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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 - 떨림, 그 두 번째 이야기
김훈.양귀자.박범신.이순원 외 지음, 클로이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평점 :
소설이 아닌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들려 준다고 한다. 그것도 우리나라 현재를 대표하는 소설가 14인이 모여서 말이다. 그렇게 [설렘]이라는 제목으로 이 책은 내 품으로 다가왔다. 살포시 걷는 한 여인의 그림이 그려진 책 표지가 유독 시선을 끌었다. 연두빛, 초록빛 속의 설렘이라는 선명한 두 글자를 보니 더욱 그 내용이 궁금해졌다. 차례를 훑어보았다. 어떤 소설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점점 나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결혼한 지 13년.. 그 동안 소설을 너무 끊고 살았나보다. 고작 내가 아는 소설가 이름이라곤 양귀자,박범신... 두 눈을 의심하고 다시 한 번 더 훑어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처음 접하는 많은 유명 작가들의 문체를 한 번에 감상하는 계기도 되니 더욱 기대하며 첫 이야기부터 읽어 나갔다. 새로운 작가와의 만남은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것도 자신의 이야기로 다가왔으니 어느새 나와 익숙해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처음 만난 이명랑 작가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나또한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였다. 처음엔 첫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더니 기껏 순정만화 속 주인공 이야기인가 싶어 살짝 실망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남편에게서 순정만화 속 주인공들의 모습을 찾았다는 결론... 정말이지 현실의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독백하듯 줄줄줄 이어지는 글들이 정말 작가와 마주하고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내가 [설렘]을 통해서 처음 만난 작가 이명랑.. 친절하게도 책 뒷부분에 작가 약력도 소개해준다. 나 같은 독자를 위해 배려해 준 것 같아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명랑 작가는 나랑 비슷한 시대를 같이 겪으며 살아왔기에 공감대가 맞는 작가를 발견한 것 같아 기억에 남는다.
김나정 작가 역시 대학시절을 배경으로 사랑이야기를 소개하여서 나 또한 회상에 젖게 하는 시간이었다. 작가답게 문학소녀이자 문학소년과의 사랑이야기의 결실이 결혼, 그리고 현재진행형이라 부러웠다. 그래서, 더 자신있게 사랑이야기를 펼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다.
고은주 작가의 이야기 주에서 "사랑이란 이런것. 이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을 숨기지 않는것"이라는 표현에서 시선이 멈췄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사랑이지만 그 또한 사랑이기에 응원과 박수를 보내고 싶다.
뾰요한 눈빛, 뾰요하던 사랑의 김규나 작가를 만났다. 나는 처음에 뾰요란 단어가 낯설어서 내가 모르는 단어를 만났나 했다. 그런데.. 이런... 사실 뾰요라는 단어는 원래 없는 것이었다. 사실, 김규나 작가의 사랑이야기가 이 책 [설렘]을 읽으면서 가장 과거로의 회상을 많이 했었다. 표현 하나 하나 행동 하나 하나가 서툰사랑의 시작이었음에 공감되는 이야기였다.
김훈 작가의 이야기는 바다의 기별.. 제목부터 심상치 않더니 앞의 작가들의 분명한 문체와는 다르게 너무 추상적으로 다가와서 뭐가 뭔지 솔직히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 다만, 김훈 작가만의 사랑을 풀어내는 방식이 새롭게 느껴졌다.
양귀자 작가의 이야기는 솔직히 내가 아는 작가가 처음 등장하여서 기대를 했지만, 아쉽게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대신한 다른 이야기여서 처음엔 조금 실망했지만, 사실 가슴 찡한 이야기였다. 정말이지 드라마나 소설같은 이야기였다. 등장하는 여성이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고 밝고 씩씩하고, 자신감있게 살아가길 바란다.
한차현 작가의 내게도 그런... 이야기는 처음엔 너무 솔직한 표현으로 다가와서 놀라웠다. 그러면서도 내심 아~ 그 여자분과 결혼했나보다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지막에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은 다른여자라는 이야기에 멈칫했다. 너무 솔직하게 적어서 뒤에 후환이 없으려나 내가 걱정스러울 정도로.. 사실 흐지부지 이별 이야기를 읽었을 땐 내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여자친구의 입장이 십분 이해가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플까봐? 임신할까봐? 부끄러워서? 정조관념 때문에?" 작가의 이 말은 솔직히 100%가 나의 생각이었기에 이 표현을 보면서 내 눈은 그야말로 휘둥그레졌었다. 그리고, 한치현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내 뇌리속에 제대로 기억되는 작가가 되었다.
당신은 바람의 은미희 작가 이야기의 시작은 동화속 왕자님과 같은 소설같은 이야기였지만, 반전과 반전이 거듭되는 이야기라서 상당히 놀라웠다. 한 남자의 아픔이 묻어나는 이야기라서 솔직히 읽는 내내 가슴 아픈 사연들이었다.
파리를 가져가 버린 악어의 신이현 작가 이야기는 처음엔 제목의 의미를 유추하기가 힘들었다. 좋은 추억이 되는 이야기를 상세히도 기억함에 놀라웠다. 그러고보니 외국에서 짧은 기간에 만난 외국인과의 추억 유일하게 들려주신 분이다.
별의 김선재 작가는 특이한 인연의 맺어준 추억을 글로 엮어 주었다.
박범신 작가는 연륜답게도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편지를 써내려가는 듯한 회상에 미안함을 실은 것이 돋보였다. 작가가 말하는 그 분? 당신이 이 글을 꼭 읽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서하진 작가의 이야기는 다시 한 번 양귀자 작가의 글을 떠올리게 했다. 평범해 보이는 사랑도 한가지 사랑의 방식임을 우리는 잘 모르고 지나치나 보다. 나 또한 그랬던 것 같다.
김이은 작가의 사랑이야기는 완전한 사랑이 이루어질까 아닐까 궁금했는데 완전한 사랑으로 결실을 맺었음에 다행스러웠다.
이순원 작가의 황혼의 사랑이야기는 본인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글을 읽으면서 내게도 그런 가슴아픈 이별의 추억이 있다면? 생각해 보았다. 다행히도 그런 아픈 추억 따윈 없기에 이것도 어찌보면 행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황혼에라도 이 생에서 만나게 되어 다행이고 북에서 못 이룬 사랑을 남한에서라도 늦게 나마 죽는 날까지 함께 했으니 그 얼마나 행복한 사랑의 결말일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설렘]은 끝이 났다. 사랑의 종류는 너무도 다양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런 것이 사랑이라는 정답은 없다. 아니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 가을에 사랑을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다 준 [설렘]이었다. 인생에서 추억이 없다면 너무 심심하지 아니하겠는가? 하나의 사랑이 끝나고 나면 또 다른 사랑이 오는게 인생인 것 같다. 나는 지금의 남편과 13년째 사랑을 이어가고 있지 아니한가? 아마도 지금의 사랑이 남녀간의 사랑으로는 마지막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더욱 값진 사랑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음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다가오는 빼빼로데이라도 챙기는 이벤트를 열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