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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다 나답게 죽고 싶다 -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종활 일기
하시다 스가코 지음, 김정환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안락사
[安樂死, euthanasia]
병자를 고통에서 해방시켜서
안락하게 죽게 하는 것. 영어의 euthanasia는 <좋은 죽음>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이 책에서는 작가
하시다의 유년 시절부터 청춘, 그리고 글을 업으로서 쓰는 시기와 결혼까지 이야기가 나오지만 중점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바로 위에 제시한 ‘안락사’이다.
저자는 계속해서
안락사를 요구하는데 이는 사회적인 강요를 뜻함이 아니며, 안락사에는 반드시 객관적 인물의 판단과 동의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하시다의 청춘은
곧 2차 세계 대전 시기였으므로, 작가에게 죽음이란 매우
가까운 것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죽음을 피하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직 어리기에 죽음에 관하여 깊게 생각해 본적은 없고 다만 사후세계에 대해 잠시 상상해 본적은 있다. 일반적으로 사후세계는 천국 또는 지옥, 윤회 그리고 무(無)로 나눠지는 듯하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것 따위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며 죽을 때가 되면 편안하고(안) 즐겁게(락) 죽을(사) 권리를 달라고 피력한다.
책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과연 안락사와 자살의 관계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선
나의 결론으로는, 동의어는 당연히 아니고 둘은 포함관계로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안락사를 원하지만 사회 법 안에 갇혀 받지 못하는 건강하지 못한, 혹은
나이든 사람들이 자살을 많이 한다고 한다.(책에서는 자살 사유의 1위로
건강을 든다.) 작가는 그 말인 즉슨, 안락사를 허용하게
되면 건강 탓에 자살하는 인구가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 둘 사이의 관계에는
의문이 들어 천천히 생각해볼 문제라고 여겨진다.
여러 번 토론해본
주제로, “자살은 본인의 권리인가” 라는 의문도 다시 제기되었다. 일단 이 책에서 작가는 자살은 완고하게 반대한다. 뒤처리와 경찰의
수고,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라는 의견이다. 그렇다면 안락사의
문제에서는, 이를 말리지 못하고 지켜보는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치사량의 약을 지어주는 약사와 안락사를 허락하는 의사들의 심적 부담감과 신청자의 안락사 후의 죄책감은 과연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경찰에게는 피해를 줘서는 안되고, 의사에게는 그래도 된다면 이 또한
모순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본인의 죽음을 결정하는 것을 개인의 권리이고 책임임을 인정해도 되는건지 만약
인정한다면 이에 따른 제도는 굉장히 체계적이고 빈틈 없이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