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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피크닉 ㅣ 민음 경장편 2
이홍 지음 / 민음사 / 2009년 12월
평점 :
과연, 강남에 사는 이들은 모두가 행복할까?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분명 현실 속에서도 주인공 은영-은비-은채 남매와 같이 겉모습만 강남이거나, 강남에 살지만 강남인들과는 애초에 섞임을 거부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존재하리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성탄 피크닉>은 4년전 로또 당첨으로 하루 아침에 강남 압구정동 한양아파트로 이사 온 은영 가족은 겉보기엔 틀림없는 강남인이다. 하지만, 재개발을 눈앞에 둔 오래된 아파트는 녹물이 나오고, 좁은 틈새로 겨우 한강을 감상할 수 있을 뿐인데다, 아파트 구입비로 모든 재산을 쏟아부은 주인공 가족의 살림은 그리 넉넉치가 못하다.
첫째 은영은 명문대 졸업을 앞두고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니지만 결코 취업문을 뚫기에 만만치가 않다. 강남에 사는 그녀이지만 흔히 이야기하는 명품 옷 한 벌도 없이, 골프도 쳐본 적 없이 지낸다. 오히려, 엄마 자리를 대신해 집을 꾸려나가기엔 과외비로 생활하는 것도 빡빡할 지경이다. 그런 그녀에겐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민우라는 대학친구와는 애초에 닮기 힘든 그림이다.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은영에게 강남이라는 동네는 그저 낯설고 이질감이 느껴지는 곳이다.
둘째 은비는 명문대의 조건은 갖추지 못했지만, 명품으로 물든 치장품들과 화려한 외모는 어느 강남 자녀 못지않다. 하지만, 같은 강남에 산다고 해서 모두 같은 조건은 될 수는 없다. 백화점에서 VIP 대접받으며 엄마 카드로 한 번에 명품 10벌을 고를 수 있는 재력의 딸인 친구 지희를 보며, 따라는 하지만 결코 따라 잡을 수는 없는 씁쓸함을 느낀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재력은 결국 강남 오빠들에게서 충당하다 끝내 되돌릴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지게 된다.
셋째 은채는 고등학생 남자아이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은채는 컴퓨터 중독에 빠지게 되고, 그렇게 세상과는 마음의 문을 닫아간다.
아빠는 로또 당첨이후 엄마와 이혼하며, 새 가정을 꾸린다. 로또 당첨금의 1/20을 챙겨간 아빠는 통닭집을 운영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말아먹는다. 현재는 몇달전 교통사고로 인하여 의료원 6인실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엄마는 그 동안 해보고 싶었던 요리 공부를 한다며 1년기간으로 외국으로 떠나 생활하고 있다.
'돈'과 '강남', 두 마리 토끼를 쥐었음에도 강남에서 살기에는 로또당첨금으로는 충분 조건이 되지 못한다. 또한 결코 '돈'이 행복과 비례하지 않음을 확인시켜 준다. 오히려, 강남으로 이사 오기전, 로또 당첨전의 주인공 가족이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아빠의 바람도, 은채의 학교생활 부적응도, 엄마의 부재도, 은비의 허영심도 모두 그 시작은 '돈'과 '강남'이라는 족쇄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유부남이자 성형외과 의사 최원장은 은비의 계속적인 돈요구에 화가 난 나머지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 둔 날 은비네 아파트로 불쑥 찾아온다. 은비와 크게 다투던 최원장은 꽁꽁 묶인채 며칠을 은비네 아파트에서 갇혀지내다 결국 은영남매에게 비극의 최후를 맞게 된다. 토막살인이란 최후는 그렇게 성탄 피크닉이라는 명분아래 세토막으로 나뉘어져 각각의 남매 여행가방 속에 잠들어 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소설이 이렇게 심도있는 내용으로 다루어지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성탄 피크닉>은 압구정 진출의 시작은 원대하였으나 그 끝은 비극이 되어버린 한 가족의 파란만장한 삶을 엿볼 수 있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