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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배수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2009. 4. 11
'이름이라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처음의 생각이었죠. 그것은 필요에 따른 하나의 기호일 뿐이고 그 자신의 주체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 당연하죠. 이름은 운명만큼이나 부당합니다. -중략- 사람의 이름을 만드는 것은 대개의 경우 그 부모지만 불려지는 것은 당사자죠. 그래서 이름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처럼 그 사람의 인생에 침범합니다. 세포질 깊숙이 침투하는 거죠. 그리하여 곧 인격의 한 요소가되곤 합니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109
이를 달리 말하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작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이름은 인물의 인격 요소가 된다.
배수아의 {일요일 스키야기 식당}을 읽고 느낌을 쓴다면 무엇보다 '빈곤'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할 것 같지만 나는 이 독특한 소설속에 등장하는 이름부터 말하고 싶다. 이 소설의 독특함이야 여러가지지만.
우선 각 소제목으로 나뉜 꼭지들에 등장하는 이름들을 살펴보자.
소 제목 : 이름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 마(馬), 돈경숙
만두, 소양 치즈 : 박혜전, 마(馬)
모계 사회 : 돈경숙, 세원
성(聖)모녀 : 부혜린, 표현정
지식인의 초상 : 백두연, 박혜전
눈의 여왕 : 음명애, 백두연, 우균, 세원, 쿨차카(만리쉬안 홍학의 이름), 표현정, 부혜린
두 마리의 통통한 비둘기 : 말리, 막, 진주
털 모델 : 성도, 여자(털 모델)
낯선 천국으로의 여행 : 성도, 배유은, 김요환, 진주, 박혜전
황견(黃犬) : 배유은, 김요환, 성도, 진주, 황견(黃犬), 데먼(demon)
강시 : 강혜영, 강시, 말리, 진주
검은 하루 : 남자, 여자
그런데, 먹을 것 좀 가지고 있어? : 노용, 준희
나는 그냥 낙서할 뿐이다…… : 노용, 경숙, 지선
예비적 서문-슬픈 빈곤의 사회 : 지선
오직 무참히 짓밟힌 인간 : 백두연, 그
이름들이 참 특이하다.
성씨인지 이름인지도 밝혀지지 않은 '마'라는 이름, 돈을 밝히는 돈경숙, 여자를 숙주 삼아 사는 우균, 두 마리의 통통한(그것도 접시위의) 비둘기 같은 두 아이 막과 말리, 본명보다 더 본명같은 강시, 노동을 거부하고 빈곤을 선택한 노용, 그리고 김요환과 배유은이 미래에 태어날 아이에게 붙여주기 위해 지어본 데먼(데먼이라니, 악마 아닌가)과 황견(누렁이 쯤 되겠다).
거기에 등장하는 다른 이들과 전혀 연관이 없는 불륜의 두 남녀도 등장하는데 그들은 이름이 아예 없다. 여자와 남자다.
이름 없이 등장하는 또 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백두연의 삼촌이다. 이름은 없지만 그는 '비천하고 가난하게 버려진 고아', '노예', '고리대금업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될 몸이었던 사람'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는 일생동안 한국인도 뭣도 아니었다'라고 한다.
소설의 처음에 등장하는 마와 돈경숙의 하루를 보면 독특한 두 인물의 선명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그 이미지가 소설 내내 밑바닥에 깔린다.
이상한 이름들은 그 이미지에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독특한 이름의 계보를 따져서 무엇을 건졌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다.
이 장편소설의 뒷 표지에는 '삶의 실체를 포착하고 있다'면서
'아아, 이 졸렬하고 더러운 세상아!
유식한 밥버러지, 허울 좋은 지식인의 초상, 슬픈 빈곤의 사회.
불꺼인 동네, 진흙탕 골목길, 부유하는 음습한 기운, 생의 낙오자들의 비틀거리는 그림자,
"그들을 불쌍학 생각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어!"
헤어나올 수 없는 절대 빈곤의 수령, 그곳에 갇힌 인간들.
라고 본문을 인용해놓고 있다.
그러나 나는 늘 배수아를 읽는 이유도 기쁨도 다른 맥락에서 찾는다. 그녀의 옛 발표작 '철수'나 '내 그리운 빛나'를 나는 수 십번 읽었다. 그것은 어떤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문장이 나를 그렇게 당겼다.
어떤이는 배수아의 작품을 자폐적이라고 한다. 그것은 소통을 거부하고 그녀 혼자서 하고 싶은 말을 중얼거린다는 말일 것이다. 어쩌면 그 말은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일반 모두를 위해 친절하게 굴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왜 꼭 소통을 해야하나 묻고 싶다.
반짝이는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손에 들고,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할지언정 어떤가. 나는 그것이 내게 아름다운 찬탄을 자아내게 하는 것 자체로 만족할 뿐이다.
이 장편에서 첫 꼭지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특히 좋았다. 마와 돈경숙의 구질구질한 집에 내가 한 나절 앉아 있다 나온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