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바다 앞에서는 절망하지 말 것, 감히 바다 앞에서는 절망에 대해 말하지 말 것. 그래, 바다만큼 깊은 심연을 제 속에 거느리고 있는 자가 있는가.
아니 바다 앞에서는 절망뿐 아니라 희망에 대해서도, 광활함에 대해서도, 어떠한 낙관주의나 허무주의, 박애주의에 대해서도 말해서는 안 된다. 바다 앞에서는. 바다만큼 많은 희망의 태양을, 바다만큼 많은 허무의 풍랑을, 바다만큼 많은 생물을 키우는 박애를 제 안에 가지고 있는 자가 있는가. 그러므로 바다 앞에서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말해서는 안 된다. 바다 앞에서는 침묵하여야 한다.
바다는, 그 모든 것을 품에 간직하고 그 모든 것을 극복한 바다는, 이제 단 하나의 방식으로 제 마음을 보여준다. 그건 높은 파도나, 물굽이를 따라 나는 갈매기나, 아름다운 푸른색 따위가 아니다. 그건 부력이다.
바닷물의 부력. 모든 물체를, 그 물체가 가지고 있는 질량만큼 떠오르게 하는 힘, 부력. 그건 바다가 가지고 있는 애정이고 모든 것을 극복한 자의 의연함이다.
#2. 사람들은 누구나 제 몫의 빈 무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일상의 어느 지점에서 풍랑을 만나 좌초하더라도, 한 번쯤 제 무덤의 양지쪽에 앉아 물에 젖은 영혼을 말릴 수 있는, 그런 무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뽀송뽀송 잘 마른 영혼으로, 다시 이 세상의 한가운데를 걸어볼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등뒤에 혹은 마음속에, 빈 무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강물을 따라 떠내려오는 제 지난 삶의 흔적들을 거두어 담을 수 있는 빈 무덤, 물에 젖은 영혼이 쉴 수 있는 빈 무덤, 그런 빈 무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