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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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의 주인공을 바라보면서 나는 참으로 밝고 건강하게, 그러면서 행복한 철부지로 스물살 인생을 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아홉, 스물이란 나이는 뭔가 진취적이고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느낌이 든다. 또한, 한창 사랑을 경험 할 나이이기에 스물이라는 나이가 가져다 주는 의미는 그야말로 ’사랑의 성장통’,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의 성장통’을 겪는 시기였던 것 같다.  이것이 나의 스물살 시절을 떠올렸을 때의 느낌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정윤, 단이, 명서, 미루는 그런 나와는 참으로 다른 20대를 살아 온 이들이었다. 스무살 나이에 경험하기에는 기쁨보다는 아픔과 슬픔이 너무 크게 느껴져 이들을 지켜보기가 마음 편치 않았던 소설이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찾아온 스무살의 충격은 단이의 군대에서의 의문사에 끝나지 않고, 미루의 자살소식까지 비보로 날아든다. 과연 이들이 느낀 충격은 어떤 것이고 얼만큼 일까? 완전히는 아닐지라도 나에게도 이들의 충격만큼 친구들의 죽음 앞에 심장이 쪼이고 경직됨을 느낀다.  

그러던 중 명서와 정윤에게 건네는 윤교수의 말에서 나 또한 많은 위로가 되었다.『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절망할 줄 모르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다만...... 그 절망에 자네들 영혼이 훼손되지 않기만을 바라네.』(본문p.341) 가까운 이들의 죽음은 애초에 이들이 담담히 극복하기에는 무리였으리라! 그렇게 친구들의 죽음은 스스로가 복잡한 자책들로 스스로를 절망하게 만든다. 특히, 정윤에게 단이의 죽음이, 명서에게 미루의 죽음이 그러 하였다. 그나마 다행으로 정윤과 명서는 서로가 절망과 아픔을 경험할 때  묵묵히 힘이 되어주고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정윤과 명서는 서로가 찾지 않는다. 그렇게 8년여의 시간이 흘러 윤교수의 임종을 앞두고 명서가 정윤에게 전화를 걸면서 이들의 재회가 비로소 이루어진다. 어쩌면 이들은 각자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묵시적으로 멀리하는 방법을 택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기억은 결코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그저 기억하지 않으려 할 뿐이다. 명서가 정윤에게 남긴 갈색노트와 회상하는 듯 이끌어내는 소설의 내용에서 어느 한 장면 놓치지 않고 이들의 추억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지 않는가? 

솔직히 고통이 아름다움으로 승화한다는 말은 믿고 싶지 않다. 어느 누구에게나 인생에 굴곡이 있게 마련이지만 20대 청춘을 미완성하고 떠나버린 단이와 미루, 그리고 이들의 죽음이 가져다 준 충격을 견뎌내느라 20대를 힘들게 버텨낸 정윤과 명서이다. 아픔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들 한다. 그렇게 시간은 분명히 이들의 아픔을 치유해 줄 것이지만,  자신의 20대의 추억을 떠올리게 될 때 이들의 과거를 기억하며 맘껏 미소짓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하니 너무 가슴아프고 애처로워진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서 울리는 전화벨은 자꾸만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든다. 8년만의 명서와 정윤의 전화로 재회로 시작되는 소설의 첫 프롤로그는 책 제목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의 의미를 충분히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 속 전화벨이 울리는 장면은 유독 많이 등장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미루의 집에서 정윤과 미루가 오래도록 대화를 나눌 때 계속해서 울려대던 전화는 누가 걸었던 것일까도 궁금하고, 정윤과 명서의 집에 걸려온 받자마자 끊어지던 전화벨의 주인공이 미루어짐작하기를 미루였으며, 어느날부터인가 전화벨이 울리지 않았을 때는 이미 미루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생각하니 섬뜩해짐을 느낀다. 미루의 소식을 알고 싶어 미루 집으로 전화를 거는 정윤과 명서의 모습에서도 명서의 갈색노트나 미루가 자신의 수첩에 메모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횟수만큼이나 자주 등장하지 않았던가. 또한, 정윤과 명서가 ’어디야’, ’내가 그쪽으로 갈까’라며 함축하며 말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전화 통화에서였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의 전화가 어쩌면 스무살 시절 이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매개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추억하기에는 아프고 반갑지 않은 문장일지는 몰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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