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서른이 되면

                      나희덕

어둠과 취기에 감았던 눈을  

밝아오는 빛 속에 떠야 한다는 것이, 

그 눈으로 

삶의 새로운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이, 

그 입술로 

눈물 젖은 희망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렵다. 

어제 너를 내리쳤던 그 손으로 

오늘 네 뺨을 어루만지러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 

결국 치욕과 사랑은 하나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가을비에 낙엽은 길을 재촉해 떠나가지만 

그 둔덕, 낙엽 사이로 

쑥풀이 한갓 희망처럼 물오르고 있는 걸 

하나의 가슴으로 

맞고 보내는 아침이 이렇게 눈물겨웁다. 

잘 길들여진 발과 

어디로 떠나갈지 모르는 발을 함께 달고서 

그렇게라도 걷고 걸어서 

나 서른이 되면 

그것들의 하나됨을 이해하게 될까 

두려움에 대하여 통증에 대하여 

그러나 사랑에 대하여 

무어라 한마디 말할 수 있게 될까. 

생존을 위해 주검을 끌고가는 개미들처럼 

그 주검으로 

어린것들의 살이 오른다는 걸 

나 감사하게 될까, 서른이 되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