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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좀 들어봐
줄리안 반즈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줄리언 반스의 장편 [내 말 좀 들어봐]는 주요 등장 인물 세 사람이 번갈아가며 누군가에게 자기 속을 털어 놓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편지글이 아닌 상대 바로 앞에서 생각나는 대로 주절거리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가까울 것이다.
발랄하고 익살맞은 문체를 보며 이 작품이 쓰여질 때 작가의 나이가 몇이었나 계산을 해보았다. 줄리언 반스는 1945년생이고 이 작품은 1991년에 발표되었으니 우리 나이로 대략 현재의 내 나이쯤이 되겠다. 그렇구나. 그런데 참 재기발랄하다.
[내 말 좀 들어봐]의 인물들, 두 남자와 한 여자, 짐작하는 대로 삼각관계다. 여자는 명화를 복원하는 일을 한다. 일본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를 보았을 때 나는 그 직업을 절묘하게 배치한 작가에게 감탄한 적이 있다. 옛 사랑을 찾는 과정이 옛 그림을 복원하는 과정으로 겹쳐졌기 때문이다.
[내 말 좀 들어봐]에서는 옛 그림을 복원한다는 것이 옛 사랑을 찾는 것만큼 그리 단순하지 않다. 절친한 친구 스튜어트의 아내 질리언을 사랑하는 올리버는 질리언에게 묻는다. 잘못 덧칠된 부분을 지워내다보면 원작자가 붓질을 멈추고 보았던 것을 마침내 보게 될 텐데 그 때가 언제인지. 질리언은 단호하게 그런 시점은 없다고 대답한다.
"그래요.-중략- 하지만 언제 멈출 것인지는 과학적 결정이라기 보다는 예술적 결정이죠. 그건 느낌의 문제거든요. 당신이 말하는 게 그거라면, 드러나길 기다리며 밑에 숨어 있는 진짜 그림 같은 건 없어요."
올리버는 질리언과 자신의 사랑은 덧칠된 오물을 벗겨내어 찾아내야할 원화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질리언의 말을 듣고 놀란다.
아. 그렇구나. 놀랍지 않은가? 오. 눈부시게 빛나는 상대성 이론이여! 드러나길 기다리며 밑에 숨어있는 <진짜>그림 같은 것은 없다.
이 작품은 그냥 삼각관계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