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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과 속살 ㅣ 나남신서 109
현길언 / 나남출판 / 1993년 1월
평점 :
절판
2008. 5. 21
제주도에 전해 내려오는 김녕사굴의 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본풀이:본풀이 [本--] [명사]<민속> 본(本)을 푼다는 뜻으로, 신의 일대기나 근본에 대한 풀이를 이르는 말. 굿에서 제의(祭儀)를 받는 신에 대한 해설인 동시에 신이 내리기를 비는 노래이기도 하다. ≒본생담(本生譚)·신풀이)
이 작품에서 소재로 사용되는 설화는 작품에서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나?
설화는 구전되어 왔기 때문에 전하는 사람들의 상상력과 의도에 의해서 변형될 수 있다. 로망스 속에서 승리하는 영웅의 이야기로 전해내려오는 전설과 구분하자면 설화는 다분히 피지배인들의 이야기다. 설화는 지배이데올로기가 일반적으로 횡행하는 사회의 산물이다. 지배이데올로기는 억압과 폭력을 은폐하고 정당화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 말을 동원하는데 이는 다름아닌 폭력이다. 설화속의 인물은 폭력에 의해 희생되거나 억울하게 짓밟히고 모욕당해서 복수의 기회를 노리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설화 속 인물은 지배이데올로기 앞에서 질 수밖에 없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 설화를 동원한다. 설화는 무책임하다. 무책임에 힘입어 그 응전력으로 더욱 강화된다. 설화는 닫힌 사회를 열 수는 없으나 인간을 일깨워줄 수는 있다. 이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된다. 지배 이데올로기가 몰락하고 새로운 희망이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를 설화는 은연중에 내비친다.
우리나라에 많은 설화가 있지만 제주 설화는 가장 복수와 반격을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의 판관은 로망스적 인물이다. 판관은 민중을 구하기 위해 괴물을 퇴치하면서 로망스의 영웅과 같은 유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민중은 오랜 경험으로 판관(지배세력)을 믿지 않는다. 우연한 낙마사고사를 당한 판관이 신의 노여움을 사서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현길언, [껍질과 속살], 나남,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