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틈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푸르른 틈새]를 읽으면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 작품이 언제 쓰여졌는지 살펴보았다. 이 작품은 1996년 상상문학상 수상작이었다. 그녀의 단편과는 문장이 좀 달랐다. 장편이라서, 오래전-벌써 십년이 넘었다- 작품이라서 그런가보다 여겼다.
 
[푸르른 틈새]는 혹독한 통과의례를 거치는 성장소설의 형식을 두루 갖추고 있다. 재미있게 읽었다. 그 재미는 내가 깊은 사유에 동참하여 내면을 성찰하는 데서도 왔을 것이고 작품 배경이 되고 있는 스물 무렵 시절에 대한 향수에서도 왔을 것이다.
 
나는 마치 세련되고 이쁜 친구를 만나 눈치채지 않게 친구의 헤어스타일과 옷과 장신구, 그리고 예쁘게 웃는 표정까지 잘 눈여겨 보는 심정으로 [푸르른 틈새]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그냥 독자의 입장에서 읽는 눈 뒤편에 감춘 응큼한 또 하나의 내 시선이었을 것이다. 그 시선으로 거칠게 걸러낸 것들은 맥락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으로 머릿속에 가슴 속에 새겨졌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혹은 읽고 나서 마음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몇 가지의 신화나 동화를 차용해서 작품과 병치하고 있구나.
오, 이런 책들을 읽어봐야겠구나. 읽지 않았으면서 읽은 것처럼 오해하고 있는 책들, [아라비안 나이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느럼치레기', '안차고 되바라진 년', '거령맞다', '닷곱 참례 서홉 참례' 같은 낯선 단어들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쓰여지고 있구나.
'기생충처럼 어여쁘게 빌붙어 살았다' 같은 문장이라니. '기생충'과 '어여쁘다'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를 조합하여 이토록 천연덕스럽고 기가 막히게 표현할 수 있다니.
......
 
 고통스러운 이십대  한 시절을 '젖은 방'으로 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마감하는 이야기는 구조부터 아주 오래전에 읽은 김형경의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를 떠올리게 했다. 대학을 입학하고 '공부'(의식화?)를 하고 농활을 하고 시위를 하며 그 와중에 사랑으로 기쁘고 아픈 스물살 무렵 인물들의 이야기라는 큰 틀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면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를 도대체 언제 읽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이 두 작품에 등장하는 몇 가지 삽화는 서로 비슷하다.
 
신입생 시절에 허름한 주점에서 모여있을 때 예쁜 여자 친구가 화장실을 다녀와서 옆에 앉을 때 '나'는 그녀에게서 향기를 맡는다. 그 향기는 '예쁜 여자'를 대변하며 '내'가 지향하고자 하는 정 반대를 상정하고 있다. 이 삽화는 다시 생각을 해봐도 [새들은...]에서 보았던 낯익은 장면이었다.
 
또 있다.
사랑에 빠져드는 무렵을 [푸르른...]은 이런 문장으로 표현했다.
나는 희디흰 광목치마를 펄럭이며 그를 향해 뛰어갔고 그는 주체할 수 없이 무거운 열정을 짊어지고 나를 향해 달려왔다.
물론 이 문장과는 다르겠지만 [새들은...]에 분명 이런 이미지를 갖는 문장이 있었다. 깃발을 향해 달렸다는 것이었는지 치마폭을 펄럭이며 달려갔다는 것이었는지  애석하게 정확한 기억을 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이런 장면도 있다. '내' 애인이었던 그에게 헤어짐을 먼저 선언하고 스스로 죄의식을 한 동안 갖지만 사실은 그가 먼저 나를 배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더우기 그와 결혼하게 될 여자는 내가 내심 동경하면서 그런 마음을 부정했던 예쁜 여자 친구였다는 설정. 이 설정은 [새들은...]에서도 똑 같다. 이 여자 친구는 재래식 화장실을 못견뎌했고 농활도 함께 가지 못한다. 이 설정도 같다.
따지고 들자니 자꾸 이것 저것까지 기웃거리나 보다. 이런 것도 같은 설정 아닌가 우기고 싶으니. 뭐냐하면 그것은 [푸르른...]의 '젖은방'과 [새들은...]의 '비스듬한 벽화'라는 배경 설정이다.
 
이런 발언에 책임을 지려면 다시 [새들은...]을 읽어야 옳겠지만 나는 뻔뻔하게도 그런 과정은 생략하고 말았다. 누군가 대신 그 일을 해주면 좋겠다는 기대만 할 뿐이다. 그 당시 [새들은...]을 읽고 나서 나는 김형경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읽었다. 그 후론 김형경의 작품을 읽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그녀의 작품을 배척한 것은 아니었지만 암튼 그랬다.
 
나는 권여선의 [분홍 리본의 시절]과 [처녀 치마]도 읽을 예정이다. 나는 그녀를 만나는 게 기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