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시마 유코 소설집
쓰시마 유코 지음, 유숙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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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 유코의 다른 소설들을 보지 않아서 뭐라 단정짓긴 그렇지만, 이젠 그녀가 쓴 다른 작품도 읽으면 그냥 알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처음에 사인칭이라는 것이 뭘까, 궁금했고 다자이의 딸이라는데 그는 또 어떤가,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사인칭을 내 나름대로 이해하고 그의 작품을 읽자면, 나라는 퍼소나가 하는 노래라고 말할 수 있겠다. 변사가 되어 내 일을 이야기한다고 할까.

나는 그의 소설의 특이점은 사인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인칭이라는 말이 생소하고 새로운 개념인 것 같지만 나는 그것보다 다른 것들이 인상적이었다.  

읽으면서 김채원의 [겨울의 환]이 떠올랐다. 아주 많이.

쓰시마 유코의 소설은 상징, 메타포가 없는 시다. 상징, 메타포가 없는 것을 어찌 시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래도 나는 시라고 우긴다. 더우기 운율도 빠진.  그렇다면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다 빠졌다는 말인데 왜 나는 그렇게 우기는 걸까? 

그의 작품은 스토리에 기대지 않는다. 스토리가 있기는 하지만 어떤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거 어떤 갈등으로 폭발하고 어떻게 결말이 되는가 하는 것은 별로 중요치 않기 때문이다. 그가 나라는 또 하나의 나가 되어 노래하듯이 아주 심심하게 읊는 것들은 시를 읽을 때의 느낌을 준다.  

김채원의 [겨울의 환]이 화려한 무대의상을 입고 무대에서 부르는 노래라면 쓰시마 유코의 [나]는 소박한 평상복을 입고 혼자 문간에 기대어서 흥얼거리는 노래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맑고 고운 슬픔. 그의 작품 전체에서 나는 그걸 읽었다. 거의 모든 작품에는 죽은자, 혹은 떠나간 자에 대한 그리움, 회한, 쓸쓸함, 외로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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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이청준 외 지음 / 현대문학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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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서 과거 이모는 어떤 기간동안 어떤 곳을 다녀왔으며 그 곳은 고향이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 고향은 바로 인간 기원의 골짜기였다. 인간 기원의 골짜기가 바로 시원이며 그 곳은 문명을 이룬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이전의 곳이다. 이모가 멀리 바라보고 지향하는 곳이 바로 시원인 것이다.  

그러나 이모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곳은 악의 구렁텅이다. 이 곳에는 조카 사라도 있고 고양이, 벌레들도 함께 있는 곳이다. 이모는 이 곳에서 먼 시원을 끝없이 바라보는 존재, 시인이다. 그곳을 늘 바라보고(望遠) 희망하지만(望願) 그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亡願)을 안다. 그래서 이모는 절망하고 외롭다. '망원'은 멀리 바라본다라는 뜻과 희망이 멀다라는 중첩의 의미를 갖는다. 멀리 바라보며 희망하지만 결코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라는 것을 아는 또 한사람은 아인슈타인이다. 외롭게 시원을 바라보는 이모를 화자는 바라본다.  

이처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이전의 프리 사피엔스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하게 하는 또 한 편의 소설 [몽고 반점]이 있다.  

[몽고 반점]은 처제와 형부가 섹스를 하는 과격하고 파격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그들의 섹스는 인간의 섹스라기 보다는 식물의 수분(수술과 암술의)이다. 지구에 맨 처음 생겨난 것은 인간이 아니다. 식물이다. 식물의 번성을 지나 인간은 생겨났다. 식물끼리의 교배를 통해 종을 번식하다가 육식하는 동물들의 교배(섹스)로 종은 번식한다. 꽃가루 수분을 통해 종을 번식시키던 최초의 시대를 작가는 기원한다. 왜? 지금의 시대는 약육강식의 시대이고 많은 제도(결혼, 가족, 부부, 윤리 등)에 의해 인간의 영혼이 짓눌린 시대이기 때문이다. 영혼을 짓누르는 억압과 폭력은 육식을 강요하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그냥 먹어오던 대로 고기를 먹기를 강요하는 것은 이제 까지 지녀왔던 관습, 도덕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 강요를 처제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영혼이 짓눌린 것은 한 인간 개인의 성향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문명에서 오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날때 엉덩이에 있으나 자라면서 점점 희미해지고 없어지는 몽고 반점이야말로 문명 이전의 인간을 표상하는 것이다. 몽고 반점이 있는 처제는 인간의 시원이 지워지지 않고 있으며 작가는 그 인간 이전의 시원을 희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종석도 한강처럼 시간을 소급해가면서 그 시원을 바라보고 있다. 작가는 화자가 바라보는 이모를 통해 이모가 희구하는 것을 제시하고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문명의 시간을 반성하길 바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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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좀 들어봐
줄리안 반즈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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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장편 [내 말 좀 들어봐]는 주요 등장 인물 세 사람이 번갈아가며 누군가에게 자기 속을 털어 놓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편지글이 아닌 상대 바로 앞에서 생각나는 대로 주절거리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가까울 것이다.  

발랄하고 익살맞은 문체를 보며 이 작품이 쓰여질 때 작가의 나이가 몇이었나 계산을 해보았다. 줄리언 반스는 1945년생이고 이 작품은 1991년에 발표되었으니 우리 나이로 대략 현재의 내 나이쯤이 되겠다. 그렇구나. 그런데 참 재기발랄하다.  

[내 말 좀 들어봐]의 인물들, 두 남자와 한 여자, 짐작하는 대로 삼각관계다. 여자는 명화를 복원하는 일을 한다. 일본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를 보았을 때 나는 그 직업을 절묘하게 배치한 작가에게 감탄한 적이 있다. 옛 사랑을 찾는 과정이 옛 그림을 복원하는 과정으로 겹쳐졌기 때문이다.  

[내 말 좀 들어봐]에서는 옛 그림을 복원한다는 것이 옛 사랑을 찾는 것만큼 그리 단순하지 않다. 절친한 친구 스튜어트의 아내 질리언을 사랑하는 올리버는 질리언에게 묻는다. 잘못 덧칠된 부분을 지워내다보면 원작자가 붓질을 멈추고 보았던 것을 마침내 보게 될 텐데 그 때가 언제인지. 질리언은 단호하게 그런 시점은 없다고 대답한다. 

"그래요.-중략- 하지만 언제 멈출 것인지는 과학적 결정이라기 보다는 예술적 결정이죠. 그건 느낌의 문제거든요. 당신이 말하는 게 그거라면, 드러나길 기다리며 밑에 숨어 있는 진짜 그림 같은 건 없어요."  

올리버는 질리언과 자신의 사랑은 덧칠된 오물을 벗겨내어 찾아내야할 원화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질리언의 말을 듣고 놀란다.  


아. 그렇구나. 놀랍지 않은가? 오. 눈부시게 빛나는 상대성 이론이여! 드러나길 기다리며 밑에 숨어있는 <진짜>그림 같은 것은 없다.

이 작품은 그냥 삼각관계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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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틈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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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틈새]를 읽으면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 작품이 언제 쓰여졌는지 살펴보았다. 이 작품은 1996년 상상문학상 수상작이었다. 그녀의 단편과는 문장이 좀 달랐다. 장편이라서, 오래전-벌써 십년이 넘었다- 작품이라서 그런가보다 여겼다.
 
[푸르른 틈새]는 혹독한 통과의례를 거치는 성장소설의 형식을 두루 갖추고 있다. 재미있게 읽었다. 그 재미는 내가 깊은 사유에 동참하여 내면을 성찰하는 데서도 왔을 것이고 작품 배경이 되고 있는 스물 무렵 시절에 대한 향수에서도 왔을 것이다.
 
나는 마치 세련되고 이쁜 친구를 만나 눈치채지 않게 친구의 헤어스타일과 옷과 장신구, 그리고 예쁘게 웃는 표정까지 잘 눈여겨 보는 심정으로 [푸르른 틈새]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그냥 독자의 입장에서 읽는 눈 뒤편에 감춘 응큼한 또 하나의 내 시선이었을 것이다. 그 시선으로 거칠게 걸러낸 것들은 맥락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으로 머릿속에 가슴 속에 새겨졌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혹은 읽고 나서 마음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몇 가지의 신화나 동화를 차용해서 작품과 병치하고 있구나.
오, 이런 책들을 읽어봐야겠구나. 읽지 않았으면서 읽은 것처럼 오해하고 있는 책들, [아라비안 나이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느럼치레기', '안차고 되바라진 년', '거령맞다', '닷곱 참례 서홉 참례' 같은 낯선 단어들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쓰여지고 있구나.
'기생충처럼 어여쁘게 빌붙어 살았다' 같은 문장이라니. '기생충'과 '어여쁘다'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를 조합하여 이토록 천연덕스럽고 기가 막히게 표현할 수 있다니.
......
 
 고통스러운 이십대  한 시절을 '젖은 방'으로 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마감하는 이야기는 구조부터 아주 오래전에 읽은 김형경의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를 떠올리게 했다. 대학을 입학하고 '공부'(의식화?)를 하고 농활을 하고 시위를 하며 그 와중에 사랑으로 기쁘고 아픈 스물살 무렵 인물들의 이야기라는 큰 틀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면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를 도대체 언제 읽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이 두 작품에 등장하는 몇 가지 삽화는 서로 비슷하다.
 
신입생 시절에 허름한 주점에서 모여있을 때 예쁜 여자 친구가 화장실을 다녀와서 옆에 앉을 때 '나'는 그녀에게서 향기를 맡는다. 그 향기는 '예쁜 여자'를 대변하며 '내'가 지향하고자 하는 정 반대를 상정하고 있다. 이 삽화는 다시 생각을 해봐도 [새들은...]에서 보았던 낯익은 장면이었다.
 
또 있다.
사랑에 빠져드는 무렵을 [푸르른...]은 이런 문장으로 표현했다.
나는 희디흰 광목치마를 펄럭이며 그를 향해 뛰어갔고 그는 주체할 수 없이 무거운 열정을 짊어지고 나를 향해 달려왔다.
물론 이 문장과는 다르겠지만 [새들은...]에 분명 이런 이미지를 갖는 문장이 있었다. 깃발을 향해 달렸다는 것이었는지 치마폭을 펄럭이며 달려갔다는 것이었는지  애석하게 정확한 기억을 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이런 장면도 있다. '내' 애인이었던 그에게 헤어짐을 먼저 선언하고 스스로 죄의식을 한 동안 갖지만 사실은 그가 먼저 나를 배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더우기 그와 결혼하게 될 여자는 내가 내심 동경하면서 그런 마음을 부정했던 예쁜 여자 친구였다는 설정. 이 설정은 [새들은...]에서도 똑 같다. 이 여자 친구는 재래식 화장실을 못견뎌했고 농활도 함께 가지 못한다. 이 설정도 같다.
따지고 들자니 자꾸 이것 저것까지 기웃거리나 보다. 이런 것도 같은 설정 아닌가 우기고 싶으니. 뭐냐하면 그것은 [푸르른...]의 '젖은방'과 [새들은...]의 '비스듬한 벽화'라는 배경 설정이다.
 
이런 발언에 책임을 지려면 다시 [새들은...]을 읽어야 옳겠지만 나는 뻔뻔하게도 그런 과정은 생략하고 말았다. 누군가 대신 그 일을 해주면 좋겠다는 기대만 할 뿐이다. 그 당시 [새들은...]을 읽고 나서 나는 김형경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읽었다. 그 후론 김형경의 작품을 읽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그녀의 작품을 배척한 것은 아니었지만 암튼 그랬다.
 
나는 권여선의 [분홍 리본의 시절]과 [처녀 치마]도 읽을 예정이다. 나는 그녀를 만나는 게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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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로 간 코미디언 - 2007 제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김연수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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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달로 간 코미디언>을 읽고 나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그냥 휙휙 지나치며 읽는 문장들 속에 있던 사소한 얘기, 사소한 것들이 모두 의미가 있는 것들이었다. 화자가 애인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농담처럼 주고 받았던 권투선수에 대한 얘기도 별 생각없이 휙 읽었지만 다 읽고 났을 때는 결코 그게 그냥 농담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화자는 권투선수에 대한 얘기를 한 자리에서 만난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그들의 사랑은 급속도로 진전을 보이지만 9.11사태가 난 후 그 사랑은 종말을 고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는 9.11사태를 보면서 미국으로 사라진 아버지를 찾겠다는 결심을 굳혔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시력을 거의 상실하고 있었다. 이 작품에서 상당 부분이 맹인에 대한 얘기다. 보인다는 것과 보이지 않는 다는 것.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은 시각적 세계에서 죽는 다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시각이 사라진 세계에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화자가 그녀에게 자꾸 호소하는 고통은 맹인의 고통과 상통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진 세계에서는 소통할 수 없으며 그것은 바로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왜 바람이 부는 거지? 이해가 안 돼. 그래서 바람이 불 때마다 고통스러워. 손뼉을 치잖아. 짝짝짝. 그러면 소리가 나잖아. 왜 소리가 나는 거지? 이런 소리 자체가 고통이었어. 세상 모든게 고통이었어.(28쪽)  

 

그녀의 아버지는 토끼의 간을 구하기 위해 달로 간 거북이를 저질 슬랩스틱으로 연기했다. 여기저기를 부딪고 넘어지며 "웃을 일이 아니에요" 말하며 웃음을 유도하던 코미디언이었다. '달로 간 아버지'를 찾기 위해 미국으로 간 그녀가 보내온 녹음을 들으면서 마침내 화자도 시력의 세계가 아닌 마음의 세계에서 그녀가 보았을 달을 보게 된다. 그는 그녀와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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