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책을 덮거나 파일을 완성시키면 으레 그러하듯 짧은 여행을 다녀왔어. 이번엔 대흥사와 무위사를 거쳐 내소사까지. 마지막 여행지인 내소사에 내렸을 땐 밤이었어. 일주문 앞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그 식당의 방에서 묵었어. 새벽 4시 도량석 도는 소리가 들려서 머리 빗고 나섰어. 일주문 안쪽의 먼 불빛에 의지해서. 처음 가보는 곳이라서 어디인지도 모르는 채. 아름드리 나무들이 만든 터널 아래로. 새벽 숲길을 걷자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 어둠 내린 숲은 우리에게 똑바로, 앞만 보고 걸으라 가르친다고. 옆에서 눈길 끄는 것에 마음 팔리면 주춤거리거나 되돌아서게 된다고. 난 너무 자주 주춤거리는구나, 어쩌면 이 생의 가두리에서만 맴돌다 말지도 모르겠구나……예불을 마치고 여전히 어두운 숲길을 걸어내려오는데 그런 마음이 들더라.

'이혜경-저녁이 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