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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김인숙 외 지음 / 현대문학 / 2000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에서 배수아의 '다큐채널, 수요일, 자정'만을 살펴보고 싶다.
이 작품을 읽는데 자꾸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들이 떠올랐다. 옛일을 회상하면서 작품이 시작하는 것부터 비슷하다. 파트릭의 많은 작품들도 몇 년전, 혹은 몇 십년 전의 일을 회상하면서 전개된다. 그 회상은 이십대 초기의 한 시점을 중심으로 펼쳐지곤 한다. 그 시절의 화자를 포함한 등장 인물들은 앞날이 막막한 날들을 보내며 방황하는 이들이다. 그들의 혼란스러운 내면은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는 회상 방식에 의해 그려지고 있어서 더욱 몽환적이고 때로는 환상적으로 나타난다.
파트릭의 인물들은 이름을 알 수 없다. 화자는 자신의 이름을 아예 가짜로 지어서 쓰고 있고 다른 이들의 이름은 흐릿한 기억으로 긴가민가하는 이름 들이다. 배수아의 이 작품에서도 그들의 이름은 가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이들에게 정확한 자신의 이름들을 부여하지 않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장치다.
파트릭의 작품들에서 화자(남자)는 어떤 남여 한 쌍과 우연히 만나며 그들과 어울리게 된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한 쌍 중의 여자와 가까운 사이가 된다. ‘다큐 채널...’도 화자(여자)는 자신의 남자 친구와 가까운 남자(시로)와 어울리게 되고 함께 여행을 하며 결국 시로의 옛 여자친구까지 합류하여 함께 한다. 파트릭의 작품들에 나오는 인물들의 애정(사랑? 섹스?)은 무덤덤하고 심드렁한 어조로 그려진다. 인물들의 내면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늘어놓지 않는다. ‘다큐 채널...’도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 있다면 파트릭의 작품들과는 달리 질투가 있다는 것이다. 파트릭의 작품들에서는 묘하게 어긋나는 관계에서 오는 질투나 심리적인 갈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파트릭의 작품도 이 작품도 이성에 대한 사랑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사랑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심드렁하게 드러나는 또 다른 얘깃거리가 있다. 그것은 범죄. 강도짓을 하거나 절도를 하거나 심지어 살인조차 마치 껌 씹은 얘기하듯이 말한다. 파트릭도 배수아도. 사랑도 범죄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등장인물들은 내일을 설계하는 인물들이 아니다. 고정적이고 확실은 직업을 가진 이가 별로 없고 그냥 하루하루를 막연한 불안감 속에서 흘려보내는 이들이다. 파트릭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도박과 당구는 인물을 나타내는 중요 아이콘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니, 독자는 무엇에 포인트를 두고 읽어야할까.
파트릭의 작품과 별개로 배수아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드는 의문 한가지. 배수아는 작품 속에 의도적으로 외국어를 쓰는 것일까? 이 작품에서도 ‘갬블러’, ‘페이저’가 나온다. 그냥 도박자라고 하면 이미지가 맞지 않아서 굳이 갬블러라고 한 것인지? 영화 ‘갬블러’의 이미지에 기대려고 했는지? 또, 페이저는 뭐람. 난 페이저가 뭐지 몰라서 찾느라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녔는데 결론은 그냥 ‘삐삐’를 말한다고 혼자 결정 보았다. 이 작품이 2001년엔가(정확치 않음) ‘올해의 우수 소설’로 지정되었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그랬으니 씌여진 때가 그 즈음이라고 짐작을 해본다. 그때라면 휴대폰이 나오지 않았을까? 왜 휴대폰이 아니고 페이저일까? 외국어 사용은 이 작품만이 아니라 자주 보인다. 우선 기억나는 것만 해도 가정부, 고객, 비서 등을 그대로 외국어로 쓴다. 그냥 세제라고 하면 될 것을 ‘퍼실’이라는 흔치도 않은 브랜드명을 그대로 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것들을 획득하고 싶은 건지, 곰곰 생각해보곤 했다. 그래서 배수아의 소설들을 무국적 소설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언젠가-십년도 더 오래 전인 것 같다- 배수아의 소설을 한줄 한줄 베껴 써본 일이 있다. 제목도 잊었는데 ‘내 그리운 빛나’ 어쩌고 한 소설이었다. 제목이 그랬는지 아니면 내용에 그런 대목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기억되는 소설이었다. 읽을 때는 몰랐는데 옮겨 쓰다 보니 상당 부분에서 비문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뭐라고 해도 배수아의 소설을 읽으면 내 사고가 얼마나 굳어있는지 느끼게 된다. 시처럼 풀리던 그녀의 소설을 읽는 기쁨은 언제나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