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용산 평화 발자국 2
김성희 외 지음 / 보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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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의 부당함을 주장하다 <용산 참사>라는 이름으로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생을 마감한 5인이 있습니다.



’용산 참사’는 저 역시 언론을 통해 무수히 접해왔던 내용인지라 
[내가 살던 용산]을 보는 순간, ’아! 용산 참사를 다룬 책!’임을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흔히 그러하듯 시작과 과정은 있지만 언론을 통해 끝을 알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용산 참사 역시 참사 원인은 어렴풋하게나마 국민으로서 알 권리를 누렸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던 용산]의 ’용산 참사 일지’를 읽으며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건임에 
놀라움과 염려스러움이 마음속에 함께 공존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책을 펴낸 6인의 만화가는 사회의 관심에 잊혀가는 ’용산 참사’이야기를 
책으로나마 다시금 일깨워 주려 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또한, ’용산 참사’의 뒷 얘기는 그동안 궁금했지만 제대로 알 수 없었던 내용을 
’용산 참사’ 5인 및 가족과 주변인의 시선을 통해 진솔하게 들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용산 참사’에 대해 그동안 조금이나마 가졌던 의문에 대한 해답을 
[내가 살던 용산]을 통해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적이나 주위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높이 지은 다락집을 ’망루’라고 합니다.
’용산 참사’ 역시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용산 4지구 철거민 망루 농성을 하던 중,
망루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철거민을 비롯한 농성자 5인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용산 참사’로 목숨을 잃은 
이상림(72세) , 양회성(58세), 이성수(51세), 한대성(54세), 윤용헌(49세)
5인은 모두 한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이들이 ’철거민 농성’의 적극적으로 앞장 서야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내가 살던 용산]을 읽으면서 결코 어디에도 크나큰 이득을 바라던 대목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 재개발 지역에서 자영업으로 생업을 꾸리던 분들이었고,
인테리어비, 권리금 등은 고사하고 보상금 5,000원만원으로는 도저히 앞으로의 
생계가 힘든 가정들이었습니다.
가게를 꾸릴 때 들어간 인테리어비용을 위해 대부분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는데,
보상금 5000만원으로는 도저히 그동안의 대출금을 갚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일 뿐만 아니라
26년 동안 한 자리에서 터를 닦아온 이에게 5000만원의 보상금으로 갑작스런 지역이동은 
만약 나의 입장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앞이 막막할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무자비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용역을 이용한 비인간적인 철거의 모습에
저 또한 쉬이 용납하기 어려운 건 당연하였습니다.
’용산 참사’ 이후의 유가족 동의 없이 이루어진 사망자의 부검이라던가,
재판 과정 역시 민주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오히려 ’용산 참사’ 5인이 테러범으로 몰렸다가 민주열사로 인정받은 부분입니다. 
이 역시 유가족과 국민의 노력의 결과이겠지만 말이죠!



또한, 용산 참사 일지를 통해 밝혔듯 2009년12월30일 용산 범국민 대책위원회와 정부는, 
정운찬 총리가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방식으로 사과하는 것과 
시공사와 재개발 조합이 보상비를 지급하는 것을 합의했다고 합니다.

진작 재개발 되어 자신이 일구어 온 터전을 떠나야만 하는 이주민의 심정을 헤아려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너무도 간단한 진리를 우리는 너무나 큰 고통을 안고 깨달아가는 건 아닌지....
[내가 살던 용산]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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