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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사진관
김정현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흔히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소설 몇 권도 모자란다며 너스레를 뜨는 어르신들을 많이 보았다. 그만큼 굴곡도 많고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는게 인생일 터이다. [고향사진관]의 용준 역시 바로 그런 사람이다. 20대 중반까지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여곡절 없이 평탄하게 살아가는가 싶더니 스물 다섯을 기점으로 그의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아버지가 갑자스레 식물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졸지에 아버지의 빈자리는 용준의 몫이 되고 만다. 책을 읽으면서 과연 용준은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궁금증이 밀려왔다. 그리고 과연 어떤 결정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후회가 없는 선택이 될수 있을까 나 스스로에게도 묻게 된다.
용준은 언제가 끝이될지도 모를 아버지 곁을 지키기로 한다. 그리고 그렇게 고향으로 내려가 아버지의 가업을 그대로 물려받는다. 아니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잠시 빈자리를 그대로 메우고자 악착같이 애를 쓴다. 그런 용준을 지켜보기가 안쓰러웠다. 용준의 마음 깊숙히엔 아버지가 깨어나시기를, 그리고 깨어난 아버지에게 최대한 낯설지 않게 지금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남들에게 비춰지는 용준의 모습은 날개가 꺾여진 새와 같다. 겉으로 보여지는 용준의 모습은 버럭버럭 화내는 지랄 같은 성격으로, 따스한 말 한마디 건네는 법 없는 무뚝뚝함이, 때론 고집스러움, 고지식함으로 비춰지지만 타인들의 시선 따윈 의식하지 않고 마음가는 대로 진심을 다하는 그이기에 용준은 진정으로 순수하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다.
자식이 부모 병수발 드는 일... 예전 대가족이 함께 살던 시대에는 어쩌면 당연했을 일들이 지금에 와서는 그저 경이롭게, 대단하게 느껴짐을 용준은 스스로 불가능은 없다, 단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렇게 나 자신만을 위한, 내 삶이 더 중요하다고 치부하고 합리화하려는 이들에게 솔선수범하여 지극정성을 다하는 용준은 그야말로 자극이 되어 나 자신을 반성하게 만든다. 어쩌면 작가의 마음 한 편에는 그런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부부는 닮은 꼴이라더니 용준의 아내 희순은 천상 용준의 배필로 딱인 여자다. 어쩌면 하늘이 감동하여 용준에게 희순 같은 여자를 처로, 그리고 토끼 같은 자식 셋을 선물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용준의 자녀 셋의 행동 하나 하나 말 한마디 한 마디를 지켜보노라면 ’보는대로 배운다’는 말을 실감을 하게 한다. 용준의 어머니 역시 지고지순한 우리의 어머니상 모습 그대로이다. 이렇게 사람냄새 나며 때 묻지 않은 이들에게 현실은 가혹하게만 느껴진다. 기나긴 17년간의 병수발을 끝으로 용준네에게 희망이 찾아오길 바랐다. ’하늘이 무심하다’는 표현은 이럴때 사용하나보다. 몇 해 지나지 않아 찾아온 용준의 간암 소식과 3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나 가혹하고 가슴 저려온다. 자신의 꿈은 뒤로 하고라도 몸뚱아리 조차 돌볼 여유도 없이 살아 온 용준의 인생의 결말은 나에게 더욱 충격적이었다.
적어도 자신의 인생따윈 포기하고 효자 노릇 톡톡히 한 그에게 보상은 아닐지라도 시련은 없길 바랐다. 하지만, 그것 조차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이 세상과 이별을 준비하는 용준을 지켜보면서 한 편으로는 혼란스럽고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가족, 진정한 친구들이 마지막까지 함께 하였기에 그의 인생의 끝은 결코 슬프지만은 않았으리라! 스스로 위로해 본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귀로에서의 선택에 대한 후회 또한 없이 떠날 수 있었으리라 믿는다.
누구나가 혼자가 아닌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속해있다. [고향 사진관]은 자식으로, 배우자로, 부모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나의 삶은 비단 나 자신만의 삶이 아닌 가족 모두의 일부분임을 깨닫게 하는 책이다. 또한 진정한 마음으로 통할 수 친구의 모습도 비춰준다. 그렇게 ’고향 사진관’은 읽는 동안 용준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잠시나마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 메말라가던 나의 심장에 인간적인 삶의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되뇌여 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을 선물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