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11 

 김양호의 '손목시계에 관한 명상'과 고종석의 '제망매'를 하나의 관점으로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시대와 현실에 개인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보는 것이다.



장래가 촉망되는 집안의 자랑 형님과 변변치 못한 동생의 삶을 시계를 매개로 풀어나간다. 시대배경을 얼개로 해서 가족사와 개인사가 얽혀드는 가족사 소설이기도 하다. 역사가 선한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시대의 흐름에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형. 그러한 형의 현실적인 몰락을 시니컬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냉소하는 동생. 자라면서 우러르던 형에게 결국 동생은 공산권의 몰락을 이야기하며 형을 비웃는다. 거대한 역사나 정치 같은 것을 모르고 그저 사는데 급급하며 묵묵하게 사는 소시민이야말로 역사의 중심에 서있다는 것도 작품 밑바닥에 깔려 있다.



그러나 나는 자꾸 채만식의 '치숙'이 생각났다. 동생은 자신의 삶으로, 직접적인 냉소로 형을 비웃지만 과연 형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작품을 다 읽고 났을때 그런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동생의 입을 통해서 형을 비웃게 하고는 독자의 마음속에 슬쩍 그런 의문을 넣어주었다.



이에 비해 고종석의 '제망매'는 좀 다른 시선으로 현실에 대응하는 인간의 삶을 보여준다. 화자는 사랑하는 이종사촌 여동생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그녀의 휴머니즘을 내보인다. 그녀와 달리 화자는 조국을 떠난(버린)자라는 자책을 비아냥처럼 하는 인물이다. 화자는 개인의 자유에 무게중심을 두고 사회적인 책임을 탈피하고자 한다. 민족, 국가 앞에서 개인의 자유주의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화자는, 아니 고종석은 민족이나 조국에 회의적인 시선을 갖는 것 같다. '플루트 골짜기'에서도 그런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런 것을 코스모폴리탄적인 성향이라고 한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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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송이송이
송기숙 지음 / 문경(문학과경계)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2008. 6. 8

송기숙의 단편 '고향 사람들'을 보느라 이 단편집을 보게 되었다.

'고향 사람들'은 가뭄에 농사짓는 노인의 이야기다.

비가 오지 않으면 둠벙의 물도 댈 수 없는 천수답을 위해 시추기를 동원해서 관정을 파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그 사이에 김동만이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적지 않은 분량으로 나온다.

김동만에 대한 묘사는 이렇다.



-동네 사람들은 맥살없이 웃었다. 겉보기는 수굿했어도...(중략)... 제 주소도 '석문리'를 '성문리'로 받침이 틀리던 작자가 긴다 난다 하는 땅 사기꾼들에게 휩싸여 고장 난 경운기 소리 같은 웃음소리를 낄낄거리고 다녔다면 봉도 그런 날봉이 없엇을 거라고 웃었다.- (고향 사람들', 206쪽.)



작품 전체는 남도의 사투리속에 남도의 정서가 물씬 풍긴다.



다른 작품들도 그렇다. 현대의 서울말에서 도저히 맡을 수 없는 독특한 향기가 있다.



-"두멍 쓰고 밤길 걷기도 아니고 겁에 질려 실려 갔등마는, 한다는 소리가, 다 알고 있다, 안 죽으려면 순순히 불어라, 이러네그랴. 느닷없는 소리에 벼락에 깨난 잠충이매이로 눈만 멀뚱멀뚱하고 있다가, 한참 만에야, 옛날에 살았던 집 집터에 갔다온다고 사실대로 말을 했잖았겠어?"-( '들국화 송이송이' 45쪽)



작품 속의 인물들은 대게가 현실 살이에 별 대책이 없어 요량없이 사는 사람들, 이데올로기 속에 그냥 휘둘려서 삶이 절딴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 그때 본게 법이란 것이 도깨비 손에 뚝딱방망이도 아니고 옹기쟁이 손에 진흙 뭉텅이도 아니더만. -('들국화 송이송이', 49쪽)



잠깐 읽어보려고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아무래도 다시 사야겠다. 한줄 한줄을 다시 필사하고 싶은 문장들이 책 아무곳을 펼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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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6. 4 

 


피카레스크 소설은 16세기에 스페인에서 발생했다(La Novela picaresca).

하층민이며 잔꾀가 많은 건달이 부도덕한 현실에 맞서 재치와 임기응변, 탈선을 일삼는 걸 보여주며 그 속에서 세태와 정치를 풍자한다.

이러한 소설의 전제 조건은 기존 질서의 가치체계에 대한 모종의 부정을 담아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써 인물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러한 피카레스크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전설을 만드려면

1. 출현-반드시 조력자를 동반한다.

2. 대결

3. 패권 획득- 이에는 전리품이 따른다.

4. 배신-조력자에 의한 배신으로 파국을 맞는다.

 

피카레스크식 소설 :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J.M.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김영하의 '오빠가 돌아왔다', 김중광의 '경찰서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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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5. 28 


[로빈슨 크루소]라 하면 청소년이 읽어야할 모험 소설 정도로나 알았다.

이 작품도 내게는 읽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고 믿는 작품 중의 하나다.

그런데 이 작품은 17세기 말-18세기 초의 영국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으며 건전한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인간형을 보여준다는 걸 알았다.

완역본을 읽고 공부해서 알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는 요지의 결론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정리를 해보면.



무인도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는 생존을 위해 생산한다. 소비하고 남은 것은 다음을 위해 남겨두어 확대재생산을 꾀한다. 난파선에 있던 화약을 보관하여 위험을 대비하는 보험적 사고를 보여준다. 나무에 금을 그어 시간을 관리한다. 일년 동안 소비한 것을 정리하는 대차대조표를 작성한다. 이는 그 시대 흐름을 긍정적으로 보고 자본주의의 이상적 전형을 보여준다.



이와는 달리 자본주의 체제 내부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보고 당시 영국 자본주의의 초기 사회 부패 양상을 고발한 작품으로 [걸리버 여행기]를 들 수 있다.



우리 나라 문학에서 경제행위의 에토스를 다룬 작품으로 [허생전]을 들 수 있다. 허생전의 인물은 투기적 인물이다.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기술적인 발전만이 아니라 기업 윤리의 반성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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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과 속살 나남신서 109
현길언 / 나남출판 / 1993년 1월
평점 :
절판


 

 2008. 5. 21


제주도에 전해 내려오는 김녕사굴의 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본풀이:본풀이 [本--] [명사]<민속> 본(本)을 푼다는 뜻으로, 신의 일대기나 근본에 대한 풀이를 이르는 말. 굿에서 제의(祭儀)를 받는 신에 대한 해설인 동시에 신이 내리기를 비는 노래이기도 하다. ≒본생담(本生譚)·신풀이)



이 작품에서 소재로 사용되는 설화는 작품에서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나?



설화는 구전되어 왔기 때문에 전하는 사람들의 상상력과 의도에 의해서 변형될 수 있다. 로망스 속에서 승리하는 영웅의 이야기로 전해내려오는 전설과 구분하자면 설화는 다분히 피지배인들의 이야기다. 설화는 지배이데올로기가 일반적으로 횡행하는 사회의 산물이다. 지배이데올로기는 억압과 폭력을 은폐하고 정당화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 말을 동원하는데 이는 다름아닌 폭력이다. 설화속의 인물은 폭력에 의해 희생되거나 억울하게 짓밟히고 모욕당해서 복수의 기회를 노리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설화 속 인물은 지배이데올로기 앞에서 질 수밖에 없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 설화를 동원한다. 설화는 무책임하다. 무책임에 힘입어 그 응전력으로 더욱 강화된다. 설화는 닫힌 사회를 열 수는 없으나 인간을 일깨워줄 수는 있다. 이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된다. 지배 이데올로기가 몰락하고 새로운 희망이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를 설화는 은연중에 내비친다.



우리나라에 많은 설화가 있지만 제주 설화는 가장 복수와 반격을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의 판관은 로망스적 인물이다. 판관은 민중을 구하기 위해 괴물을 퇴치하면서 로망스의 영웅과 같은 유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민중은 오랜 경험으로 판관(지배세력)을 믿지 않는다. 우연한 낙마사고사를 당한 판관이 신의 노여움을 사서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현길언, [껍질과 속살], 나남,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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