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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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페터 빅셀의 책은 처음이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연륜이 묻어나는 독특한 문체를 감상할 수 있었다. 우선은 아주 짧고 명료한 듯한 문체여서 딱 딱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페터 빅셀만의 특유의 문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라는 책을 통해 독특한 문체를 자랑하는 작가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페터 빅셀이라는 작가가 말하는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약간의 여유로움, 느긋한 마음만으로도 우리는 같은 시간을 할애하면서도 시간이 아주 많은 인생을 보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독 책에서 기차여행에 비유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시간에 쫓기는 대표적인 예로  출발지가 있으면 도착지가 있듯,  도착지에 대한 사람들의 강박관념적인 행동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착하기 5분 내지 7분전부터 마치 달리기의 출발신호를 기다리는 양 준비태세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일상의 모습들이 자연스레 담겨진 예이면서도 시간에 다투어 살아가는 듯한 우리의 모습이 잘 묻어나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편안하고 질서 있는 무질서>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쉽사리 다음 장을 넘기기 힘들었는데,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 등장하는 대목이기도 하였다. 약간의 무질서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내용인데 그 첫번째는 장인어른의 일화를 예로 들며, 길에서 누군가 깨물어 먹은 자국이 있는 사과를 주워 장모님에게 건네며, 베어 문 자리를 도려내어 케이크를 구울 때 쓰라고 한다는 내용이다. 장인어른은 구두쇠는 아니지만 버리는 것을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분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장인어른은 뭔가 어디가에 필요한 물건들을 모조리 모으는 무질서의 주인공이지만, 그런 무질서 속에서 심리적 편안함을 찾는 것 처럼 보인다.   

두번째로는 책 내용을 인용하자면,  '아내는 그의(장인어른) 이런 좋은 혹은 나쁜 성향을 약간 물려받았다. 그녀가 떠난 이후로 구석구석에서 언제나 크고 작은 잡동사니가 발견된다. 아내가 아직 내 옆에 있을 때는 이런 것들이 짜증스러울 때가 많았지만, 이제는 그녀 인생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어 기쁘다.' 고 말한다. 

내가 공감을 하게 된 이유 역시, 나 또한 깨끗히 정리정돈을 생활화하기 보다는 약간의 무질서에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평소 나는 약간의 너저분함 정도에는 아무렇지도 않아하지만,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의 입장은 다르다. 어떤 물건이든 항상 제자리에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심기불편해 한다. 생각해보면 그런 성격의 남편보다는 약간의 심리적 여유가 있는 내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사는 것 같다. 항상 뭔가 치워야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생활하는 쪽이 남편이라면,  잠시후 혹은 오후 5시쯤의 대략의 시간을 정해놓고 후다닥 치우는 쪽인 나는 분명 저자가 이야기하는 심리적 편안함에 가까운 사람이다. 잠시의 너저분함 따위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내가 시간적으로는 더 여유있는 사람이 아닐까? 물론, 생각의 차이겠지만 말이다.

작가 페터 빅셀은 1935년생으로 실제 나의 아버지 보다도 연세가 더 지긋하신 분이다. 그래서인지 책 곳곳에서 인생전반에 관한 철학적인 생각을 많이 갖게 한다. 짧은 이야기 속에 강렬함도 묻어 있었고, 대수롭지 않은 듯한 소재에서 깊이 있는 생각을 이끌어 내게 하는 책이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의 책 제목에 마음이 이끌려 이 책을 읽었고, 책을 통해 느림의 미학을 발견하였듯, 다른 이들도 바쁜 일상 속에서 벗어나 한 번쯤은 느림의 미학을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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