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평점 :
[퀴르발 남작의 성]을 접한 소감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굉장히 독특한 매력을 지닌 소설이다.'는 점과 '기존에 접하지 못했던 신선함이 묻어나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퀴르발 남작의 성]은 7편의 각각의 전혀 다른 단편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마지막 <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라는 마지막 단편에서 합쳐지는 기묘한 스토리로 독자로 하여금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 흡입력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퀴르발 남작의 성 >,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 <괴물을 위한 변명>과 같은 괴기스런 이야기, 공포, 탐정물을 좋아하는 독자에겐 큰 매력으로 다가올 단편이라 생각된다. 특히, <퀴르발 남작의 성> 경우 시공을 넘나듦과 동시에 실제와 가상을 넘나드는 스토리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나의 개인적 취향으로는 <그녀의 매듭>, <그림자 박제>,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와 같은 잔잔함 속에 숨겨진 비밀과 반전의 이야기가 무척 기억에 남는다. 최제훈 작가의 작품 속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평범한 인물은 찾기 힘들다. <그녀의 매듭>에서 보여지는 여자주인공 차화연의 부분 기억상실 이야기라던가, <그림자 박제>에서의 자수성가한 회계사이자 기러기 아빠로 등장하는 강철수의 경우 또한 다중인격이라는 독특한 설정되어 자신이 아닌 몸 속의 다른 누군가에 의해 절도와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로 묘사된다.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는 이 소설집에서 만큼은 가장 평범한 이야기로 비춰진다.
'셜록 홈즈 명탐정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을 접하게 된다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 최제훈 작가가 '탐정 소설가'로 손색이 없을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야기이기도 하다. [퀴르발 남작의 성]은 기존의 사실의 이야기를 자신의 창의적 소설로 놀랍게 탈바꿈시키는 작가의 자유자재 손놀림에 더욱 흡입력있게 빠져든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또한,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활동 중이기도한 우찬제 평론가의 섬세하고 날카로운 긴 해설에도 주목할 만 한 작품으로 <해설>을 통해 배경지식의 부족으로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내용을 이해한 부분들도 있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정도나마 기억하는 건. 사실 수연이에게 한때 흑심을 품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심각하게는 아니고 딱 몽당연필 크기 정도의 흑심, 딱히 어떤 점에 반했다기보다는 마주칠 때마다 동전 저금하듯 조금씩 쌓이는 감정이었다. 그러나 내 돼지저금통 연정은 어느 겨울의 술자리 이후 수취인불명 도장이 찍혀 반송함에 던져졌다.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 -본문 204페이지 중)
짚이는 게 있긴 했다. 새내기 이혼남과 예비 신부가 만나면 가장 피하는 대화 주제가 바로 결혼이었다. 상대방의 상처를 들쑤시거나 희망을 박살내고 싶은 사디스틱한 취미가 없다면 말이다. 결혼이란 이제 사랑이라는 전력을 공급하지 않고도 관계가 유지되도록 하는 무동력 면도기 같은 것이라거나, 일단 하면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친구들 너스레는 다 뻥이라는 따위의 말을 예비 신부에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수언이도 결혼 문제에 대해 굳이 속내를 터놓거나 미화해서 대답할 필요 없는. 더불어 침묵할 수 있는 친구를 원한 게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내가 경력 사원으로서 적임자이기는 했다.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 -본문 206페이지 중)
작가가 풀어내는 문체가 기발하면서도 재미있어 기억에 남는 글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