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의(靑衣)
비페이위 지음, 김은신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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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2 

[청의]. 이 책에는 서로 연관이 없이 독립적인 중편 <청의>, <추수이>, <서사>가 실려있다.

[청의]의 뒷 표지에는 이런 글이 크게 씌어있다.

 

어떤 탄식은 우주의 시간마저 멈추게 한다!

자신의 삶으로부터 파문당한 영혼들이 피워낸 불안의 꽃

 

이 문장이야말로 이 소설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이 글은 마치 높은 곳에 올라가 군중을 선동하는 분위기를 풍긴다.

가만가만 읊조리지 않고(결코) 목울대에 혈관 돋우며 큰 소리로 과장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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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 어느 소설가가 집 짓는 동안 생긴 일
박정석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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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9. 6. 21 

 

박정석 '하우스'는 부제 그대로 '어느 소설가가 집 짓는 동안 생긴 일'에 대한 글을 써놓은 책이다.

우연하게 박정석 작가에 대한 글을 읽고 바로 이 책을 주문했다.

박정석씨는 2004년 문학사상 공모에 당선한 소설가다.

 

살아가면서 생긴 일을 썼으니 수필인가?

나는 에세이집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뭐 일부러 읽지 않겠다 마음 먹은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된다.

그런데도 이 책은 읽고 싶었고, 읽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잘 읽었다.

 

나는 집에 대해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집을 아름답게 혹은 세련되게 꾸미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다.

그런 내 주장 배경에는 내 게으름이 있고 낮은 미적 수준에 대한 자각이 있다.

아름답거나 세련되게 꾸미려면 아무래도 부지런해야하고 감각이 있어야할 터이다.

생활하는데 편하면 된다는 아주 편리한 생각으로

내가 아무렇게나 사는 것에 대한 변명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절대로 박정석씨가 꿈꾸는 집을 이루기 위해 치룬 노고 같은 것을 치르고 싶은 생각일랑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재미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집을 짓기 위해서 알아두어야할 것도 나는 없는데.

집 짓는 스토리를 토대로 쓴 소설 작품도 아닌데.

일상을 보여주면서 대단한 깨달음을 보여주는 현학도 없는데.

 

내가 책을 고르고 읽는 기준은 어떤 것일까, 하는 물음이 들었다.

그것은 어쩌면 글을 읽으며 그 글을 쓴 사람을 만나는 재미가 아닐까.

글을 읽으며 만나게 되는 그, 그녀의 매력, 그게 바로 내가 책을 읽는 기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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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 제6회 채만식문학상, 제10회 무영문학상 수상작
전성태 지음 / 창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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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6. 2 


전성태씨가 쓴 소설들 중에서 내가 기억하는 것은 '목란 식당', '국경을 넘는 일', '퇴역 레슬러' 정도 밖에 없다. 그 작품을 읽은 것만으로 내게 남는 인상은 '참 소설을 전통적으로 쓰는 구나' 정도였다.

 

전통적으로 쓴다는 내 표현은 거칠게 말하면 사유의 형상화를 위해 적절한 아이템을 배치하고 치밀한 구성으로 서사의 완결성을 추구한다고나 할까. 어느 한 곳도 어그러짐을 허용하지 않고 잘 빚은 항아리를 추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승우, 이청준이 얼른 떠오른다.

 

전통적으로 쓴다는 것에 대해 상대적인 곳에는 탐미적인 문장으로 주제를 강요하지 않고 모호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작품을 나는 둔다. 모호하지만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열린 소설이라고 할까. 전통적인 소설들은 어쩐지 높은 곳에서 사유의 힘으로 독자위에 군림하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전성태씨가 69년생이라는 것을 처음에 나는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69년생이라. 그는 생각보다 젊었다.

 

전성태씨의 '늑대'는 읽은 지 꽤 되는 작품이다.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2006]에 실렸으니 아마도 2006년에 읽었을 것이다. 씨의 소설집이 '늑대'를 표제작으로 이번에 소설집이 출간되어 다시금 '늑대'를 읽어보았다.

자본주의가 들어오며 달라진 변화들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검은 혓바닥의 힘이라는 거다.  

말과 낙타 등이 누군가의 재산이 된다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저 유명한 '인디언 추장의 연설물'을 연상시킨다.  

빛나는 햇살과 바람과 나무와 땅이 어떻게 누군가의 소유가 될 수 있는가 묻는 추장과 '초원에서 별들에게 길을 물었던 전통은 찾아볼 수 없'다며 '내 생애 좋은 일은 다 끝났다고 말하는 촌장은 서로 겹쳐보인다.  

촌장은 술에 취하면 초원으로 돌아가자고 주정을 하지만 솔롱고스 사냥꾼의 욕망에 대한 정직함에 매혹되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그것은 자신의 영혼이 서서히 망가지는 것이다.

촌장 하산 노인은 더 이상 유목민으로 떠돌지 않고 게르를 짓고 정착하여 손님들을 받는다.

 

두번째 화자인 사원의 승려는 그믐밤의 금기에 대해서 말한다.  

그믐에 죽임을 당한 영혼은 어둠 속을 헤매게 된다.이는 살생에 대한 두려움의 발로요 숭고한 살생을 위한 방편이라는 거다.  

살생을 금하는 불법이지만 초원에서 생계를 위한 살생을 금할 길이 없다. 그래서 산문에서도 최소한의 살생은 허용되는데 그래서 승려는 이렇게 말한다. '불법은 승과 속의 타협이라고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살생을 하는 초원의 다른 동물들과 달리 늑대는 하룻 밤에도 수백 마리 양들의 숨통을 끊어놓는다. 늑대는 '죄업의 끝을 몸으로 설하도록 만들어진 축생'이다. 가련하다. 

 

허기를 채우는 것을 넘어 끝없이 살생을 하는 늑대는 끝을 향해 치닫는 자본주의의 열망과 같다. 

 

세번째 화자는 자주의를 대표하는 인물 솔롱고스.  

그는 '국경이 사라지고 그저 세상이 단일한 자본의 권력으로 묶인다면' 신이 날 것이라고 한다. 그는 사회가 안정되어 갈 수록 '사람을 대신해 시스템이 들어'서서 재미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가 생포하고 싶어하는 것은 수컷 검은 늑대다.  

그는 '나는 늑대 앞에 숙명적인 라이벌처럼 마주서기를 원합니다.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이니 죄의식이니 연민이니 하는 것들이 전혀 없는 절대공간에서 독대하기를 원합니다.'라고 한다. 

 

네번째 화자는 늑대를 죽일 수 있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늑대에게 양을 몰아다주는 일을 하는 어떤 남자다.  

그는 그믐밤의 금기를 두려워하지만 그도 역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을 위해 늑대에게 양을 바치며 희생된 양의 숫자를 부풀린다. 그는 예기치 않게 검은 늑대를 죽인다.

 

다섯번째 화자는 서커스 단원으로 줄타는 곡예사였던 벙어리 허와.  

허와는 사고를 당해 더 이상 줄을 탈 수 없게 되자 사장님(솔롱고스 사냥꾼)의 소유가 되었다.  

허와의 몸은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장님에게도, 사춘기 때는 신랑이 되었으면 하고 꿈꾸었던 출몽에게도 열리지 않는다.  

허와는 촌장의 딸인 치무게가 담는 보츠를 유심히 보며 치무게의 마음을 가늠한다.  식욕은 본능적이고 식욕을 채울 수 있게 하는 음식은 본능을 보여준다. 보츠를 정성스럽게 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정성스럽게 빚은 보츠를 슬며시 주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그것을 주고 받는 말 한마디 없이도 알아챌 수 있는 힘, 그것은 사랑이다.  

동성인 허와와 치무게의 사랑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단락이다.

 

마지막은 모든 화자가 한꺼번에 다 나온다.  

먼저 여섯번째 화자, 늑대. 늑대는 자신을 열망하는 솔롱고스 사냥꾼을 쫓으며 그의 숨통을 끊어놓고 싶어한다. 늑대도 그를 열망하는 것이다. 늑대는 죽어가며 '나도 가련하지만 저들도 가련합니다'라고 한다. 

바로 이어서 잠못드는 치무게가 나와 역시 잠들지 못하고 자신의 게르를 서성이는 허와를 느끼며 그녀에게 가기 위해 게르를 나선다.

그리고 이어지는 화자는 허와. 허와는 치무게와 함께 안타까운 몸부림으로 눈 위를 뒹군다.

허와의 뒤를 이어 솔롱고스 사냥꾼의 발언이 나온다. 그는 허와의 침상이 비고 성애의 신음이 골짜기에 가득 찬 것 같아 눈위에서 알몸으로 뒹구는 자들을 향해 총을 쏜다.

마지막 단락은 화자들의 발언도 아니고 그냥 제 삼자의 발언이다.

 

솔롱고스 사냥꾼이 쫓는 검은 늑대는 바로 끝없이 허기를 느끼는, 자본주의에 함몰된 자들의 열망이다.  

잉여물 독점이라는 자본주의의 특성은 필연적으로 퇴폐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늑대는 바로 사냥꾼 자신이다.  

영혼이 망가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욕망에 매혹되며 이는 끝없이 허기를 느끼고 살생하는 늑대의 가련한 운명과 같다. 자본주의의에 함몰되어가며 영혼이 망가지는 것을 알아도 어쩔 수 없이 달려간다. 

 

마지막 부분에 화자들이 한꺼번에 등장할 때 그들은 공통적으로 '때가 왔습니다다', '때가 온걸까요', '이제 때가 왔나 봅니다', '때가 오고야 말았지요', '조용히 때를 기다렸습니다'라고 한다. 

 '때'는 무엇일까? 때는 가장 열망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때가 아닐까. 열망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때는 그러나 아이러니칼하게도 파멸이다.

 

그믐밤의 금기를 두려워하던 양치기는 늑대에게 양을 내주어 피를 보게 하고 결국은 검은 늑대를 쏘아버렸다. 검은 늑대를 쫓던 사냥꾼은 자신이 사랑하던 허와를 쏘아버린다.  

자본주의의 상징적인 인물인 솔롱고스 사냥꾼은 오히려 사회주의 체계가 남긴 유산이자 육체의 한계가 피워낸 꽃이며 자유에의 욕망을 상품으로 파는 사업이라고 하며 서커스를 좋아한다. 그리고 서커스 단원이었던 허와를 사랑한다.  

자신에게 몸을 열지 않는 허와에 대한 사랑은 결국 우리가 그토록 열망하며 치달아도 이룰 수 없는 운명, 바로 인생 아닐까. 그런 인생이니 가련하고 가련한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것, 가장 열망하는 것이 완성되는 '때'는 결코 행복하지 않고 파멸이지만 그래도 열망하는 것을 향해 질주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의 가련함!

 




  

'늑대'는 화자가 여럿이다. 각기 다른 화자가 가기 다른 입장에서 다른 사유를 보여주는데 아쉽게 화자들이 한 목소리였다. 화자들의 어투는 모두 같았다. 구분이 어렵고 심지어는 가끔 작가가 직접 튀어나와 얘기하는 것 같았다.

 

'늑대'를 읽고 나서 나는 이 소설이 우리에게 던지는 생각꾸러미의 제목을 몇 가지 추려보았다. 그것은 '자본주의/ 삶과 죽음/ 자연 대한 태도/ 동성애등 금기와 위반 /욕망' 정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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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5. 19 

 

들녘 출판사에서 2009년 1월에 출간된 스와 데쓰시의 장편소설 <안드로메다 남자>의 표지다.

 찬찬히 뜯어보면 볼수록 궁금증이 일어난다.
 



 선명한 초록색 바탕에 그려진 그림.

얼핏 보면 여자가 무릎을 구부린 한쪽 다리를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림 속에는 많은 얼굴이 있다.

사람의 얼굴이라고 할 수는 없는, 그러나 눈과 입을 가진 얼굴들도 있다.

마치 노래하듯, 아니면 중얼거리듯 하얀색으로 연기처럼 풀려나가는 글자들도 재미있다.

그 글자들이 무슨 글자들인지 읽기 힘들지만 자꾸만 읽고 싶어지고 해독하고 싶어져서 밝은 불빛 아래 가지고 가서 눈알이 뱅뱅 돌도록 들여다보았지만 스와 데쓰시라는 이름이 들어간것을 짐작할 뿐 잘 모르겠다, 손 들었다. 
 

 



책의 앞 날개. 

 



표지 일러스트에 대한 설명.

일본어를 모르는 나로선 일러스트의 원제가 뭔지 너무 궁금하다.

마지막에 보이는 '유영'만으로 짐작할 뿐.

일러스트 작가 이름을 검색해았지만 없었도다.

 

이 책은 일본에서 출판된 원본의 표지와도 같은 걸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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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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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4. 29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를 읽은 김에 그의 <공중 그네>까지 읽어버렸다.  

강박증을 가진 사람들이 정신과 의사 이라부를 만나 치료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책 표지에 써둔 것처럼 '요절복통'까지는 아니고 좀 웃겼다.  천진난만하고 호기심에 가득찬 이라부는 솔직하고 시원스럽다.

 

도대체 진지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처럼 이 소설도 가볍고 가볍다. 오쿠다 히데오의 글쓰기가 지향하는 것이 바로 그 점인 것 같다. 진지하고 무거운 것, 저리가라. 그러나 그냥 가벼운 입담으로 볼 수만은 없다.  재미난 아이템과 입체감있는 캐릭터들이 어우러진 이 가벼운 이 소설을 읽고 났을 때 훗맛은 결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공중그네 1등 곡예사 야마시타 고헤이는 공중에서 자신을 잡아 띄워줄 캐처 우치다 때문에 공중그네 곡예를 성공하지 못하고 자꾸 떨어진다. 실수가 한 두번으로 끝나지 않고 점점 심해지자 고헤이는 우치다의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고의적인 음모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러나 모든 단원든, 아내까지도 고헤이의 말을 믿지 않자 고헤이는 곡예 장면을 촬영하여 그 증거를 확보하려는 시도를 한다. 마침내 자신의 곡예 장면을 영상으로 확인했을때 곡예 실패의 원인은 우치다가 아니라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작품에는 뾰족한 것만 보면 공포를 느끼는 야쿠자 세이지의 이야기인 '고슴도치', 상대편 캐쳐 때문에 곡예를 실패한다고 여겼던 고헤이의 이야기 '공중그네', 장인의 가발을 벗기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발작을 일으킬 지경에 이른 다쓰로의 이야기 '장인의 가발',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하게 된 '입스'에 걸린 투수 신이치의 이야기 '3루수', 8년째 글을 써오던 작가 아이코가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여루작가'까지 모두 5편의 아야기로 구성되어있다.  

다섯편의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서로 전혀 연관이 없으며 단지 이 다섯편에 등장하는 강박증 환자들을 모두 의사 이라부의 천진난만하고 어이없기까지한 치료를 받는 과정이 실려있다.

 

오쿠다 히데오는 진지하고 무거운 서술로 독자를 설득하려하지 않는다. 그냥 보여주기만 한다. 어떤 잔소리도 하지 않고 단지 장면을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다. 가볍고 가벼운 글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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