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므로 누군가를 사랑하면 다른 누군가에게 기꺼이 잔인해질 수 있다.
헤어지던 날은 비가 왔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레밍은 물기로 얼룩진 얼굴을 하고 괜찮다고, 돌아오라고 말했다. 비참한 포즈로 애원하다 지난 일을 두서없이 이야기하며 추억을 상기시키려 했다. 내가 레밍에게 바란 것은 하나였다. 경원을 담뿍 담은 목소리로 '나쁜 년'이라고 내뱉어 줘. 이 고역스러운 순간이 끝나고 '그 남자'에게 달려가게 해줘. 하지만 레밍은 그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후회했다. 그냥 도망쳐 버릴 걸 그랬다고. 이렇게 자책감을 들쑤시는 시간을 견디느니 이별 선언조차 없이 도망쳐 버릴 걸 그랬다고. 20대 초반, 나는 무책임했고 내 감정 외에는 무관심했다. 
 

#2. 그는 내게 자신을 사랑하느냐 물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사랑한다고 대답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명징했다. 스스로의 감정에는 특히 더. 누군가를 사랑하는지 좋아하는지, 미워하는지 싫어하는지, 나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미워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조차 몰랐으면서. 
   

#3. 우리는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 달랐다. 이를테면 둘 다 치킨이 먹고 싶어서 치킨 집에 간다. 여기까지는 같다. 둘 다 양념구이가 아니라 프라이드를 먹고 싶어 한다. 여기까지도 같다. 하지만 레밍은 몸통만 먹고 나는 다리와 날개만 먹는다. 우리는 먹고 싶은 부위를 나누거나 양보할 필요가 없었다. 남녀 관계에는 '같으면서 다를' 필요성이 존재한다. 치킨이 아니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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