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
나는 주머니 속에서 불거져 나온 주먹처럼
너는 주먹 안에 쥐어진 말 한마디처럼,
나는 꼭 쥔 주먹 안에 고이는 식은땀처럼
너는 땀띠처럼,
너는 높은 찬장 속 먼지 앉은 커다란 대접처럼
나는 그득히 담겨 찰방대는 국물처럼,
너는 주둥이를 따고 몸을 마음에게 기울인다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따라지기를,
나는 기울였다 세워놓은 술병처럼 반은 비어 있다
마개처럼 테이블 아래로 떨어져 뱅그르르 돌다 멈춘다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너는 벽을 껴안고,
나는 미안하다며 무릎을 꿇고
너는 고맙다며 두 팔을 뻗고,
나는 미친 척하고
너는 제정신인 척하고,
나는 부딪칠 때마다 소리를 지르는 빗방울이 되어
흔적만이 환한 눈송이가 너는 되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서 행복한 너와
이미 만났었기 때문에 괜찮다는 나는,
심장이 멎을 것 같은 나와
심장이 제대로 뛰기 시작하는 너는,
이제야 죽고 싶어진다고 나는 말한다.
네가 태어나고 싶어지는
이 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