 또 그렇게 살려내고 있었다오"



2002. 6. 13. 카오스.에이.디.



note. cafe <목요 북까페>에 새긴 [우리시대 고전(2):『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著)] 後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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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키웨이 2004-08-01 0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보고 싶어서 리뷰들을 흩어보다가 마음에 들어서 퍼가고 싶습니다.
리뷰를 퍼가기는 처음이네요.
책 내용을 저리 만드신 것...정말 작품입니다.
멋진 작품을 오래오래 감상하고 싶어서 퍼가옵니다.
미리 인사부터 드립니다. 꾸~~벅
 
녹색평론선집 1
김종철 엮음 / 녹색평론사 / 199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그'가 내게 묻는다

그러나 조금은 상투적인 표현의 물음이었기에 나는 침묵하기로 한다

'그'가 이번에는 조금 더 격양된 표현으로 다시 내게 묻는다

"지금부터 이십 년이나 삼십 년쯤 후에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나는 이번엔 갸웃한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하고 되묻지 못하고 나는 빈둥거리다 '그'를 몇 달만에 스쳐지나간다

…내 나이 열 아홉 살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다시 '그'를 찾아다닌다

'그'가 쓰고 엮고 펴낸 글들을 하나하나 찾아 읽으며

내가 그때 '그'를, '그'의 물음을 되묻지 못한 것에 크게 후회한다

그러면서 혼자 한다는 말이,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라니

···

"오늘 저는《녹색평론》발행인 김종철 先生을 아주 가까이에서 만나 뵈었습니다

先生은 저에게, 우리에게 편치 않은 몸을 애써 추스리며 긴 얘기를 해주셨지요

그러나 先生, 너무 늦게 나타나셨습니다, 너무 많이 늙으셨습니다"



2002. 6. 6. 카오스.에이.디.



note. cafe <목요 북까페>에 새긴 [시대와 비평(1):《녹색평론》김종철 발행인과의 대화] 後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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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책만큼 기묘한 상품도 드물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인쇄되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팔리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장정되고, 검열되고, 읽힌다

또한 게다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씌어지는 것이다

- Lichtenberg, Georg Christoph (1742~1799)

···

"언제나 찾아간다 찾아간다 하면서 이제서야 문 두드리게 되었네요

열심히, 치열하고, 야멸차게 사시는 분들 참 많이 만나뵈 기쁘구요

저도 좀 더 열심히, 좀 더 치열하고, 좀 더 야멸차게 살겠습니다."



2002. 6. 15. 카오스.에이.디.



note. cafe <목요 북까페>에 새긴 가입인사加入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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