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형이요? 나무지요!

말없이 우뚝 서 있을 줄만 아는 남자. 그래서 참 재미없고 심심한 남자. 사랑을 한다는 건가 안 한다는 건가 가타부타 말이 없어 집 앞을 뱅뱅 돌며 자꾸만 한숨을 쉬게 하는 남자. 그러다 집에 돌아오면 거위털 이불을 턱밑까지 덮어주는 아비의 큼지막한 손 같은, 그 아비의 따뜻한 손같은 말로 전화기를 붙들게 하는 남자. 막상 전화가 끊어지면 이제 갔나 영영 가버렸나 비로소 쓸쓸하게 만드는 남자. 그러나 다음 날이면 변함없이 어김없이 곁에 서 있음으로 그늘을 드리울 줄 아는 남자. 어쩌다 내 남자는 나무의 다른 이름이 되었을까요. 어디 이실직고 한번 해봅시다. 있는 그대로의 남자를 나는 사랑했던가요. 알아서 굽힐 때를 모른다고 하이힐 신은 발로 무릎을 까거나 말이든 눈물이든 쏟는 족족 싱거워 죽겠다며 남자의 입과 눈에 소금을 뿌리는 만행을 저지른 건 내가 아니었던가요. 이게 비단 나라는 여자만의 일화라 할 수 있던가요. 나무처럼 아름다운 시가 없듯, 신 아니면 나무는 만들지 못하듯, 내 남자 내 나무는 나의 신이라는 이 자명한 사실을 나는 왜 매번 뒤늦게 깨닫는지 모르겠어요. 하늘 아래 흔한 게 나무라는데 내 남자 내 나무는 어느 구덩이에 파묻혀 있는지 원.

 

처음 사랑일 때 나는 어땠나. 사랑해! 너 없이는 못 살겠다는 굳센 의지의 느낌표였을 것이다. 과정 속의 사랑일 때 나는 어땠나. 사랑해‥‥ 너 없이도 살긴 하겠다는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으로 가는 말줄임표였을 것이다. 끝에서의 사랑일 때 나는 어땠나. 사랑해? 너 있어서 못 살겠다는 억하심정으로 억지 꼬투리 꿰고 보는 물음표였을 것이다.

 

'김민정-각설하고,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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