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더없이 푸르렀다면 나에게는 이별하는 시간이 그러했다. 한 시절에게 안녕을 고하고, 또 다른 시절과 맞닥뜨리는 과정. 갑자기 햇빛 쨍쨍한 거리로 문을 열고 나가 그 눈부심에 잠시 어질, 현기증을 느끼는 일.

 

 내가 살아보니 그렇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그냥 알게 될 때가 있는 법이다. 나를 쳐다보고 있지만 이미 마음의 반은 다른 이에게 빌려주고 있는 그런 느낌. 나를 보고 웃어도 입꼬리 끝이 끝내는 이지러지고 마는 그런 것 말이다.

이제는 나도 알지만, 익숙함이란 한 알 진통제와 같은 것이다. 통증의 근원까지는 치유하지 못해도, 당장 아픈 구석은 달래주는 진통제.

 사람은 누구나 속으로 묵혀야 하는 쓸쓸함이 있고, 밖으로 까발려야 하는 우울이 있는 법이다. 무얼 묵히고 무얼 까발릴 것인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나는,

사랑하지 않아서 미안한 적은 없었다.

사랑을 해서 미안한 적은 숱했지만.

 

 나는 언제나 한 손 반짝 들어, 당신에게 발랄한 작별인사를 던지고 싶었다. 어쩌면 수많은 당신들.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은 사람처럼 이딴 일, 하나도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나는 말간 얼굴을 하고서 당신과 이별하고 싶었다. 어쩌면 수많은 당신들. 그래서 제대로 인사하지 못한 인연들이 많았다. 언제쯤 나는 당신과 잘 헤어질 수 있을까. 어쩌면 수많은 당신들. 나는 아직 모르겠다. 내 어설픈 연애는 여태 끝날 줄을 모르니.

 

'김서령-어디로 갈까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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