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정육점]이라는 제목을 응시하면서 참 모순된 단어의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슬람 정육점]이라 제목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이 책에서 책 소개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한국에 눌러살게 된 터키인이 상처투성이의 한 아이를 입양하면서 그 상처를 보듬어 안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는 것과 작가는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우리 마음속에 도사린 상처와 욕망, 폭력과 광기의 트라우마를 집요하게 탐색한다는 것과 서울의 이슬람 사원 주변, 허름한 골목에 모인 지질한 인생들과 부대끼며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한 소년의 가슴 따뜻한 성장기가 이 소설의 주 흐름이다. '내 몸에는 여전히 의붓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로 시작해서 똑같은 '내 몸에는 여전히 의붓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로 끝나는 이야기. [이슬람 정육점]은 몸 여기저기 원인모를 상처를 지닌채 고아로 버려진 주인공 자신만이 가장 불행하고 운이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고 여겼을 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슬람 정육점' 터키 아저씨에게 입양되기 전까지 인생은 말이다. 책 소개와 같이 이 책은 서울의 허름한 골목을 배경으로 가지가지 지질한 인생들이 모여살고 있다. 적어도 [이슬람 정육점]을 읽게 된다면 '나만이 불행하다'는 생각 정도는 떨쳐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하나같이 지질한 이들만 모아 놓은 듯한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그다지 슬피지 않게 이들을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참으로 다행이다. 그리고, 주인공 소년이 나와 같이 비슷한 처지의 인생을 살아가는 이웃을 보면서 어쩌면 스스로에게 위안을, 그리고 이웃까지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서서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끝내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입으로 내뱉어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터키인 하산 아저씨, 그리스인 야모스 아저씨는 모두 6.25 전쟁 참전 용사이고 각각의 이유로 고국으로 가지 못한 채 한국에 남아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의 마치 중심에 서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하는 '안나 아주머니'.. 처음엔 하산 아저씨와 야모스 아저씨처럼 외국인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어이없게도 '안나'라는 이름에 얽힌 사연 무척 재미있었다. 그 사연을 살짝 들여다보자. 훗날 안나 아주머니는 내게 고백하기를, '안네 양의 일기' -어떤 편집자가 좀더 고상한 티를 내느라 아가씨 취급을 해준답시고 안네 뒤에 '양'을 붙였던 거다-를 '안내양의 일기'로 알았다고 했다. 왜 그럼 이름을 안네라고 하지 않았냐고 되묻자 가스실에 끌려가 죽을 운명마저 들러붙는 게 아닌가 겁이 나서 살짝 바꿨단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안나 아주머니가 버스 안내원이던 시절이 있었음을 알았다. (본문 p.39) 나는 돼지고기 살점을 손으로 쥐고 입에 넣었다. 비릿한 냄새가 입속으로 왈칵 밀려들었다. 날것이 풍기고 시큼하고 들큼한 냄새. 구역질이 났다. 입가로 침에 희석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살점은 질겨 찢어지지 않았다. 어금니로 덥석 물어 힘겹게 한 점을 찢어냈다. 내가 입을 우물거리자 몇몇이 헛구역질을 했다. 나는 발칙하게 예의 바른 태도로 정육점에 모인 사람들을 보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의 얼굴을 모두 스크랩해서 내 소장품 목록에 넣고 싶었다. ..(본문 108페이지) 위 장면이 이 책의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장면을 뽑으라면 그 중 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 하산 아저씨를 대신으로 정육점에 모여들어 하산 아저씨를 비난하며 생고기를 먹어보라는 이웃들 앞에 자신이 스스로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데에는 단순히 한 마디로는 표현하기 힘든 복잡함이 묻어난다. 지질한 인생들의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이야기라고 해서 문체까지 우울하거나 슬프지는 않다. 오히려 작가의 문체의 노련함이 느껴진다. 또한, 상황을 표현하는 섬세함이 놀랍다. 예상치 못한 특유의 표현법들이 시선을 사로잡는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돋보였던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